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내

다시보기를 보며 방송상품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자세히보기

단축키 안내 자막안내

홈페이지로 이동
바로보기 다운로드 무료보기
    바로보기 다운로드 무료보기

    다른 회차 보기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87회 2018-09-11

    아버지의 이름으로 - 가수 조관우 편 ■[방송 최초 공개] 신용불량자가 된 힘들었던 지난 날, 그의 눈물 어린 고백
    “생활고로 너무 힘든데 서로 감싸주지 못했죠 그러다보니까 3,4년 떨어져 있었고 부부로서는 이제 그때 이제 멀어진 것 같아요.” - 가수 조관우 인터뷰 中
    데뷔 24년차에 4회 연속 1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자타공인 90년대 대표 가수이자 ‘나는 가수다’의 레전드 가수였던 조관우. 2011년 성대 결절 수술 이후, 조 관우(54세)는 수입 없이 수개월을 생활했고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그의 재산을 관리하던 지인의 배신까지 겹쳐서 그는 십수억의 빚더미에 올라앉았 다. 버티려 노력했지만, 조관우 소유의 집 두 채가 모두 경매에 넘어가고 그는 빈털 터리가 되면서 신용불량자가 됐다. 현재 남은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인 조관 우. 하지만,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재혼으로 어렵게 이룬 가정까지 깨지고 말았 다. 별거 3년 여 만에 현재 이혼 조정 기간 과정 중에 있다. 가정과 집을 모두 잃은 조관우는 4개월 전부터 큰아들 조휘(24세)의 월셋집으로 거 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워 외출도 삼가야 했고, 수 면제의 도움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이다. 레전드 가수에서 급전직하 가정 과 집을 다 잃어버리게 된 조관우의 심경과 사연을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 최 초 공개한다.
    ■ 네 아이의 아버지 조관우, 삭발한 이유는?
    “예전에 늪으로 활동 많이 하실 때 저는 팬으로서 바라 봤었고, 뵐 때마다 영광이죠. 소리에 대해 항상 연구를 하시기 때문에 존경하고 많이 배우려 하는 선배님입니다.” - 가수 정동하 인터뷰 中
    “성대 수술 후 전신마취로 보름동안 소리가 일체 안 나와요. 그 상황이 오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옛날 소리를 내기 위해서 확장하고 조이는 연습을 계속 했어요.” - 가수 조관우 인터뷰 中
    <늪>, <꽃밭에서> 등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히트곡에 비해 얼굴 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데뷔 후 줄곧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기 때문인데... 그가 신비주의를 벗게 된 계기는 바로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을 통해서다. 하지만 그 후 조관우는 성대가 망가져 목소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수술을 받고 목소리는 겨우 돌아왔지만, 5옥타브를 넘나들던 특유의 가성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노래 밖 에 몰랐던 조관우는 절망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까지 했다고. 이런 힘든 과정 에서 장성한 두 아들 조휘(24세), 조현(21세)은 조관우를 지지해주는 기둥이자 삶의 원동력이 돼주었다. 두 아들은 뮤지션으로 성장해 2018년 조관우의 9집 정규 앨범 작 업을 도왔다. 조휘가 코러스와 피처링을 했고, 조현이 디렉팅을 도운 9집 앨범은 조 관우에게 무엇보다 의미가 깊다. 두 아들 이외에도 조관우에게는 두 번째 부인 사이에 아들(9세)과 딸을 두고 있다. 3-4년여 간 떨어져 있으며 6개월에 한번조차 보기 힘든 셋째 아들과 막내딸을 오랜 만에 만난 아빠 조관우. 아이들을 돌보는 게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보는 내내 입가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 어 미안하기만 하다고. 조관우 스스로 “그 동안은 하늘을 날아다녔다면 지금은 다시 땅바닥을 딛고 걸어가는 중”이라고 표현한다. 네 아이의 아버지 조관우는 아버지로 서, 가수로서 삶에 대한 의지를 굳게 하기 위해 최근 삭발까지 감행했다고 한다. 짧 은 머리로 10년 지기 친구 김태원, 영화사 관계자들 등을 만나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 는 조관우의 모습을 공개한다.
    ■ 1년만에 만난 조관우 아버지 명창 조통달과 어머니의 눈물!
    조관우는 한동안 자신이 처한 처지를 보이기가 두려워 부모님인 조통달 부부의 연락 을 일부러 피해왔다. 부친 조통달(74세)은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이다. 일 흔이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소리에 대한 열정으로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1년 여 만에 아들의 연락을 받아 전주에서 상경한 부모님은 아들 걱정에 마 음 고생이 심했던 만큼 보자마자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데...수고 많았다며 조관우를 안아주니 이내 그의 붉어진 눈시울을 볼 수 있었다. 아들이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어머니는 기어코 봉투까지 손에 들려 보냈다. 다시 내려가 면 손주들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한 조통달 부부. 웃는 모습만 보여 주고 싶지만 마음과는 달리 눈물이 앞선다. 눈물 가득한 조관우와 부모님의 재회 현 장을 담았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역경을 만난 레전드 가수 조관우가 그 역경을 헤쳐 나오기 위 해 노력하는 사연과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 재기하기 위한 눈물어린 분투를 <휴먼다 큐-사람이좋다>에서 공개한다.

    286회 2018-09-04

    7남매의 장남으로 산다는 건 방송인 이상벽 ■ 실향민 7남매의 장남, 이상벽이 가족에게 선물한 제 2의 고향
    이상벽은 한국전쟁 중 일어난 1.4후퇴 당시 4살의 나이로 어린 여동생과 헤어져 이 산가족이 되었다. 고향과 여동생을 보지 못하고 남한에 정착하게 된 지도 68년이 흘 렀다. 긴 세월 고향도 없이 지낸 가족들을 위해 이남에서 마음 붙일 고향집을 선물하 고 싶었던 이상벽. 그는 지난겨울 충청남도 홍성군에 가족들을 위한 집을 마련했다. 이제 이상벽의 가족들은 명절에 찾아갈 고향집이 생긴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홍성 집에서 이상벽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아쉽 게 탈락하며 여동생과의 재회는 불발됐지만 가족들은 새로 생긴 고향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갈 데도 없고 맨날 그런 쓸쓸한 명절을 보냈는데 올해부터는 홍성 집을 마련하고부터는 이 집을 고향 집이라고 가정을 하고 올해부터는 모여서 같이 지내자고 했어요.” - 이상벽 인터뷰 中
    50년 동안 마이크를 잡고 살아온 사람 아니랄까봐 가족 모임에서도 MC를 자처하 는 이상벽. 송편을 빚는 동안, 그의 지휘 아래 네 명의 여동생들은 일사분란하게 움 직인다. 그러나 71세의 베테랑 MC도 94세 어머니에겐 여전히 아이일 뿐! 이상벽은 어머니에게 송편 빚는 법을 배워 여동생들 틈에서 서툰 솜씨로 송편을 빚어냈다. 그 런가 하면 이상벽은 직접 윷판을 그리고 나무를 깎아 윷을 만들기 시작한다. 어머니 와 여동생들과 함께 직접 만든 윷으로 윷놀이를 즐기며 미리 명절 분위기를 만끽했 다.
    또한 추석을 앞두고 이상벽과 여동생들은 여주에 있는 아버지의 산소를 찾았다. 이 상벽의 아버지는 18년 전, 담도암으로 7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큰 아들 이상 벽 에게 아버지이자 형이 되어주던 아버지.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상벽은 1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장남으로 서 무너져 있을 수 없었던 이상벽은 어머니와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다시 일어 나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며 집안의 가장이 되어주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병상에 계실 때도 ‘내가 떠나면 어떻게 살아갈 거냐.’물고 자문자답하듯이 ‘큰 애가 있으니까 뭐.’(라고 하셨어요.) 그게 어머니를 나한테 맡겨도 괜찮겠다는 믿음이겠죠.” - 이상벽 인터뷰 中
    이북에서 내려와 쓸쓸할 가족들을 보듬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빈자리를 채 우며 살아가고 있는 7남매의 장남 이상벽. 유쾌한 가족들의 명절나기와 제 2의 고향 집을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한다.
    ■ 94세 어머니를 모시는 71세 아들 이상벽의 사모곡
    6년 전, 이상벽은 큰 아들로서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심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한 어 머니를 위해 고향 황해도 바다와 맞닿아 있는 인천에 집을 마련했다. 그런데 그들의 동거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그와 그의 어머니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의 14층과 25 층에서 윗집, 아랫집 이웃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 다 른 가족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한 이상벽의 배려다. 또한 94세의 나이에도 아 이스커피를 즐겨 마시는 어머니를 위해 집 앞 카페에 매달 10만 원을 맡겨 놓는 이상 벽. 어머니가 언제든 편하게 와서 친구들과 커피를 즐기시도록 한 그만의 특별한 효 도방식이다. 71세의 아들 이상벽은 94세의 어머니가 남은여생 마음 편하고 좋아하 시 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나는 우리 엄마야말로 가장 든든한 언덕이에요. 엄마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든든해요.” - 이상벽 인터뷰 中
    고향과 딸을 그리워하면서도 7남매를 모두 무사히 키워낸 이상벽의 어머니. 94세가 된 어머니를 위한 71세 아들 이상벽만의 독특한 효도 방법을 MBC 휴먼다큐 <사람 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성실이 밑천이다!’ 자수성가 MC 이상벽!
    이상벽의 50년 방송 인생은 1968년, 세시봉 음악 감상실에서 우연한 기회에 마이크 를 잡게 된 후 시작되었다. 세시봉 음악 감상실에서 진행자로서 끼를 뽐내던 중 TV 제작부의 눈에 띈 이상벽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대학 3학년 시절 처음 마 이크를 잡고 진행을 한 후, 군대를 전역한 이상벽은 그 후로 마이크가 아닌 펜을 잡 고 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한 일간지의 연예기자로 10년 동안 활약하며 기자로 서도 명성을 높였다.
    “고향이 이북이니까 정말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리랜서 MC라는 직업은 우리처럼 배경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좀 불안한 직업이잖아요. 그러나 정규 신문 기자는 안정적인 분야라는 쪽에서 고민하다가 기자 쪽으로 선택했어요.” - 이상벽 인터뷰 中
    연예기자로 명성을 높인 이상벽. 하지만 그는 10년 만에 기자생활을 정리하고 다 시 방송에 복귀한다. 그리고 <주부가요열창>, <아침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등 운명 같은 프로그램을 만나며 전설의 MC로 거듭나게 된다.
    이상벽하면 장수 MC란 수식어가 떠오를 정도로 <주부가요열창>을 6년, <아침마당 >을 12년 동안 진행해왔다. 그가 시청자들에게 오래 사랑받는 비결을 묻자 <아침마 당>을 함께 진행했던 이금희, 정은아 아나운서는 입을 모아 성실함이라고 답했다. 늘 생방송 1~2시간 전에 도착해 수기로 대본을 고쳐 쓰는 등 성실히 방송에 임하던 이상벽. <아침마당>을 진행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돌연 그가 어지럼증을 호 소하며 쓰러지게 됐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2003년, 12년간 진행하던 아침마당 MC 자리에서 하차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 후 방송에 복귀한 이상벽은 이제 진행자 가 아닌 출연자의 자리에서 방송에 임하고 있지만 그의 성실함은 여전하다.
    “우리 애들한테 항상 얘기하는 게 성실이 밑천이다. 우리가 친척 내외가 없는 이남에서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성실하게 사는 것이 밑천이다’라고 해요.” - 이상벽 인터뷰 中
    실향민으로, 또 7남매의 장남으로 71년 세월을 오직 성실함만으로 쉼 없이 달려온 이상벽. 94세 어머니와 함께 그려가는 이상벽의 황혼의 인생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 >에서 들어본다.

    285회 2018-08-28

    다시 서기 위해 – 김장훈 편 █ 작년 ‘욕설 논란’ 이후 두문불출한 김장훈의 심경 고백
    작년 이른바 욕설 논란으로 무대에서 사라진 가수 김장훈. 김장훈은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모 시민문화제가 열린 자리에서, 주차를 통제하던 경찰과의 마찰 에 대해 언급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후 김장훈은 부적절한 언행을 자성하는 의미 에서 모든 활동에서 물러나 무대에서 스스로 사라졌다. 1년 3개월만에 만난 김장훈 은 “지난 1년 넘는 시간 동안 말이 갖는 무게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면서 앞으로 의 포부를 밝혔다.
    “지금껏 철없이 살아왔지만, 이제는 품위 있게 살겠습니다. 품위를 지키고 싼 티 나지 않게, 여러분들이 김장훈의 팬이란 걸 부끄럽지 않게, 모나지 많게 그렇게 살겠습니다.” - 김장훈 인터뷰 中
    김장훈은 과거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각별히 친한 지인들 외에는 만남을 자 제하고, 상자에 가득한 약과 생식을 먹는 모습은 독거노인 그 자체였다. 그런 김장훈 을 위로해 주는 것은 반려견 키키다. 키키는 원래 김장훈 지인이 키우던 16살의 노견 으로 1년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키키를 살려보겠다며 정성으로 돌본 지 1 년. 시한부 판정이 무색하게 건강을 되찾은 키키는 이제, 외로운 김장훈을 위로해주 는 어엿한 가족이 되었다. 김장훈은 “항상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욕설 논란 이후) 이제 지쳤다고 인정한 순간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음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온 김장훈의 달라진 모습 을 만나본다
    █ 지독한 알레르기성 천식, 아버지의 부재, 공황장애까지...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던 김장훈의 가족사
    데뷔 27년차의 가수 김장훈. 그동안 숱한 논란과 사고로 겪어왔던 그가 가족사에 대해 어렵지만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의 김장훈은 지금의 강한 이미지와 는 달리 약한 아이였다. 그는 어려서 심각한 수준의 알레르기성 기관지 천식을 앓았 기 때문이다.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성분이 몸 속에 들어오면 고열로 쓰러져 1년 중 4개월 정도를 병원에서 지내야 했던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생각할 정 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저는 병원에서 3년을 살고, 학교도 못가고, 오래 못 산다는 얘기를 듣고. 항상 나약한 아이였고, 겁도 되게 많았어요. 그게 너무 싫어서, 나이 들어서 좀 발악을 했던 것 같아요.” - 김장훈 인터뷰 中
    병약한 몸으로 태어나 예민한 김장훈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부재였다. 태어나자마자 이별한 부모님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김장 훈. 혹여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어머니는 아버지 역할을 자처하며 어린 김장훈에게 ‘비겁하고 치사하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마라’,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어린 나이의 김장훈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가르침이었 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서 일을 했고, 아버지 없는 자식 소리 들을까봐 굉장히 엄하게 자라서 그런지 어머니와 아직까지도 어렸을 때 골이 좀 있어요.” - 김장훈 인터뷰 中
    엄한 어머니의 가르침 덕에 김장훈은, 성장해가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으로 다른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선행을 계속 해올 수 있었다.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하면서도 김장훈에게는 말 못할 아픔이 있었으니, 그를 계속 괴롭혀왔던 공황장애였다. 기약 없이 약을 먹던 어느 날, 발작 증세가 멈췄지만 그는 여전히 긴장감으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언제 또 다시 발작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숨이 차잖아요. 그 상태가 계속 되는 거예요. 얼마나 무섭겠어요.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면 드는 생각은 딱 하나에요.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 김장훈 인터뷰 中
    아버지가 없었던 가족사, 병약했던 유년시절, 호시탐탐 자신을 덮쳐왔던 공황장애 등과 싸워오면서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아왔던 김장훈. 그와 그의 가족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김장훈을 지탱해 온 밴드 멤버들과 팬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김장 훈
    ‘나와 같다면’ ‘혼잣말’ ‘나는 남자다’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인기를 누리던 가수 김 장훈은 ‘독도 지킴이’, ‘기부천사’ 등의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많은 선행을 했음에도 그 의 강한 성격 탓에 어느 때부턴가 많은 논란과 사고의 주인공이 되어 구설수에 오르 게 됐다.
    “어떤 이유라 해도 잘못이 정당화 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변명은 안 했어요.” - 김장훈 인터뷰 中
    특유의 강직한 성격으로 인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변명. 그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 지만, 자신을 믿고 기다린 팬들을 위해 김장훈은 오랜만에 작업실에서 조촐하게 소 규모 콘서트를 열었다. 콘서트에서 만난 밴드 멤버들과 팬들은 김장훈에게 변하지 않는 지지를 보냈다. 김장훈이 ‘자신에게 실망해서 떠났다가 다시 온 팬이다’라며 말 한 젊은 여성 팬 조윤정은 오히려 떠난 건 김장훈이라며 농담을 건네면서도 여전한 팬심을 과시했고, 멀리 대전에서 올라 온 할머니 팬 권옥자씨는 김장훈에게 참기름 을 선물하며 김장훈을 대신 해 울었다 말할 정도다. 자신을 대신해 울었다는 권옥자 씨의 말에 김장훈은 다시 한 번 결심을 다진다.
    “앞으로 저의 인생은 가족이나 팬 분들이 걱정 안 하게 최선을 다 할 거에요.” - 김장훈 인터뷰 中
    할머니 팬 권옥자씨와 김장훈의 인연은 아주 특별하다. 2017년 1월 7일 광화문에 서 열린 촛불집회 현장에서 권옥자씨는 무대에 올라 김장훈의 노래 ‘사노라면’에 맞 춰 춤과 스트레칭을 선보였고, 인터넷 상에서 스트레칭 할머니라 불리며 화제가 됐 다고 한다. 이후 권옥자씨는 김장훈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응원하는 열성 팬이 됐 다. 이제 세상에 대한 분노 대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움직이겠다 말하는 김장훈. 그를 지탱해 온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284회 2018-08-21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가수 김종진 한국대중음악의 자존심 ‘봄여름가을겨울’ 신장암 투병 중인 전태관의 근황과 김종진의 감동적인 우애
    1988년, 1집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로 데뷔해 30주년을 맞은 ‘봄여름가을겨 울’의 김종진(57)과 전태관(57).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 장비 사용과 퓨전 장르를 개척한 20 대 청년들이 어느덧 흰머리가 가득한 중년이 됐다. 30년이라는 시간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늘 굳건할 것만 같았 던 봄여름가을겨울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12년, 전태관의 신장암 발병. 김종진은 겉으로는 담담하게 전태관을 위로했지만 남몰래 울고 또 울었다. 암투병 중인 전태 관이 공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김종진은 홀로 30주년 기념 음반과 공연을 준 비하며 전태관의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 음악만 신경 쓰던 김종진이 돈과 행사 등 음 악 외 모든 것을 책임지던 전태관의 역할도 전부 혼자 해내려니 힘에 부치기 때문이 다. 최근 30년 음악 동지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지난 4월, 아내마저 먼저 암으로 떠나보내며 홀로 암 투병 중인 전태관을 위해 요 즘 김종진은 후배 가수들과 헌정 앨범을 준비 중이다. 윤종신, 윤도현, 장기하 등이 참여, 수익금은 모두 전태관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애인처럼, 분신처럼 각별했던 김 종진, 전태관의 30년 우정. 김종진이 눈물로 전태관의 근황을 전한다.
    최초 고백! 김종진은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난청에도 꺾이지 않고 완벽한 음을 찾아가는 열정
    김종진은 평생 음악을 위해 살았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오로지 음악 을 위한 일이다. 처음 받은 대학교 장학금으로 기타를 사서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는 김종진을 보고 어머니는 이후 아들이 음악하는 데 있어서 최고 후원자가 되어 주셨 다. 사실 김종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난청은 음악 의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했 다. 지금도 김종진은 공연 전 밴드 멤버들이 연주하는 소리 하나, 박자 하나도 놓치 지 않는다. 그의 집에는 공연에 사용되는 1930~1960년대 앰프, 기타, 전깃줄 등 더 깊은 소리를 내기 위한 오래된 장비들이 가득하다. 온전히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결 핍은 소리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어떤 이의 꿈’,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 명곡과 매회 열정적인 공연이 만들어졌다. 음악밖에 모르는 음악 장인 김종진이 방 송 최초로 밝히는 난청 고백과 이를 이겨내기 위한 그의 치열한 노력의 현장을 <휴 먼 다큐-사람이 좋다>에서 볼 수 있다.
    깔끔한 완벽주의자 김종진과 덜렁이 아내 이승신의 재혼 라이프
    2006년 11월, 김종진과 탤런트 이승신의 결혼 발표는 재혼이라는 이슈로 큰 화제 가 됐다. 아들과 딸, 각자 아이를 데리고 시작한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 다. 완벽주의자이자 ‘음악 밖에 모르는 바보’ 김종진과 덜렁이 아내 이승신의 성격 차 이와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방황하는 이승신의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처럼 숱한 우여곡절 끝에 하나의 가족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제가 (아내에게) 붙여준 별명이 옛날에는 내 사랑 덜렁이, 엄청 덜렁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깔깔 승신’이라고 매사에 깔깔 웃고 그러니까 음악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던 저에게 바깥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데구나, 밖으로 나갈 때는 언제든지 나를 맞아 줄 가족이 있고, 즐거운 분위기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줬죠.” - 김종진 인터뷰 中 -
    어느덧 결혼 12년 차, 깔끔쟁이 김종진은 아내 몰래 부엌을 청소하고, 자신이 만든 이색(?)건강 쉐이크를 함께 마시며 아내를 따라 운동에 나선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 은 취직해 독립했고, 딸은 일본 유학 중. 아이들의 안부 전화 한 통에 기뻐하고 안도 한다. 젊고 열정적이었던 청춘의 시간은 가고, 건강 걱정, 자녀 걱정, 노후 걱정을 해 야 하는 중년의 나이. 실패를 딛고 재혼이라는 어려운 난관을 거쳐 ‘브라보 마이 라 이프’를 만들어가는 김종진·이승신 부부를 21일(화) 오후 8시 55분 <휴먼 다큐-사 람 이 좋다>에서 만날 수 있다.

    283회 2018-08-14

    한 지붕 즐거운 4대 뮤지컬배우 민우혁 ▶ 사기, 폭행, 단칸방 생활 등 15년 무명 시절을 이겨낸 7전 8기 사나이 민우혁 과 아내 이세미
    뛰어난 가창력, 연기력에 훈훈한 외모로 대세 뮤지컬 배우로 떠오른 민우혁(36). 그 는 불과 6년 만에 단역에서 대형 뮤지컬 주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대 중에게 알리기까지 무려 16년의 기약 없는 무명시절이 있었다. 2004년 솔로 앨범 준 비 당시 기획사 사기를 당해 8천만 원 정도의 빚을 얻기도 하고, 매니저에게 감금 폭 행당해 뇌진탕으로 7번이나 입원하는 수모도 겪었다.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던 민우 혁에게, 2011년에 만난 이세미(35)는 그야말로 민우혁을 살려낸 구원자와 같았다. 지 인의 소개로 만난 지 1년 만에 무명의 가수, 생활고로 찌든 민우혁에게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자’며 결혼을 승낙했고 그를 뮤지컬가수의 길로 가게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세미는 걸그룹 LPG의 멤버로 활동 중이었으나 결혼과 동시에 LPG를 탈퇴, 연예 활동을 포기했다. 그 후, 홈쇼핑 쇼호스트로 입사해 가족 생계를 책임졌다. 아내 이 세미는 신혼 초, 월세 방에 살면서도 민우혁에게 뮤지컬 배우를 권유했고, 다시 민우 혁을 무대로 향하게 했다. 조건 없이 남편을 믿고 지지해준 아내의 희생을 알기에, 애처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민우혁. 인생의 힘든 고비들을 함께 건너와 전우애마저 느껴진다는 7년 차 부부 민우혁, 이세미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처음엔 외모만 보고 철없이 곱게만 자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예의 바른 모습과, 무명이었지만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면서 ‘이 남자랑 결혼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은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이지만, 분명 큰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믿음이 갔죠.“ - 아내 이세미 int -
    “세미는 저에게 산 같은 존재죠. 제가 여자였으면 저랑 결혼 안 했을 것 같거든요. 뭘 믿고 결혼하겠어요. 저랑 결혼한 세미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결혼 후에는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커졌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세미를 만난 건 정말 신의 한 수예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내 편이 아니어도 세미만 내 편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 민우혁 int -
    ▶ 최초 공개, 민우혁 가족의 ‘내 집 마련’! 4대 일곱 식구 유쾌한 대가족의 좌충 우돌 일상!
    최근 민우혁의 오랜 꿈이 이뤄졌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탓에, 온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을 꿈꿔온 민우혁. 단칸방 생활에서 시작해, 15년 만에 ‘내 집 마 련’에 성공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민우혁은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서 볼일을 보기 위해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다. 그 길이 무서워서 밤에는 화장실을 못 갈 정도. 그 기 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민우혁의 소원은 화장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었 다. 그런 그였기에 이번 ‘내 집 마련’에 감회가 새롭다. 85세의 나이에도 살림을 도맡아 주시는 할머니, 식당운영을 하면서도 육아를 담당 해 주시는 부모님, 쇼호스트 일에 육아까지 살뜰히 해내는 세미, 아빠 바라기 아들 이든이. 그리고 주말마다 놀러 오는 장인, 장모님까지. 3년 째 한 지붕 아래 모여 사 는 4대 가족은 유별나고 각별하다. 4대 가족 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보다 더 재미있 다’는 양가 사돈. 폭염이 기승을 부린 이번 여름휴가엔 양가사돈과 할머니, 손자 이 든까지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 시각, 민우혁은 땀 범벅된 채로 열정적인 경포 대 야외공연을 선보였다. 사위사랑은 장모라고, 민우혁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몰래 공 연장을 찾은 장인, 장모님. 민우혁의 장래 꿈은 장인, 장모님까지 모시고 다 함께 사 는 것이라고 한다. 일곱 식구 대가족과 장인, 장모까지 모여 만들어내는 민우혁 가족 의 하모니를 통해 이 시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화장실이 집 안에 없었어요.. 재래식 화장실까지 한참 걸어가야 볼일을 볼 수 있었는데, 밤엔 그 길이 무서워서 화장실을 못 갔어요. 어린 시절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제 첫 번째 소원이 화장실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거였어요. 두 번째 소원은 우리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사는 거였고요. 저는 한 번도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살아 본 적이 없었거든요.” - 민우혁 int -
    “누구에게나 유독 힘든 하루가 있잖아요.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 내 맘 같지 않다고 느끼는 날. 지친 몸 이끌고 퇴근해 현관에서 신발 벗고 있으면, 거실에 모여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여요. 뭐가 그리 좋은지. “아빠 왔다~” 인사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들을 보면 지친 몸과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씻겨 내려가요. 내 편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서. “ - 민우혁 int –
    ▶ “제발 효도하게 해주세요” vs “우리는 일할 때 가장 행복해”.. 한 치의 양보 없는 ‘함바 전쟁’!
    민우혁의 부모님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25년 간 전국을 돌며 ‘공사장식당’을 운 영해왔다. 특별한 사업 수완 없이 성실성 하나로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9년 전, ‘공 사 장식당 운영권 사기’로 모아놓은 전 재산, 18억을 한순간에 잃었다. 그런데 최근 부 모님이 ‘공사장식당’ 일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야 자리 잡고, 부모님께 효 도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한 민우혁에겐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 결국 민우혁은 긴 급 가족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른다. 이날, 가족회의에서는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 감마저 감돌았다. 평생 고생만 한 부모님을 알기에 민우혁은 ‘공사장식당’만큼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설득하지만, 부모님은 “일할 때 가장 행복하다. 10년은 더 일 할 수 있다“며 자꾸만 공사 현장에 나가려고 하신다. ‘효도 좀 하고 싶은 아들 부부’와 ‘짐 이 되고 싶지 않은 부모’의 갈등! 과연 민우혁의 바람대로 평탄한(?) 효도가 가능할 까? 85세 할머니부터 4세 아들까지 4대 일곱 가족이 서로 아끼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대 가족의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8월 14일 오후 8시 55분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엄마, 아빠가 고생한다고 함바식당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대요. 우리가 힘들어 보이니까 안타까운 가 봐요. 우린 평생을 해 왔던 일이라서 그런지, 할 줄 아는 게 함바식당 운영밖에 없어요. 다른 일은 못 해요. 우리도 아직 젊기 때문에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짐이 안 되도록 앞으로 10년만 더 식당 운영하고 싶어요..” - 민우혁 부모님 i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