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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55회 2017-05-22

    두 엄마 이야기 ■ “엄마 곁으로 와줘서 고마워, 내 착한 딸“
    길었던 기다림의 끝이 보인다. 2017년 5월, 세월호에서 천 백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의 사람들이 하나 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 2학년 조은화, 허다윤 양. 두 엄마에게 얼마 전, 애타게 기다렸던 딸의 소식이 들려왔다. 5월 12일 은화의 가방이 발견된 곳 근처 에서 은화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일주일 후 신원이 확인된 다윤이의 유골도 엄마 곁으로 돌아왔다. 자식을 앞세운 어미에게 남은 인생은 없다. 오로지 사랑하는 딸을 찾기 위해 견딘 시간. 엄마라서 포기할 수 없었던 그 3년의 기다림을 카메라에 담았다.
    ■ 4월 16일, 그날에 멈춘 시간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월호 여객선이 바닷속으로 가 라앉았다. 배에 탑승한 476명 중 172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7개월간의 실종 자 수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홉 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은화와 다윤이. 두 엄마는 아이들이 떠난 통한의 바다를 마 주한 채, 딸을 기다리며 그날 이후 세 번째 잔인한 봄을 맞이했다.
    ■ 슬픔과 기다림의 항구, 팽목항에 머물렀던 세월
    가라앉았던 세월호로부터 가장 가까운 항구인 진도 팽목항. 은화와 다윤이네 가족 은 사고가 있던 날 내려와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발 길은 줄어들었지만 두 엄마는 차가운 세상에 맞서 계속 딸을 찾아야 했다. 눈물 많고 소녀 같은 다윤 엄마 옆엔 언제나 씩씩한 은화 엄마가 있다. 나란히 붙어 있는 12 제곱미터 임시 컨테이너에 머물렀던 두 엄마는 서로의 슬픔을 온전히 알아 주는 유일한 존재. 3년이라는 긴 시간, 상처투성이 두 엄마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 무조건 엄마 편이었던 딸, 다윤이와 은화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애교 많은 막내딸 다윤이. 뇌종양을 앓고 있는 엄마를 대신 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점점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가 도 불평 없이 늘 밝았다. 수학여행비 33만원이 집에 부담될까 가지 않으려던 다윤이 를 엄마는 다독여 보냈고, 그렇게 떠난 아이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아픈 오빠와 함께 크느라 일찍 철이 든 은화. 전교 1등으로 공부도 잘했고 한 번도 엄마 속을 썩인 적이 없다. 샤워할 때조차 엄마를 옆에 세워 두고 수다를 떨 정도로 친구 같았던 모녀 사이. ‘엄마 껌딱지’였던 은화를 찾기 위해 엄마는 점점 강해질 수 밖에 없다.
    “그냥 무조건 엄마 편. 나랑 평생 갈 수 있는 친구가 없어진 거 같아서 용서가 안돼요. 그 아이를 찾아 와야죠. 너 때문에 내가 정말 행복했었다고 보내줘야 하는 게 엄마인 내 몫이라...” - 은화 엄마 이금희 씨 인터뷰 中
    ■ 두 엄마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2014년 11월, 7개월 만에 수중 수색이 중단됐다. 하지만 인양 소식은 해를 넘기도 록 들리지 않았고... 세월호 참사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갔다. 두 엄마는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뜨거운 뙤 약볕 아래에서 두 엄마는 외치고 또 외쳤다. ‘아직 세월호 안에 사람이 있다’고, ‘마 지 막 한 사람까지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라면 전 국 어디라도 갔다.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 1,07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
    바닷물을 다 퍼서라도 찾고 싶었다. 기다림은 끝을 몰랐다. 작년 여름 예정이었던 인양이 여섯 차례나 지연됐다. 그리고 올봄, 간절한 엄마들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드디어 인양 시도 소식이 들려왔다. 두 엄마는 가까운 해역으로 나가 배 안 에서 인양 과정을 지켜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2017년 3월 23일, 침몰 1,073일 만에 세월호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 다.
    “엄마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어요. 나도 보고 싶지만 우리 딸도 엄마 보고 싶어 할 거거든. 오랫동안 찾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내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고...“ - 다윤 엄마 박은미 씨 인터뷰 中
    ■ 남겨진 사람들이 견뎌낸 외로운 시간의 기록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의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휴먼 다큐멘터리 <두 엄마 이야기> 에서는 생생한 사고 당일의 기억부터 온 국민이 함께 숨 졸이며 지켜본 세월호 인양 의 순간, 그리고 긴 겨울을 보내고 마침내 엄마에게 돌아온 딸을 품에 안은 2017년 봄을 담았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비극 앞에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여겼던 평범한 일상이 깨 져버린 가족들의 슬픔,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차 가운 세상에 맞서 싸운 두 엄마의 ‘사랑’이 <휴먼다큐 사랑>에서 공개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딸을 찾기 위해 세상에 맞선 두 엄마 이야기가 5월 22일 월요일 밤 11시 10분, <휴먼다큐 사랑>을 통해 공개된다.

    54회 2017-05-15

    나의 이름은 신성혁 2부 ■ 피할 수 없는 운명, 강제추방
    입양인 아담 크랩서. 그의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고 방송국으로 걸려온 한 통 의 전화. 아담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어머니였다. 오랜 재판 끝에 결국 한국으로 추 방되어 돌아온 아담. 이번 주 방송에서는 지난주에 이어 아담이 한국으로 추방된 이 후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MBC '휴먼다큐 사랑'은 15일 밤 11시 10분 ‘나의 이름 은 신성혁 2부’ 편을 방송한다.
    ■ 40년 만에 만난 어머니
    2016년 10월, 기나긴 재판 끝에 아담에게 한국으로의 추방 명령이 떨어진다. 한국 에 도착한 아담이 가장 먼저 간 곳은 어머니의 집. 40년 만에 마주한 어머니와 아들 은 목 놓아 울었다.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이해해요, 슬퍼하지 마세요.”
    ■ 나의 이름은 신성혁, 그리고 또 다른 삶의 시작
    엄마를 만난 기쁨도 잠시, 이제는 입양 가기 전에 어머니가 지어줬던 이름인 ‘신성 혁’으로 살아야 한다.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증도 발급받고, 한국어 공부도 시작 해야 한다. 모든 게 낯선 한국에서 살아갈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임시 숙소를 전전 하며 일자리도 구해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데...
    한국에서 시작될 아담, 신성혁의 새로운 인생! 다시 만난 母子가 함께 만들어가 는 희망. 5월 15일 월요일 밤 11시 10분, <휴먼다큐 사랑>에서 아담의 한국 정착기가 공개된 다.

    53회 2017-05-08

    나의 이름은 신성혁 1부 ■ 40년 만에 나타난 엄마!
    40년 동안 살아온 미국에서 추방을 앞둔 입양인, 아담 크랩서. 그의 기구한 사연이 2015년 11월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제작진에게 한 통의 전 화가 걸려왔다. 학대받고 버림받고, 추방이라는 벼랑 끝에서도 항상 그리웠던 어머 니, 아담이 그토록 찾았던 어머니였다. 제작진은 어머니를 찾아 영주로 향했다.
    40년 전, 남편은 집을 나가 버렸고 완전히 마비된 한쪽 다리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 었다. 더 이상 아이들을 굶길 수 없어 잘 살라고 보냈는데.. 그간 아들에게 있었던 참 담한 일들을 제작진에게 전해 들은 어머니는 한없이 목 놓아 울었다. 어머니를 찾게 되고 결국 한국으로 추방되어 돌아온 아담,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제 평생 아시아 중년 여성을 보면 우리 엄마가 저렇게 생겼을까, 또는 엄마일까 항상 궁금했어요. “ - 아담 크랩서 인터뷰 中
    ■ 매질과 지하실 감옥, 그리고 파양
    누나와 함께 미국으로 입양된 아담 크랩서, 믿었던 행복한 가정은 어디에도 없었 다. 양부모의 학대는 끔찍했다. 숟가락이나 벨트로 맞은 날에는 집안의 큰 지하실에 갇혔다. 결국 첫 양부모로부터 파양을 당하고 크랩서 부부에게 입양됐지만 그를 기 다린 건 더욱 가혹한 학대였다. 그들은 많게는 13명의 아이들을 키우기도 했다. 정 부 보조금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그저 돈벌이의 수단이었다. 벨트로 때리고 못 박는 기계를 얼굴을 향해 쏘며 아이들의 공포를 즐겼다. 냉장고에는 늘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 입양될 때 가져온 물건을 찾다 전과자로..
    이웃집의 신고로 크랩서 부부는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결국 아담은 16살 에 집에서 쫓겨났다. 거리가 그의 집이 되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치즈 버거를 먹으 며 허기를 달랠 때도 있었다. 2년간의 고된 생활 속에서도 아담은 크랩서 가에 두고 온 물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바로 입양될 때에 한국에서 가져온 고무신과 강아지 인 형, 성경책이었다. 어느 날, 자신의 물건을 찾으러 몰래 크랩서 가에 들어갔던 아담 은 중범죄인 ‘주택 침입죄’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자그마치 25개월이란 시간이었다.
    ■ 전과자에서 다시 추방자로
    하지만 패배자로 살고 싶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식당, 건축일, 조경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았다. 교도소에서 배운 기술로 이발소를 운영하 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떳떳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합법적으로 입양되어 왔지만 시 민권이 없었던 그는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 18세 이전에 양부모가 시민 권을 취득시켜줘야 했지만, 학대를 일삼았던 양부모들은 관심이 없었다. 결국 영주 권을 신청했던 아담은 이전의 범죄 전력 때문에 추방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 그리운 어머니
    잘못된 입양, 억울하게 시작된 옥살이, 그로 인해 한없이 꼬여버린 인생. 지지리도 복 없던 그에게 더욱 간절했던 건 원망보다 그리움이었다. 머나먼 한국, 그 곳 어딘 가에 살아계실지도 모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한국으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위기 감에 더욱더 깊어졌다.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사랑해요. 아직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요.. 평생 어머니가 보고 싶었어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억해 주세요. 엄마. 제가 엄마 자식이라는 것을요. “ - 어머니의 아들. 신성혁.
    ■ 추방,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다!
    2016년 10월, 아담은 결국 한국으로 추방 명령을 받았다.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온 아담. 그는 이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만 할까.
    3년의 제작기간! 기구한 운명의 입양아 아담 크랩서. 어느 곳에서도 자리 잡지 못한 이방인의 40년 인생 이야기 5월 8일 월요일 밤 11시 10분, <휴먼다큐 사랑>에서 시련 속에 더 단단해진 아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52회 2016-05-30

    사랑하는 엄마에게 ▶ 하나가 된 둘, 25년만의 기적 같은 만남 2012년 12월 런던, 아나이스는 친구가 SNS에 올린 유투브 영상에서 자신과 놀랍도 록 닮은 여성을 발견한다. 너무나도 똑같은 외모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친구들과 함 께 그 여성을 찾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녀를 발견한 아나이스! 그녀는 LA에서 살고 있는 할리우드 여배우 ‘사만다 푸터먼’이었다. 아나이스는 사만다 역시 자신과 같은 한국계 입양아고 같은 곳에서 같은 날 태어났 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혹시 내가 쌍둥이인걸까?’ 용기를 내 사만다의 SNS에 메시 지를 보내고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출생 기록상에 두 사람 이 쌍둥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이미 한 눈에 서로의 존재를 알아본 두 사람! 2013년 5 월, 두 사람은 영국 런던에서 25년만의 기적 같은 재회를 하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일란성 쌍둥이임을 확인한다. “저희는 검사 전에 이미 알고 있었어요. 완전히 알고 있었죠. 쌍둥이가 아닐 수 가 없었어요.” -사만다 푸터먼 ▶ 미국으로 간 사만다 & 프랑스로 간 아나이스 1987년 11월 19일, 한 날 한 시에 부산에서 태어난 사만다와 아나이스. 하지만 태어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각기 다른 입양 기관에 보내어진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두 사 람은 서로의 존재도 모른 채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가게 됐다. 988년 3월 5일, ‘김은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프랑스로 향한 아나이스. 프랑스의 사업 가 ‘보르디에’ 부부에게 입양되어 귀한 외동딸로 자란다. 어릴 적부터 학업성적이 우 수했던 그녀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런던의 예술대학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패 션 디자인을 공부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현재는 파리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받 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나이스보다 두 주일 늦은 1988년 3월 21일, 미국의 ‘푸터먼’ 부부에게 입양을 간 사 만다. 2명의 오빠들과 함께 3남매 중 개구쟁이 막내딸로 자란다. 다복한 가정에서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녀. 어릴 때부터 끼가 남달랐던 그녀는 ‘게이샤 의 추억’, ‘21&over’ 등의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며 현재 미국 LA에서 여배우의 꿈 을 키워나가고 있다. ▶ 지구 반대편에서 찾은 또 다른 나 지구 반대편,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아나이스와 사만다는 얼굴의 주근 깨, 작은 키와 손 발, 웃는 모습 그리고 식성까지 똑같다. 하다못해 좋아하는 남성상 또한 비슷하게 닮은 두 사람. 누가 뭐래도 정말 영락없는 쌍둥이다. “저희는 25년 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쌍둥이만의 알 수 없는 뭔가가 연 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 아나이스 보르디에 지난 25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서로를 가깝게 느끼는 사만다와 아나이스.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어야 했던 긴 시간 동안 입양아로서 느껴야 했던 외로움도 이젠 서로 를 통해 채워가며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준다. ▶ 한국, 마지막 퍼즐을 찾아서 아직까지 맞추지 못한 단 하나의 퍼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들을 낳아준 ‘엄마’다. “전 저희가 이별하게 된 이유를 알고 싶어요. 진실에 대해서요.” - 아나이스 보르디에 얼마 전, 함께 한국을 방문한 사만다와 아나이스. 그들의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화 제를 부른 만큼 한국 언론에서도 이들을 향한 관심이 끊이질 않는다. ‘혹시 엄마도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지 않을까?’ 엄마의 흔적을 찾아 떠난 부산. 사만다 와 아나이스에게 다시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저희를 낳아주신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희는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 사만다 푸터먼 ♠ 2016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다섯 번째 편 <사랑하는 엄마에게> 내레이션은 소녀 시대 <티파니>씨가 맡았습니다.

    51회 2016-05-23

    시간을 달리는 소년 원기 ▶ 죽음이 익숙한 아이 민머리를 감추려 늘 모자를 쓰고 다니는 작은 아이, 부러질 듯한 가는 팔과 다리로 더디게 걸으며 거친 피부와 뻣뻣한 관절 때문에 스트레칭도 쉽지 않은 아이. 바로 국 내 유일의 조로증 환아, 홍원기군이다. 소아 조로증 (Progeria)은 유전자변이로 인 해 노화가 일찍 찾아오는 병으로 이들의 인생 시계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 평균 10대 중반에 죽음을 맞이하는 불치병이다. 교실 속에서 이 작은 아이는 오히려 더 눈에 띈다. 덩치 큰 친구들 사이에 콕 박힌 듯 앉은 원기는 친구들과 달리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어려보이기만 한 원기가 가 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목숨’, 수업 시간에 원기는 ‘연필심이 부러져 연필 이 죽는 모습’을 상상하고 체육시간엔 이리저리 날라 오는 공이 무섭다. 공을 맞으 면 죽어야 하고, 친구들이 뛰노는 선 바깥으로 밀려나 서 있어야만하기 때문이다. “목숨이 중요하니까요. 저는 제 목숨이 소중해요” - 원기 - ▶ 작은 기적을 만드는 힘, 사랑 400만분의 1의 확률로 생겨난다는 희귀병, 소아 조로증. 부모는 원기가 5살 되던 해 에 그 병을 알았다. 속수무책이었던 부모는 자책과 원망으로 나날을 눈물로 보내야 했다. 하지만 희망마저 버릴 순 없었다. 부모는 아이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고 2014년에는 미국 보스턴의 조로증 재단까지 달려가 치료약의 임 상실험에 참여했다. 그러나 부푼 희망도 잠시 원기는 신약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고 부모는 결국 투약을 포기했다. “부모 선택으로 먹여서 원기한테 더 생기지도 않을 병이나 이런 게 생길까봐 저희 욕심일까봐... 마음이 무거웠어요.” - 엄마 - 아이를 힘들게 하는 부모의 욕심은 버리기로 했지만 원기를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 았다. 머리카락이 날 수 있다는 희망에 한걸음에 달려가 피부 재생을 돕는 약을 구해 오고, 수소문 끝에 알게 된 세포치료를 위해 아빠는 기꺼이 자신의 세포를 내어주었 다. 부모의 헌신과 노력덕분일까? 원기의 몸에는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머리 카락이 한 올 한 올 피어오르고, 관절도 부드러워지며 피부도 밝아졌다. 그리고 무엇 보다 원기가 고대했던 키가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어쨌든 조금이라도 크면 우리에게 희망이니까 이런 걸로 해가지고 우리 원기 이런 거 손가락 손바닥 손등 이런 것도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지? ” - 아빠 - ▶ 신체발달은 하위 2%, 몸이 아닌 마음이 성장하는 아이 소아 조로증에 걸린 원기는 건강한 보통의 아이들에게 당연한 것들을 가질 수 없다. 원기의 키는 104cm, 몸무게 14kg, 신체 발달지수는 단 2%에 불과하다. 병 때문에 생 긴 차이는 때때로 세상 속에서 장애가 되곤 한다. 머리카락이 없어도 충분히 귀엽다는 엄마의 칭찬에 우쭐한 척 하고 탈 수 없는 놀이 기구 앞에서 초연한 척도 해보지만 사실 원기는 머리카락이 없는 것도 부끄럽고, 타 고 싶은 놀이기구를 타지 못할 땐 얼굴 가득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그랬던 원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원기는 작년보다 키가 3cm 더 자랐고, 더 이상 모자로 머리를 가리고 다니지도 않는다. 원기는 모르는 사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소리 없이 성장해 간다. “난 대머리여도 돼. 생각해보니까 그렇더라. 그러면 될 것을 너무 머리카락에 욕심냈어. 홀가분해 ” - 원기 - 생각이 바뀌니 원기 마음에도 봄바람이 불었다. 거울 앞에서 서성대는 원기의 시간 이 눈에 띄게 길어졌다. 학교에 입고 갈 옷을 직접 고르고 옷차림과 외모에 한껏 신 경을 쓴다. 바로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기 때문! 예쁘기 보다는 마음이 착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좋다고 말하는 원기, 화이트 데이를 앞두고 엄마의 질투도 나 몰라 라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줄 사탕까지 직접 준비하는데... 콩닥 콩닥 원기의 고백 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 다시 찾아온 봄,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 그리고 행복! 원기의 병을 알고 난 후 6번째 맞이하는 봄! 원기의 10번째 생일날이 됐다. 엄마와 아 빠는 꼭두새벽부터 생일상을 준비하고 원기를 위한 깜짝 선물도 잊지 않는다. 평균 수명이 10대 중반 남짓인 조로증 환자들에게 한 해를 넘긴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 그 렇기에 원기의 생일은 가족들에게 그 어떤 날보다 특별하다. “ 제가 음식 준비하고 원기와 수혜가 걸걸대는 웃음으로 웃으면서 자기네들끼리 놀 때 되게 기분 좋아요. 중간 중간 아빠가 잔소리 한방씩 날려주고...” - 엄마 - 고통과 희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는 문득 문득 두렵고 무 서운 이별의 순간을 상상한다. 하지만 부모를 보며 웃는 아이의 모습에 용기를 얻고 함께 있어주는 아이의 존재만으로 하루하루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가족은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예정된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우 리 곁에 있는 아이를 보며 남들보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그 곱절의 행복을 새기 자고... 과연 원기 가족은 무사히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희망의 봄날을 맞이할 수 있 을까? “원기야. 나중에 어른 되면 무슨 일 하는 사람 되고 싶어?” “그냥 우리 가족들, 우리 가족들 오래오래 살게 하는 약 만드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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