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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738회 2017-04-17

    인구절벽 원년 보고서 –2부- <1.17 기적의 출산율> 1. 아이는 국가가 기른다?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은 하늘에 별 따기
    “애를 낳자마자 빨리 (어린이집) 대기를 걸라는 거야. 안 그러면 못 보낸다는 거야.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우리 때도 그랬나. 어린이집을 왜 못 보내?” - 직장맘 송미영 씨 인터뷰 中
    16년째 이어지는 초저출산 행진 속에서 정부는 출산 장려를 위한 각종 육아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작년 21조 7천억 원에 달했던 저출산 대책 예산 중 절반 이상을 보육에 투입했다. 하 지만 실제 육아 현장에 있는 엄마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문산여고 5인방 중 한 명인 송미영 씨는 중견기업의 과장이자 다섯 살배기 서빈이의 엄마이다. 아이를 돌봐주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혹시라도 못 나오는 날에는 온 가족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남편이나 자신이 급히 휴가를 내거나 역시 일을 하는 친정어 머니에게 비상호출.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아 헤맬 때마다 ‘내가 뭐하고 있나’ 좌절 감이 밀려온다. 그녀는 이미 한 차례, 육아로 인해 직장을 그만둘 위기를 겪었다. 아 이를 낳자마자 어린이집에 대기 신청을 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어린이집을 왜? 나중 에 하면 되지 뭐’ 하고 미뤄두었다. 뒤늦게 6개월 차에 대기 명단에 오른 아이의 대 기 번호는 8,90번대.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하면 일을 그만둬야 하고 생계가 걱정되 는 상황에서, 2년 만에 찾아온 입소 기회는 한 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미영 씨는 여전 히 의문이다. 어린이집 들어가기가 왜 이렇게 하늘의 별 따기 같아야 하는지.
    유치원을 보내는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현아 씨 가족은 올해 유치원에 들어가 는 소윤이를 위해 모두 발 벗고 나섰다. 7군데에 지원했는데 줄줄이 대기 명단에 오 르고 이제 남은 곳은 2군데. 그런데 하필 2곳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추첨을 한단 다. 시아버지까지 동원해 추첨식에 출정한 현아 씨는 과연 소윤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있을까?
    전국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보육 아동 수용률은 각각 12.1%, 24.2%에 그친 다. 문산여고 5인방이 입을 모아 공감한 바늘구멍 경쟁률.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 원을 두고 벌어지는 웃지 못할 현실 속에서 부모들이 처한 우리나라 보육 정책의 현 주소를 들여다본다.
    2. 슈퍼우먼이 와도 안 돼! 위기의 직장맘
    경력단절이 딱 왔을 때 우울했어요 저는.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고 지금까지 뭘 그렇게 열심히 했었지? 지금은 뭘 하고 있지? 공허함이 들더라고요 - 경력이 단절된 두 아이 엄마 조성희 씨 인터뷰 中
    문산여고 5인방은 공통점이 있다. 아이를 낳고 경력단절을 경험했거나 경력단절의 위기가 있었다는 것. 강남의 잘 나가는 피부관리사였던 조성희 씨. 첫째 아이를 낳 고 복직을 준비하던 중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아이 둘을 믿고 맡길 곳이 없는 상 황에서, 10년간 해왔던 일을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했다. 아이를 키우는데 집중하 며 또 다른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막상 경력이 단절되고 나 자 찾아온 우울감과 불안함. 이제 6년의 공백을 뚫고 복귀에 도전하는 성희 씨에게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문산여고 5인방의 반장 박선영 씨. 교육 관련 회사의 정직원이었지만 그녀 역시 아 이 둘을 낳으면서 퇴사를 해야 했다. 일 욕심이 남달랐던 선영 씨는 5년간의 공백을 극복하고 전 직장에 프리랜서 영업직으로 어렵사리 복귀했다. 그녀는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열심히 뛰며 영업 실적 1위의 팀장이 되었고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일상만 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업무로 전화를 붙잡고 있으면 아이들 에게는 절로 빨리 자라는 말부터 나온다. 일에서도, 육아에서도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그녀의 어깨가 무겁다.
    3. 1.17 기적의 출산율
    초저출산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 16년째. 2016년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시행 계획에 따르면 저출산 대책에만 21조를 투입했다. 하지만 문산여고 5인방은 모두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다. 그 많은 돈이 투입되었다는데 여전히 엄마들은 둘 째 가지기를 포기해야 한다. 방인선 씨는 사교육비와 주택자금 대출 때문에 힘들고, 황연경 씨는 경력단절이 걱정돼 둘째 생각을 버렸다.
    그런데 둘째를 낳았다는 엄마의 제보가 왔다. 지난 2월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재희 씨. 그녀가 둘째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셋째를 임신한 지근호 씨 부부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지난주 ‘2년제 인생, 결혼 못하는 청춘’을 통해 취업난과 거주 문제로 인해 결혼에서 멀어진 이 시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았던 <인구절벽 원년 보고서>. 2부 ‘1.17 기적 의 출산율’에서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1.17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 1.17조 차 기적인 현실을 문산여고 5인방의 유쾌한 입담을 통해 들어본다.

    737회 2017-04-10

    인구절벽 원년 보고서 1부 <2년제 인생 – 결혼 못 하는 청춘> 1. 2년 동안 결혼식 사회만 80번. 이젠 나도 둘이 되고 싶다
    “안정적인 직장. 그게 가장 첫 번째였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먼저 결혼을 해요.” - 해외취업자 김경민 인터뷰 中
    올해 서른 셋, 초혼 평균 연령을 넘겼다. 남의 결혼식 사회 아르바이트만 80건. 정작 자신의 결혼은 무기한 연기했다. 성실하게 공부해서 인서울 대학의 잘나가는 미디어 관련 학과를 졸업했지만 취업이 되지 않았다. 일단 경력을 쌓아보자 결심했고 S생 명 영업직 인턴이 되었다. 남들보다 잘 팔았다. 2년 경력을 계획했지만 팀장까지 올 라갔고 4년을 머물렀다. 하지만 그 경력을 가지고 서른 한 살에 경력직 취업시장을 두드렸을 때 열리는 문은 없었다. 2년 안에 정규직을 잡지 못하면 그걸로 끝나는 서 울의 삶, 그는 다시 2년을 투자해 해외취업을 준비했다. 일본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 고 그는 다시 2년을 계획으로 도쿄로 첫 출근을 시작한다. 2년 후면 그가 결혼을 꿈 꾸었던 서른다섯. 경민 씨는 결혼할 수 있을까.
    2. 16년간 8번의 이사, 2년마다 떠나야 하는 철새인생!
    “습관된 것 같아요, 집 보는 거. 집 걱정 안 하고, 이사 걱정 안 하고 살았으면...” - 요가 강사 최애란 씨 인터뷰 中
    IMF 외환위기로 침체된 경기 속, 어렵사리 취업문을 뚫은 최애란 씨의 첫 직장은 결 혼정보회사, 직급은 ‘인턴’이었다. 취직과 동시에 서울로 상경한 그녀는 다만 평범하 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결혼해 아이 둘 낳고 정착할 것을 꿈꿨다. 그러나 한 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이라고 했던가. 첫 직장에서 정규직 전환을 놓친 그녀 는 비정규직 일자리만을 전전하게 되었다. 백만 원 남짓한 월급에 턱없이 높은 서울 의 주거비. 게다가 이십대 후반부터는 면접 때마다 끊임없이 ‘결혼 의사가 전혀 없 음’을 증명해야만 했다.
    장충동-신림동-삼선동-합정동-휘경동-이문동-구의동-합정동 - 지난 16년간 최애란 씨의 이사 이력
    비로소 ‘요가 강사’라는 만족스러운 직업을 찾았지만, 그 직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 혼도 출산도 미뤄야 했던 최애란 씨. 16년의 서울 살이는 8번의 이사로 남았고, 여전 히 미혼인 채로 서른아홉이 되었다. 끊임없이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하는, 청약저축 10만원이 전부인 그녀는 다시 이사를 알아본다.
    3. 기적 같은 사다리 올라가기, 그러나 2년조차 허락 받지 못한 삶.
    “결혼에 대해서 생각을 못했습니다. 안 했습니다 나 혼자서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겠습니까” - 일일근로자 윤성노 인터뷰 中
    ‘흙수저’ 윤성노 씨는 대학입학금이 없어서 진학을 포기했다.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학점은행제를 통해 2년만에 학사 학위를 땄다. 그 어렵다는 편입시험을 통과해 한양 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계속되는 생활고에 학업을 미루고 학사장교로 임관했다. 군 생활 40개월 동안 알뜰살뜰 2500만원을 모았지만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목돈을 날렸고, 생활비와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은 학기 공부를 병행했다. 학점 이 좋을 수 없었다.
    서른 살 즈음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리라는 막연한 꿈. 그 꿈으로 곰팡이 핀 반지하방 생활도, 4평짜리 옥탑방 생활도 버텼다. 처음 두 번, 인 턴으로 취직했지만 정규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설상가상 집은 재개발이 되어 보증 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거리로 쫓겨났다. 그 후 선택지는 없었다. 일용직 노동부터 음 식점, 마트, 행사장 진행 등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더 빈곤해졌고 이제 나이 37세. 지금은 교회에서 마련해준 거처에서 1년 반째 임시로 살고 있다. 돌 잔치 사회를 볼 때마다, 아기가 있다면 누구보다 근사한 돌잔치를 할 수 있을 것 같 은 생각이 든다는 윤성노 씨. 벼랑 끝에 서 있는 그가 선택한 마지막 탈출구는 소방 직 공무원. 4월, 그에게 새로운 문은 열릴 것인가.
    4. 청년이 떠난 도시, 소멸을 피할 수 있을까: 인구 12만의 도시에 9천 명만 남 은 사연
    “남은 사람은 70, 80대가 대부분입니다. 몇 년 후면 모두 이사해버리지 않을까요. 천국으로요.” - 유바리 시 前 시의원 모리야 다케시 씨 인터뷰 中
    청년이 사라진 미래는 처참하다. 한때 인구 12만의 번성하는 도시였던 일본 유바리 시는 에너지 산업의 변화로 주요 기업이 문을 닫았다. 국가와 시에서 청년 일자리 정 책을 방치한 결과, 청년들이 떠났고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 급격한 인구 감소는 시 재정 악화로 이어졌다. 시에서는 경제 부흥을 위해 관광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 했지만 그 또한 실패했고, 급기야 2006년 파산에 이르렀다. 부채를 갚기 위해 허리 끈을 졸라맨 유바리 시. 주민들은 최저의 생활을 하며 최고의 부담을 지고 있다. 현 재 인구 8700명 중 절반이 65세 이상 노인. 이대로 가면 20년 후 유바리 시에 청년 인 구는 400명도 남지 않아 도시 소멸 단계에 접어든다. 유바리 시의 전철을 밟지 않으 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구절벽 원년 보고서’ 2부에서는 둘을 낳고 싶어도 하나밖에 낳을 수 없는 이 시대 엄마들의 현실을 살펴보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일하는 방식’ 개혁에 돌입한 일본의 사례를 소개한다.

    735회 2017-03-20

    리더의 조건 - 두테르테와 트럼프 ■ 아웃사이더의 반란, 막말과 기행에도 국민의 선택을 받은 리더들의 등장!
    2017년, 세계는 두 명의 리더들에 주목하고 있다! “Only America First”를 외치며 등장한 정치계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온갖 막말과 초법적 살인에 도 국민의 80%가 지지를 보내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사람들은 두 사 람을 막말과 기행을 일삼는 아웃사이더라 불렀으며,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포퓰리스 트라 불렀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정치적 올바름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두 리더들은 대중에게 상식과 진리로 여겨진 가치를 무너뜨리고, 민중의 삶을 대변하지 못한 기 성 정치인들을 통렬히 비판하며 대중을 현혹시켰다. 그들이 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 었던 배경은 무엇이었고 누가, 왜 이 위험한 리더들을 탄생시켰는가?

    ■ 피플혁명의 나라 필리핀에서 선택한 또 다른 스트롱맨(Strongman)
    1986년 2월, 필리핀 국민 수 백 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대규모 시위 와 함께 부정 선거와 부패로 얼룩진 마르코스 대통령을 21년 만에 권좌에서 끌어내 렸다. 이 날의 피플파워(민중의 힘) 혁명은 연이어 일어난 아시아 민주화 운동에 영 향을 끼쳤다. 그로부터 30년 후, 역설적이게도 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먼저 민주화 의 꽃을 피운 나라에서 초법적 살인을 당당히 자행한 스트롱맨(Strongman), 로드리 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당선된다!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마닐라 앞바다에 버리겠다.” - 로드리고 두테르테

    6개월 이내 범죄 근절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한 그는 20여 년 간의 다바오 시장을 역임하며 범죄가 만연한 도시에 자경단을 조직해, 1,000여명의 범죄자를 재판 절차 없이 처형한 이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무관용 정책’은 다바오를 세계에서 가장 안 전한 도시로 만들었고, 국민들은 자신들을 부정부패와 범죄에서 구해줄 지도자로 그 를 택한다.
    “두테르테를 뽑은 대부분이 빈곤층이었지만, 앞으로 척결의 대상이 될 사람들이 또 빈곤층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두테르테 대통령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이 사실은 빈곤층과의 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 자멜라 알렌도건(알자지라 특파원)과의 인터뷰 中

    두테르테 취임 이후, 마약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크 나 큰 지지를 보낸 ‘가난한 이들’이었다. 필리핀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는 그의 공포 정치마저 이용했다. 국가적인 마약 소탕 작전을 구실로 한 달 만에 1천 명 이상이 무 장 괴한에게 살해당했다. 대통령 취임 7개월 만에 발생한 마약 관련 살인 사건은 7 천 건 이상이었고, 그 중 경찰이 직접 살해한 경우도 2,500건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 다.
    “두테르테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두테르테가 현재 재임한지 7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몇 년이 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미 많은 것을 이뤘거든요.“ - 모카(인기댄스그룹, 모카걸스 리더)와의 인터뷰 中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국민들은 여전히 80%가 넘는 높은 지지율로 그를 신뢰 한다. 자신의 마을, 자신이 알고 있는 익숙한 이가 마닐라 밤거리를 핏빛으로 물들어 가는 그 순간에도 필리핀의 부흥을 다시금 되찾아 줄 스트롱맨이 7개월간 놀라운 일 을 해냈음에 찬사를 보낸다…!

    ■ 1972년 이후, 단 한 번도 민주당을 저버린 적 없는 그들이 트럼프를 선택했 다!
    미국 오하이오, 트럼블카운티. 이곳은 1972년 닉슨 대통령 이후, 단 한 번도 공화당 이 선택된 적 없는, 노동자들의 민심을 대변해주리라 믿었던 민주당의 땅이었다. 잊 혀진 백인, 1960~70년대 미국 제조업을 이끌던 영화를 기억하던 이들의 땅. 하지만 부흥의 땅엔 폐허가 된 공장 부지와 폐철로, 삶의 터전이던 공장들이 멕시코로 이전 해 한순간에 실업자가 되어버린 노동자들의 상처만이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페컨 일렉트릭사에서 일했었어요. 철거 예정인 철강 회사에서도요. 그리고 갑자기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죠. 집과 의료보험이 사라지고, 중산층이던 그들이 한 순간에 저소득층이 된 거죠.” - 오하이오, 워렌, 댄 무어(트럼프 지지자)와의 인터뷰 中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트럼프 당선의 이면에는, 민주당의 텃밭이라 불리던 러스트벨 트(낙후된 북부 및 중서부 제조업지대)의 변심이 있었다. 잊혀진 백인(Forgotten White), 분노한 백인(Angry White)으로 불리는 이들은 이번 트럼프 당선의 주역이었 다.(CNN 출구조사 결과, 고졸 이하의 백인 남성 71%가 트럼프를 지지)
    “NAFTA(북미 자유 무역 협정)는 미국에 있던 좋은 일자리들을 멕시코로 옮겨서 물건을 생산한 다음,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일을 허용했습니다. 일방통행 고속도로나 다름없었죠.“ -오하이오, 워렌, 랜디 라우(트럼블카운티 공화당 의장)와의 인터뷰 中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리라 믿었던 민주당은 더 이상 상처 입은 이들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자유 무역 협정으로 인해 빼앗겼다 믿는 이들에게, 트 럼프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되찾아줄 세계 자유 무역 협정을 깨부숴줄 구원자로 다가 왔다. 녹슬고 쇠락한 이곳에 다시 영광은 찾아올 것인가. “America great again!(미 국을 다시 위대하게!)”, 그들은 트럼프의 강력한 주문에 다시금 영광을 꿈꾼다.
    “시청하고 계신 여러분, 그리고 공항에 지금 억류되신 나의 미국인들에게 감사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 애쉬튼 커쳐(미국, 영화배우), 미국배우조합 시상식 오프닝 멘트 中

    위대한 미국을 되찾겠다 약속한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일주일 만에 반(反)이민 행정 명령에 서명을 한다. 행정명령으로 발동한 입국금지는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난민 의 입국을 120일 동안 금지시키고 90일간 이란,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 리아, 예멘 국적자의 관광과 이주를 위한 입국을 막아버린 것이다. 분노한 민심은 미 국 전역을 수놓고… 트럼프는 법원의 행정명령 저지에도 여전히, 자신들만의 미국 을 위한 ‘거대한 장벽’을 세울 것임을 예고했다!

    ■ 역사는 그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자국우선주의”를 외치며, 몰락한 백인 블루칼라를 돕겠다고 나타난 억만장자, 도 널 드 트럼프! 가난과 마약, 부패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선택했지만 ‘가난한 이 들을 향한 학살’을 끊임없이 자행하는 징벌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국민들은 왜 모순 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가…! 3월 20일 월요일, 오후 11시 10분, 를 통해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위험한 리더들의 등장과 그 신드롬의 배경을 알아본 다.

    734회 2017-03-13

    농부의 탄생 - 열혈 남한정착기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3만 명 시대. 그러나 적지 않은 탈북자들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에서 의사, 공학자 등 전문직에 종사했던 사람조차도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일자리 때문에 탈북자의 99% 이상이 도시에 정착했지만 상당수가 일용직이거나 기 초수급대상자이다. 게다가 국민 세금만 축내는 골칫덩어리라는 시선이 여전하다. 새로운 남한 정착 형태로 귀농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에게 땅은, 농촌은 어떤 의미일까?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땅을 선택한 사람들 귀농을 통해 남한사회에 뿌리를 내리고자 애쓰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치열한 삶을 조 명해본다.

    <포도농장 부부의 벼랑끝 도전>
    하나원에서 만나 결혼에 성공한 이경일·장옥희 부부. “통일되면 멋진 모습으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살았 습니다” 그러나 탈북 15년차의 부부는 귀농하기까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한국생활에 적 응을 못해 캐나다에 이민까지 갔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 한국행. 전기세 몇 천원이 아까워 난방도 안하고 짠돌이 짠순이처럼 한 달 15만원으로 생활했지만 벌어도 벌어 도 궁핍한 도시생활에 병까지 얻어 일을 그만 두었다. 하다못해 산나물이라도 캐고, 도랑에서 고기라도 잡아먹으면 죽기야 하겠냐는 절박한 마음으로 선택한 농촌행. 충 북 영동에 자그마한 포도농장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탈북 부부의 고군분투 정착기.

    <소 키우는 프로 농사꾼>
    “도시에 매일 일당 받고 먹고 사는 거는 할 수 있지만 자기 땅에서 내가 원하는 무엇 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일용직 노동자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김명섭 씨는 탈북 10년 만에 한우를 키우며 연 간 3억원을 벌고 있는 성공한 탈북민이 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축사 짓는 ‘노가 다'를 하다 소 키우는 것을 보고 돈이 되겠다고 직감하고, 축사 소유주에게 15마리 소를 외상으로 구입해서 목장 운영을 시작했다. 축사 근처 컨테이너에 살면서 하루 20시간 꼬박 일하며 고생한 결과 3년 만에 소 150마리로 불리면서 귀농에 성공한 명 섭 씨. 체계적이고 규모있는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충남 예산으로 터를 옮겨 제 2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지독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노정화 씨 – 콤바인을 타고 황금들판을 누빈다>
    “내가 벌지 못해서 기초수급자로 살면 정말 한국, 대한민국 사람들한테 얼굴이 정말 뜨겁지 않겠나. 내 손으로 어떻게든 벌어서 살아야겠습니다” 탈북한 지 6년차 노정화씨. 그녀는 북한의 엘리트 집안 출신의 군인이었다. 여자의 몸으로 50이 넘은 나이에 혼자 남한으로 넘어와 아무 연고도 없는 구미에 정착했다. 하나원 동기 150명 중 구미를 선택한 사람은 노정화 씨 하나. 공단에 일자리가 많을 것 같아 구미를 선택했다던 그는 4년 전 벼농사를 짓는 남편을 만나 1만평 농사를 함 께 짓고 있다. 처음 남편의 고향에 내려왔을 때 북한식으로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지어 야 하는 줄 알고 눈앞이 새까매져 속을 끓여야 했고, 이양기며 콤바인과 같은 농기계 를 생전 처음 봤을 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4번째 추수를 맞이하는 노정 화씨의 풍요로운 농촌생활을 취재했다.

    <매화씨의 도전>
    북한 이탈주민 영농정착 지원 프로그램의 1기 교육생으로 강원도 횡성의 대규모 무 밭에서 4개월째 농사일을 실습받고 있는 장매화 씨. 건강이 안 좋아 귀농을 결심한 후, 땅을 임대받아 4년 전 고추농사를 시작했지만, 북한식 농사와 완전히 다른 영농 방식에 어려움을 겪다고 한다. 영농 지원 프로그램에서 배운 노하우를 통해 유기농, 건강한 먹거리의 농산물을 재배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박한 희망을 들어본다.

    <안창덕씨의 배추밭>
    “통일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빌딩을 지으려고 했어요. 이제는 고향사람들을 데리 고 와서 같이 사는게 좋다고 생각하고, 여기 와서 땅이나 사가지고 자리잡자, 통일 이 되면 형제들이랑 같이 와서 살자 이런 생각에 귀농하게 됐어요.” 2007년 혼자 탈북 후, 악착같이 돈 벌어서 1년 반 만에 북의 가족을 데려온 안창덕 씨. 용접 일을 하면서 모은 전 재산으로 전남 영광에 3000평 배추밭을 계약했다. 지 난 가을 첫 배추를 수확한 농부 안창덕씨의 꿈은?

    733회 2017-03-06

    푸른 눈의 병사와 고아 소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에 터키는 유엔으로부터 참전 요청을 받고 1만 5천여 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하지만 그중 7백여 명이 그 해 11월 27~30일 단 사흘 사이에 ‘군우리 전투’에서 목숨을 잃는다. 군우리 전투에서 퇴각하던 길, 참전용사 슐 레이만은 고아 소녀를 구한다. 부모를 잃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던 소녀는 자신 의 나이도 이름도 말하지 못했다. 소녀를 부대로 데려가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글을 가르쳐주며, 소녀에게 ‘아일라’라는 터키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일라는 슐레이만을 바바(아버지)라고 부르며 가장 참혹했던 전쟁터에서 가장 따뜻한 유년을 보내게 된 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맺어진 아버지와 딸의 인연은 일 년 만에 끊어지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길 없이 육십 년이 흘렀다.
    지난 2010년, 한국에 두고 온 딸을 평생 마음에 두었던 아버지와 데리러 오겠다던 아버지를 평생 기다렸던 딸은 60년 만에 기적같이 다시 만났다. 그리고 7년이 지난 현재, 서로의 기억 속에만 잠들어 있던 아일라와 슐레이만의 놀라운 이야기가 터키 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감동 실화의 주인공 아일라는 아버지와의 마지 막 만남을 위해 터키로 날아간다.

    <아일라와 슐레이만 바바> “우리가 군우리 협곡에 있을 때, 하룻밤 새에 40만 명의 중공군이 참전하였어. 하룻 밤 사이에. 난리도 아니었어, 박격포 소리. 사람이 앞일을 알지 못하는 곳이었어. 북 한의 어디쯤인지는 알 수가 없어. 후퇴를 했으니까. 길에서 보니까, 배고픔과 고통, 추위에 떨고 있었지. 발에도 신이 없었던 것 같았어. 우리가 구하지 않았으면 아마 죽었을 거야” - 슐레이만 (92세, 6.25 참전 용사)

    올해 72세의 김은자 할머니. 그녀에게는 특별한 아버지가 있다. 바로 참혹한 한국 전 쟁 한복판에서 자신을 거두어준 터키 파병군 슐레이만이다. 그는 전쟁고아로 이름 도 가족도 없이 남겨졌던 그녀에게 터키어로 ‘달무리’라는 뜻을 가진 ‘아일라’라는 이 름을 지어주고 보살펴주었다.

    “ 처음에는 이가 많아서 그랬는가. 머리를 빡빡 깎았어요. 빡빡 깎아 준 기억이 나 서 그 군인 아저씨들이 다 남자라고 놀리고 그랬어요. 포크질도 배웠죠. 포크 가지 고 한 손으로 하고 한 손으로는 칼 그런 걸로 해서 잘라서 먹고 치즈 같은 것도 해서 먹고 터기 글씨와 말도 가르쳐 주었어요” - 김은자 (72세, 아일라)

    그녀는 그를 바바(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족이 된 두 사람은 1년 만에 생이별 을 겪고 60여 년 동안 서로의 행방도 모른 채 그리움만 켜켜이 쌓아갔는데....

    “ (바바를) 찾으려고 터키 대사관까지도 갔었는데 거기에서는 그게 마음대로 안 된 다고 이름도 모르고 그러는데 어떻게 찾느냐고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두 번 갔다가 그냥 포기하고 왔어요.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잖아 이름도 모르니 까 ” - 김은자 (72세, 아일라)

    <60여 년 만의 재회> “이게 나예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 어요” - 김은자 (72세, 아일라)

    지난 2010년, 한국에 두고 온 딸을 평생 마음에 두었던 아버지와 데리러 오겠다던 아버지를 평생 기다렸던 딸은 60년 만에 기적같이 다시 만났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 용사를 기리는 행사 덕분에 한국에 그녀의 바바(아버지), 슐레이만이 온 것이 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피보다 진했던 정을 나눈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한 동안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당연히 기억을 했지. 어떻게 생각을 안 했겠어. (딸에게) 너에겐 배다른 형제가 있 다고들 했지. 살아남길 바랐어. 잘 살고 있길 바랐어.” - 슐레이만 (92세 참전용사)

    다시 한번 헤어짐 앞에 선 두 부녀. 푸른 눈의 아버지는 터키에 와서 함께 살자고 했 지만 김은자가 된 아일라에게는 한국에 가족이 있었다. 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헤 어졌지만 어느새 7년의 세월이 흘렀고..

    <다시 마주한 과거> 92세 아버지의 생일에 즈음해 이스탄불로 날아간 아일라. 그사이 아일라는 터키에 서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취재진들이 줄을 서고 문화부 장 관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67년 전의 기억 이 터키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현장은 지난 67년 전, 자신을 터키 에 데려가기 위해 궤짝 안에 숨기던 그날을 재현하고 있었다.

    “터키로 간다고 해서 궤짝 같은걸. 짜는 걸 내가 봤어요. 큼직하게 짜면서 못 질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거로 뭐 할 거냐. 그랬더니 아일라 여기 넣어서 터키로 갈 거라고 그런 얘기하더라고 그래서 그때는 같이 간다는 마음에 좋아했는데” - 김은자 (72세, 아일라)

    과거를 다시 만나는 아일라의 마음은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착잡하다. 슐레이만은 떠 나고 그녀는 결국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한국에 살아낸 육십 년의 신산함이 한꺼번 에 밀려드는 까닭일까. 그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은 슐레이만 바바의 건강 이다. 터키에서 다시 만난 그녀의 아버지는 지팡이와 휠체어가 없이는 거동이 불편 한 92세 노인이 되었다. 가족과도 떨어져 이웃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함께 지낸 시간은 일 년. 그리워한 시간 67년.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 는다.

    “늘 기도합니다. 완벽한 삶을 살길 기원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 슐레이만 (92세, 한국전쟁 참전용사)
    “안 울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가지고.. 앞으로 한 번만 더 뵈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뿐이네요” - 김은자 (72세, 아일라)

    아버지가 된 푸른 눈의 병사와, 딸이 된 고아 소녀 전쟁터에서 시작된 기적 같은 이야기는 67년째 계속되고 있다. 아버지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을까 오늘도 그녀는 먼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