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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83회 2018-08-14

    한 지붕 즐거운 4대 뮤지컬배우 민우혁 ▶ 사기, 폭행, 단칸방 생활 등 15년 무명 시절을 이겨낸 7전 8기 사나이 민우혁 과 아내 이세미
    뛰어난 가창력, 연기력에 훈훈한 외모로 대세 뮤지컬 배우로 떠오른 민우혁(36). 그 는 불과 6년 만에 단역에서 대형 뮤지컬 주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대 중에게 알리기까지 무려 16년의 기약 없는 무명시절이 있었다. 2004년 솔로 앨범 준 비 당시 기획사 사기를 당해 8천만 원 정도의 빚을 얻기도 하고, 매니저에게 감금 폭 행당해 뇌진탕으로 7번이나 입원하는 수모도 겪었다.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던 민우 혁에게, 2011년에 만난 이세미(35)는 그야말로 민우혁을 살려낸 구원자와 같았다. 지 인의 소개로 만난 지 1년 만에 무명의 가수, 생활고로 찌든 민우혁에게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자’며 결혼을 승낙했고 그를 뮤지컬가수의 길로 가게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세미는 걸그룹 LPG의 멤버로 활동 중이었으나 결혼과 동시에 LPG를 탈퇴, 연예 활동을 포기했다. 그 후, 홈쇼핑 쇼호스트로 입사해 가족 생계를 책임졌다. 아내 이 세미는 신혼 초, 월세 방에 살면서도 민우혁에게 뮤지컬 배우를 권유했고, 다시 민우 혁을 무대로 향하게 했다. 조건 없이 남편을 믿고 지지해준 아내의 희생을 알기에, 애처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민우혁. 인생의 힘든 고비들을 함께 건너와 전우애마저 느껴진다는 7년 차 부부 민우혁, 이세미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처음엔 외모만 보고 철없이 곱게만 자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예의 바른 모습과, 무명이었지만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면서 ‘이 남자랑 결혼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은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이지만, 분명 큰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믿음이 갔죠.“ - 아내 이세미 int -
    “세미는 저에게 산 같은 존재죠. 제가 여자였으면 저랑 결혼 안 했을 것 같거든요. 뭘 믿고 결혼하겠어요. 저랑 결혼한 세미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결혼 후에는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커졌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세미를 만난 건 정말 신의 한 수예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내 편이 아니어도 세미만 내 편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 민우혁 int -
    ▶ 최초 공개, 민우혁 가족의 ‘내 집 마련’! 4대 일곱 식구 유쾌한 대가족의 좌충 우돌 일상!
    최근 민우혁의 오랜 꿈이 이뤄졌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탓에, 온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을 꿈꿔온 민우혁. 단칸방 생활에서 시작해, 15년 만에 ‘내 집 마 련’에 성공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민우혁은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서 볼일을 보기 위해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다. 그 길이 무서워서 밤에는 화장실을 못 갈 정도. 그 기 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민우혁의 소원은 화장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었 다. 그런 그였기에 이번 ‘내 집 마련’에 감회가 새롭다. 85세의 나이에도 살림을 도맡아 주시는 할머니, 식당운영을 하면서도 육아를 담당 해 주시는 부모님, 쇼호스트 일에 육아까지 살뜰히 해내는 세미, 아빠 바라기 아들 이든이. 그리고 주말마다 놀러 오는 장인, 장모님까지. 3년 째 한 지붕 아래 모여 사 는 4대 가족은 유별나고 각별하다. 4대 가족 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보다 더 재미있 다’는 양가 사돈. 폭염이 기승을 부린 이번 여름휴가엔 양가사돈과 할머니, 손자 이 든까지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 시각, 민우혁은 땀 범벅된 채로 열정적인 경포 대 야외공연을 선보였다. 사위사랑은 장모라고, 민우혁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몰래 공 연장을 찾은 장인, 장모님. 민우혁의 장래 꿈은 장인, 장모님까지 모시고 다 함께 사 는 것이라고 한다. 일곱 식구 대가족과 장인, 장모까지 모여 만들어내는 민우혁 가족 의 하모니를 통해 이 시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화장실이 집 안에 없었어요.. 재래식 화장실까지 한참 걸어가야 볼일을 볼 수 있었는데, 밤엔 그 길이 무서워서 화장실을 못 갔어요. 어린 시절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제 첫 번째 소원이 화장실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거였어요. 두 번째 소원은 우리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사는 거였고요. 저는 한 번도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살아 본 적이 없었거든요.” - 민우혁 int -
    “누구에게나 유독 힘든 하루가 있잖아요.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 내 맘 같지 않다고 느끼는 날. 지친 몸 이끌고 퇴근해 현관에서 신발 벗고 있으면, 거실에 모여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여요. 뭐가 그리 좋은지. “아빠 왔다~” 인사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들을 보면 지친 몸과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씻겨 내려가요. 내 편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서. “ - 민우혁 int –
    ▶ “제발 효도하게 해주세요” vs “우리는 일할 때 가장 행복해”.. 한 치의 양보 없는 ‘함바 전쟁’!
    민우혁의 부모님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25년 간 전국을 돌며 ‘공사장식당’을 운 영해왔다. 특별한 사업 수완 없이 성실성 하나로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9년 전, ‘공 사 장식당 운영권 사기’로 모아놓은 전 재산, 18억을 한순간에 잃었다. 그런데 최근 부 모님이 ‘공사장식당’ 일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야 자리 잡고, 부모님께 효 도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한 민우혁에겐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 결국 민우혁은 긴 급 가족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른다. 이날, 가족회의에서는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 감마저 감돌았다. 평생 고생만 한 부모님을 알기에 민우혁은 ‘공사장식당’만큼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설득하지만, 부모님은 “일할 때 가장 행복하다. 10년은 더 일 할 수 있다“며 자꾸만 공사 현장에 나가려고 하신다. ‘효도 좀 하고 싶은 아들 부부’와 ‘짐 이 되고 싶지 않은 부모’의 갈등! 과연 민우혁의 바람대로 평탄한(?) 효도가 가능할 까? 85세 할머니부터 4세 아들까지 4대 일곱 가족이 서로 아끼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대 가족의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8월 14일 오후 8시 55분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엄마, 아빠가 고생한다고 함바식당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대요. 우리가 힘들어 보이니까 안타까운 가 봐요. 우린 평생을 해 왔던 일이라서 그런지, 할 줄 아는 게 함바식당 운영밖에 없어요. 다른 일은 못 해요. 우리도 아직 젊기 때문에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짐이 안 되도록 앞으로 10년만 더 식당 운영하고 싶어요..” - 민우혁 부모님 int -

    282회 2018-08-07

    가족을 책임져 YO~, 배우 · 래퍼 양동근 편 ■ 이혼위기, 딸 질식사고... 우여곡절 많았던 결혼 생활 5년
    “연기적으로 봤을 때 대단하죠. 우리 동근 씨 송중기 씨 유아인 씨 박보검 씨 정해인 씨를 다 합친 거만큼 인기가 엄청 났죠“ - 방송인 박경림 인터뷰 中
    “배우 양동근은? 지금 야외 날씨처럼 더웠는데 눈을 이렇게 감고 집중하고 계시는 그 모습이 도인 같다는 느낌?(웃음) 선배님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색깔에서 캐릭터를 끌어오는 힘이 있는 배우라 카리스마가 느껴졌어요.” - 배우 구혜선 인터뷰 中
    2009년 군 시절, 자살 방지 캠페인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만난 아내 박가람(32세). 사실 부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양동근 팬이었던 23세 대학생 가람씨가 뮤직 비디오 출연을 자처했던 것이다. 4년의 열애 끝에 2013년 둘은 가정을 이뤘다. 누구 보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양동근은 결혼 이후 달라졌다. 부부 둘 다 셋째기 때문에 아이를 셋 정도 계획했다고. 그렇게 준서(6세), 조이(4세), 실로(2세) 다둥이 아빠가 되면서 24시간 육아모드, 생활패턴까지 바뀌었다. 배우 생활을 하며 운전을 전혀 하 지 않았던 양동근 이지만 아이들 등하원은 온전히 아빠 몫이다. 아이들 등원 길에 만 난 반가운 친구 개그맨 오지헌! 둘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자주 만나 다둥이 아빠로서 고충을 털어놓는 사이다. 사실 양동근이 처음부터 육아에 뛰어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첫째 준서를 26세라는 젊은 나이로 임신한 아내는 산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예쁜 옷도 입고 자유로이 놀러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위축됐다고. 바빴던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 지도 못해 결혼 1년도 채 안 돼 이혼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혼 생활에 찾아 온 위기는 그 뿐이 아니었다. 둘째 딸 조이를 잃을 뻔한 사고가 있 었다. 집 안 운동 기구에 조이의 목과 팔이 걸려 잠시 숨이 끊어졌던 위험천만한 순 간이었다고. 다행히 아빠 양동근의 심폐소생술로 조이 숨이 돌아왔고, 뇌손상 없이 건강을 되찾았다. 이를 계기로 부부는 감사함에 사이가 단단해졌다고.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 무더위를 피해 부부는 세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아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짐 싸는 것에서부터 전쟁이다! 차 가득한 짐을 싣고 떠난 여 행, 아이들 때문에 가람 씨는 차 안에서도 정신이 없다. 오랜만에 신나게 물놀이 하 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구운 바비큐로 단란한 시간을 보냈 다. 아이들을 재운 후 부부는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 하며 부부사이를 좁히고 있지만, 여전히 남편에 대한 서운함에 아내는 눈물을 보이 는데...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운 양동근의 속마음을 <사람이 좋다>에 서 공개한다.
    ■ 개성파 배우에서 ‘생계형’ 배우로 거듭나다
    9살 나이에 드라마 <탑리>로 데뷔한 전설의 아역 배우 양동근. 아역시절 그에겐 남 모를 고충이 있었다. 택시 운전을 하시는 아버지가 바빠 촬영장에 혼자 다녔던 그는 짓궂은 어른들 때문에 겁이 많아져 쌍절곤, 비비탄 총 등을 가방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도 말이 없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도 그 때문이라고. 하 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눈빛이 달라진다. 배우로서 그의 전 성기는 2002년, 24살에 찾아왔다. <네 멋대로 해라>의 ‘고복수’역을 맡아 인생 캐릭 터를 선보이며 각종 상을 휩쓸었다. 그와 작품을 함께 했던 박경림은 당시 양동근의 인기가 지금 송중기, 유아인, 박보검, 정해인을 합친 정도였다고 말한다. 탄탄대로일 것만 같던 그의 연기 인생길에도 내리막이 찾아왔다. 30대 들어선 뒤로 그의 연기를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것. 개성 강한 캐릭터가 오히려 역할을 맡는데 독 이 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아들이 집 한 채 없이 아직도 월세를 산다며 속상함을 내비쳤다. 그렇지만 양동근은 조급해 하지 않고 웅크려 지금까지 제 2의 전 성기를 기다려왔다. 최근 드라마, 영화 등 많은 작품에서 러브콜이 오고 있다는 양동 근. 그의 나이 마흔,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배역을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작품마 다 출연해 자칭 ‘생계형’ 배우로 거듭났다는데. 조연을 맡아 대기 시간이 아무리 길지 라도 감사하다는 양동근. 롤러코스터 같았던 그의 32년 연기인생을 되돌아본다.
    ■ 힙합전사 양동근, 그가 음악 안에서 숨 쉬는 이유
    흐느적거리는 특유의 제스처, 독보적인 랩 실력을 자랑하는 힙합 1세대 양동근. <골 목길>, <탄띠>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가 돌아왔다. 아역시절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던 그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마음의 안식처는 음악뿐이었다. 20대 양동근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가사로 풀어내며 래퍼로서 대중들의 인 정을 받았다. 하지만 힙합 무대는 만만치 않았다. 밀려드는 후배들로 설 자리를 점 차 줄어들고, 음원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나이가 들고 가족이 생기면 서 그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거칠고 강렬한 힙합에서 벗어나 아이들도 들을 수 있 는 부드러운 음악으로 전향하게 된 것이다. 가사도 180도 달라졌다. “아빠가 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네, 허리띠 졸라매” “세 아이의 아버지, 먹여 살리기 위해 열 심히 챙겨”와 같은 가사로 아빠들의 공감대도 형성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음악세계 에 도전하고 있다. 그가 속한 그룹 ‘흉배’와 유튜브 방송을 통해 팬들과도 소통하는 것이다. 가사를 쓸 때 전과 달리 책임감이 무겁지만 힙합을 향한 열정은 여전한 양동 근. 꺼지지 않는 ‘성냥불’ 같은 양동근의 힙합 세계를 파헤쳐 본다.
    가장, 남편으로서 숨 가쁘게 달리는 만능엔터테인먼트 양동근! 그의 바쁜 일상은 7일 (화) 오후 8시 55분 MBC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281회 2018-07-31

    풍운아로 살다 백일섭 ■ 나 혼자 잘~ 산다! 백일섭의 유쾌한 싱글 라이프!
    혼자 사는 삶도 어느덧 3년. 백장금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요리의 달인이 된 백일 섭! 즉석 밥을 해동한 그가 별안간 밥 위에 얼음을 쏟아 부었다. 보리 굴비는 밥을 차 게 해서 먹어야 한다며 똑 부러지는 레시피까지 자랑한 백일섭. 이내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보리 굴비를 조리하더니 손수 살을 발라내는 등 프로 혼밥러다운 면을 뽐냈 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묶어 냉동실에 넣고 곧바로 설거지를 하는 등 주부 100단의 모습을 자랑했다.
    “(졸혼) 처음에는 사먹기도 많이 했는데 초라하더라고요. 나가서 혼자서 설렁탕집에서 먹고 있는 게. 될 수 있는 대로 집에서 먹어요. 안 사 먹어요. 아주 익숙해졌어요.” - 백일섭 인터뷰 中
    3년 전 허리 수술 후 올해까지 이어진 무릎 수술에 최근 8kg가량 살이 찐 백일섭. 그 가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고민 끝에 백일섭이 선택한 운동은 다름 아닌 요가?! 호기 롭게 도전했으나 마음처럼 쉽게 따라주지 않는 몸이지만 하루 빨리 과거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고 싶은 마음으로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동작을 따라하며 요가에 임했다.
    요가에 도전해 지인들을 놀라게 했던 백일섭이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에도 도전장 을 내밀었다! 백일섭은 난생 처음 KTX를 타고 떠나는 기차여행을 선택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고향 여수에서 아찔한 해상 케이블카 타기와 향일암 오르기 등 쉽 지 않은 일정을 소화한 백일섭. 그가 떴다하면 구름떼 같은 인파가 모여 들며 백일섭 의 인기를 증명했다. 어린 시절, 아픔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고향은 이제 그를 따뜻 하게 맞아주었다.
    혼자서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백일섭의 유쾌한 싱글 라이프가 MBC 휴먼다큐 <사 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 백일섭의 유행어 “홍도야 우지마라~ 아 글씨!” 탄생 비화!
    “홍도야~ 우지마라~ 아 글씨! 오빠가 있다~” 맛깔 나는 노래로 전 국민을 홍도 열 풍에 빠지게 했던 주인공, 백일섭! 그는 1992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 드라마 <아 들과 딸>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연기했다. 백일섭하면 “홍도야 우지마라~ 아 글 씨!”가 떠오를 정도로 그가 취중에 흥얼거리며 한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런데 그가 드라마 속에서 술에 취해 부르던 이 노래엔 사실 숨겨진 뒷이야기가 있 다.
    “작가가 대본에는 ‘아버지 노래 부르고 돌아오신다’ 이거 하나 써놨어요. 그래서 내가 카메라 감독 보고 아무것도 묻지 마쇼. 내 마음대로만 하게 해주쇼. 나무가 있길래 모자를 거기다 걸어놓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거든요. 탁 털고 모자 쓰면서 아 글씨 했더니 카메라 감독이 놀라 갖고 넘어져버렸어요.” - 백일섭 인터뷰 中
    “무릎 치면서 최고였죠. ‘아 글씨 홍도야 우지마라’ 이 노래도 아버님이 술 드시면 그렇게 하셨던 노래였대요.” - 최수종 인터뷰 中
    막걸리를 마시고 실제 음주촬영을 했던 백일섭의 애드리브로 탄생한 명장면. 사실 은 그의 아버지가 모델이었던 것이다. 무역업에 종사하며 일본을 오갔던 백일섭의 아버지. 몇 달에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는 아버지를 어린 백일섭은 항상 기다리고, 그 리워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더욱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아버지를 닮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때문에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 에도 서툴렀다.
    “아버지와 가장 닮았던 역할을 아들과 딸이었던 것 같아요. 아들 좋아하고 나쁜 얘기지만 엄마한테는 좀 그렇게 하시잖아요. 술 좋아하시고, 노래 좋아하시고, 흥 많으시고. 그런 점에선 많이 비슷한 것 같아요.” - 백일섭 아들 인터뷰 中
    다양한 아버지 상을 연기해오며 국민 아버지 반열에 오른 백일섭. 하지만 가족들 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아버지 백일섭은 오히려 졸혼 후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족의 사랑을 천천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사실 저희가 다들 걱정도 많이 하고 했거든요. 선생님이 혼자 계시는 거에 대해서. 그런데 이야기 해보니까 선생님이 너무 혼자 사시는 것을 즐기시고 좋아하시니까.” - 이서진 인터뷰 中
    백일섭이 전하는 서툰 아버지로서의 진솔한 이야기, 그리고 주변인들이 말하는 그 의 연기 인생을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졸혼 후, 쌍둥이 손자들을 통해 사랑을 배우는 할배 백일섭
    1960년대를 대표하는 상남자, 백일섭! 그는 1965년 스물 두 살의 나이에 KBS 5기 공 채 탤런트로 데뷔한 후 무명 시절 없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큰 인기를 증명하듯 백일섭은 젊은 시절, 수많은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제가 주로 명동을 많이 나갔거든요. 내 꿈의 무대가 명동이에요. 명동의 카사노바, 명동의 빗자루. 전부 쓸고 간다고 그렇게 별명도 나고 그런 때가 있었다고요.” - 백일섭 인터뷰 中
    바람처럼 자유로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서른여섯의 나이에 결혼한 백일섭. 가정을 꾸린 후, 쉴 틈 없이 일하며 지냈지만 아들 백승우는 백일섭을 매번 술에 취해 귀가 해 크게 소리를 치던 아버지로 기억한다.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가족들 사이 에 섞이지 못하고 외로웠던 백일섭은 결국 3년 전, 졸혼을 선언했다.
    “특별한 계획도 없고 계기도 없고 언제부터인가 혼자 나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글쎄, 바람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그때는 집 나와서 조그만 오피스텔 가서 두 달을 못 넘겼어요. 답답해서 미치겠고 우울증 생길 것 같아서 두 달 동안 술 취해서 자려고 고생했어요.” - 백일섭 인터뷰 中
    “차라리 그게 편하겠다 생각했죠. 싸우시고 저러는 것 보다는. 좀 오해도 있고 아버지가 자기중심적인 것도 있고 그래서 외로우셨겠죠. 그 마음 아는 것 같아요.” - 백일섭 아들 인터뷰 中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던 백일섭이 2015년 쌍둥이 손자 우진이와 우주가 태어 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들 내외와 쌍둥이 손자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시간을 보낼 정도로 쌍둥이 손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백일섭. 그는 아들 가족과 식사를 하 면서도 손자에게 손수 밥을 먹여주며 본인의 식사는 뒷전으로 미루었다. 그리고 며 느리에게 고기를 챙겨주는 등 무심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또 한 며느리의 고장 난 휴대전화를 바꿔주며 통 큰 시아버지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살아있을 동안 우리 쌍둥이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사랑 주는 법을 배워서 사랑 한 번 쏟아보자. 그런 각오로 지금 살고 있어요.” - 백일섭 인터뷰 中
    졸혼 후 백일섭이 깨닫게 된 사랑의 가치를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확 인할 수 있다.

    280회 2018-07-24

    나는 트로트 가수다 – 강남 편 █ 장르 파괴, 형식 파괴, 세대 파괴! 우주 최강 듀오, 강남·태진아의 새로 운 도 전
    2015년 태진아와 함께 한 트로트 콜라보 앨범 「전통시장」을 통해 트로트 가수로 서 면모를 알린 가수 강남. 그가 ‘댁이나 잘하세요’란 새 노래로 어머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난히 트로트를 좋아했던 한국인 어머니 밑에서 어렸을 때부터 트로트 를 즐겼던 강남은, 자신에게 트로트 가수의 길을 열어 준 태진아에게 아버지라 부르 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을 ‘마음의 아버지’라 부르며 사랑을 아끼지 않는 강남 에, 태진아 또한 깜짝 선물로 강남에게 보답했는데... 디지털 싱글 앨범을 원하던 강 남에게 바로 정규 1집 발매를 선물 한 것. 더욱이 태진아가 스타일링을 자처하거나 직접 코러스 무대에 서기도 하고, 수익 분배 ‘10:0’이라는 파격적인 조건 등은 태진아 의 강남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늠하게 한다.
    “노력하는 강남. 그런 강남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는 강남이가 가는 길을 영원히 받쳐 줄 거예요.” - 태진아 인터뷰 中
    “노력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노력하면 항상 보답이 있더라고요.” - 강남 인터뷰 中
    좋아하면 서로 닮은 점을 찾기 마련, 요즘 그들은 말처럼 체격과 식성뿐만 아니라 목소리와 창법까지 서로 닮은 점을 찾느라 바쁘다. 타고난 끼로 어렸을 적부터 가수 를 꿈꿔왔던 강남.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능인이기 이전에 한 명의 가수였 다. 어린 시절 록을 했고, 그룹 M.I.B의 메인 보컬 때는 R&B를, 이제 새롭게 트로트 에 도전하고 있는 그. 34년 나이 차이, 38년 경력 차이쯤은 한 방에 날려버린 막강 듀 오, 그들의 과할 만큼 살가운 브로맨스를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 담 았다.
    █ 친구같은 엄마, 엄마같은 이모들. 강남을 지탱해 온 가족의 힘
    트로트 가수로서 노래 ‘댁이나 잘하세요’로 어머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강남. 그가 어머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노래의 중독성뿐만 아니라, 어머님들 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강남 특유의 친화력이다. 그의 친화력의 비결은 바로 그 의 어머니. 유난히 돈독한 모자지간인데, 강남은 어릴 적부터 국제결혼으로 건너 간 일본 생활이 쉽지 않았던 어머니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같이 트로트를 들으며 외로 움을 달랬고, 주말만 되면 어디론가 놀러 다니며 삶의 활력을 찾았다는 모자. 지금 도 시간만 나면 붙어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티격태격대는 그에게 어머니는 친구 같 은 엄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엄마랑 너무 많이 붙어 있었어요. 놀 때도 엄마랑 같이 놀았어요. 지금도 가끔 엄마랑 어디 가고, 추억이 되게 많아요.” - 강남 인터뷰 中
    강남에겐 어머니 말고도 친근한 존재들이 있었으니, 그건 세 명의 이모들! 어릴 때부 터 남다른 끼를 가져서인지 천방지축,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강남을 엄마 혼자 키우기가 버거워, 한국에 사는 이모들이 일본으로 원정까지 왔다는데... 당시 강남을 키웠던 이모들은 ‘강남 한 명 키우는 게 다섯 명 키우는 거랑 똑같다’고 푸념 하면서도 강남에 대한 애 정을 감추지 않았다. 강남 또한 이모들을 향해 엄마 같은 이모들이라 말 하며, 이모 들을 향한 애틋함을 내보인다.
    “무슨 일 있으면 항상 이모들이 나타나 줬으니까.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강남 인터뷰 中
    강남을 향한 이모들의 애정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일본에서 록 밴드를 하다 한국 에서 가수가 되고 싶어 한국으로 온 강남. 하지만 가수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하 와이에서 다니던 대학까지 포기하고 왔지만 언어 때문에 다시 쫓겨날 상황이었고, 거기에 힘겨운 연습생 생활과 데뷔 후에도 잘 풀리지 않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혼자 힘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를 도와준 것이 바로 이모들이었다. 녹음조차 불 가능할 정도로 발음이 엉망인 강남을 위해 아나운서 학원을 알아봐 주고, 강남이 아 플 때면 한달음에 달려와 준 이모들. 강남이 가수가 되는데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준 이모들은 그에게 있어, 한국의 어머니였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속을 썩이고 걱정 을 샀던 아이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엄마들’에게 효도를 하려 한다. 애교 많고 살가 운 딸 같은 아들 강남. 그의 효심 가득한 이야기를 MBC 휴먼 다큐 <사람이 좋다> 를 통해 만나본다.
    █ “술도 잘 안 마시고 만나면 수다 떨어요” 한국 생활에서 새로 생긴 가족! 권혁수, 김동현, 이재윤
    거침없고 솔직한 4차원 캐릭터로 나 혼자 산다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 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강남. 하지만 예능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언뜻 보면 거칠 고 무례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 선입견 때문에 가까이 가기 어려웠던 일인, 요즘 대세맨이 된 개그맨 권혁수다. 그는 방송을 생각 없이 막 하는 것 같은 강남의 모습 에 그와 거리를 두었다는데... 하지만 오히려 그런 강남 덕분에 방송에 대한 부담감 을 덜 수 있었다는 권혁수. 그 뿐만 아니라 함께 방송을 했던 연예인 대부분은 지금 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가족처럼 지내며, 강남의 형, 동생, 누나가 돼주고 있 다. 그런 그들이 입을 모아 하는 강남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솔직함이다.
    “선생님들이 얘기 하시는 게, 카메라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똑같다고 하셨어요. 가식 없는 그런 모습을 좋아하시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어요.” - 강남 인터뷰 中
    함께 격투기에 도전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참가해 자주 만나 친형제처럼 지내는 이 가 UFC 선수 김동현과 배우 이재윤이다. 이들이 아지트는 체육관, 바쁜 일정 때문 에 운동에 소홀한 강남을 늘 다그치며 운동 트레이너를 자처하는 이들이다. 겉은 근 육맨들이지만 술 한 병으로 서 너 시간 수다는 기본일 정도의 반전 매력을 가진 이 들... 프로그램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게 다반사인 연예계에서 관계를 계속 이어가 기가 쉽지 않은데, 이들은 친구를 넘어 형제 같은 면모를 과시한다. 국적 불문, 분야 불문. 모두를 친구이자 형제로 만드는 유쾌한 친화력의 소유자, 강남을 MBC <휴먼 다큐–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본다.

    279회 2018-07-17

    레오네 맛, 셰프 강레오 전교 꼴찌가 유명 셰프가 되다! ‘한국의 고든 램지’ 강레오는 농부의 자식?
    ‘마스터 셰프 코리아’를 통해 얼굴을 알린 셰프 강레오(43). 거침없는 독설, 차가운 이미지로 주목받았던 강레오는 외국 출생이 아닌 토종 한국 농부의 아들이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100여명, 28가구를 거느린 부농 집안에서 할머니, 어머니에게 요리 를 배웠던 그는 이미 초등학생 시절 웬만한 제사 음식을 직접 만들 정도로 요리는 자 연스러운 것이었고,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아들이 공부만 하기 바라셨던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강레오가 요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크게 반대했다. 아버지 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강레오는 공부에 손을 놓고 전교 꼴찌가 되었다. 아버지와 의 반대와 대화 단절에도 불구하고, 강레오는 고등학생 때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했 고, 발골하는 사람들의 소·돼지 발골하는 모습에 반해 막일꾼으로 발골을 배우기도 했다.
    “장남이다 보니까 하지 말하는 것이 무척 많았어요. 자전거도 못 타게 했고, 수영도 못하게 해서 무작정 한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익히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오로지 공부만 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공부 빼고 다른 건 다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잘하는 게 요리였지요.” - 강레오 인터뷰 中 -
    21살 때 돈을 모아 영국으로 건너간 강레오는 인종차별, 18시간 노동 등을 견디며 런던과 두바이의 식당에서 청소부터 시작해 고든 램지, 피에르 코프만, 피에르 가니 에르의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데 양식 셰프인 그가 한식에 뛰어든 지 9년. 요리연구가 한복려에게 한식을 배우고, 그만의 요리를 위해 새롭게 도전하는 중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정상에서 내려와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다시 도전하고 있는 강레오의 25년 요리 인생이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 펼쳐진다.
    딸 바보 넘어서 딸 노예?! 강레오 vs. 박선주의 못말리는 딸 사랑 대결
    2012년 6세 연상 가수 겸 작사가인 박선주(48)와 결혼한 강레오는 딸을 갖고 싶어 결혼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딸이 박선주를 닮은 딸이기를 바랐 고, 딸 에이미(5)가 태어났다. 2014년 SBS ‘오마이베이비’에 출연했을 당시 17개월이 었던 에이미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둘 다’라고 말할 정도로 훌 쩍 자랐다. 유명 셰프 강레오네 주방은 아내 박선주 차지. 하지만 딸을 깨우고, 아침 밥상을 차리고, 유치원에 보내는 등 육아는 아내에게 맡기지 않는다. 아내 박선주는 이런 강레오를 바라보며 딸 바보가 아니라 딸 노예라고 할 정도.
    “저는 결혼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박선주 아니었으면 결혼 안 했을 거 같아요. 박선주라는 사람이 너무 멋있고, 저는 예전부터 딸을 가지고 싶은 로망이 있었기 있었기 때문에 어느 날 제가 그 이야기를 한 거죠. 내가 딸을 갖고 싶은데, 당신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요.” - 강레오 인터뷰 中 -
    “아이 아빠가 배려의 수준이 너무 높아요. 예를 들면 아이가 성장할 때 쓰는 물건들을 이미 몇 개월 전에 다 주문해 놓고, 아이가 필요한 건 미리 다 준비하고... 그런 거 보면 이런 아빠를 만난 에이미는 복이 많은 친구다 싶어요. 딸 바보가 아니라 딸 노예같을 때가 있어요.” - 박선주 인터뷰 中 -
    강레오의 아버지는 장남이니까 다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자전거, 수영 등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된 강레오는 자신의 아버지와 사뭇 다르다. 틈틈이 에 이미에게 자전거, 수영을 알려주고 딸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은 아버지다. 딸 에이미가 나중에 자라서도 함께 의논하고, 대화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그는 딸 과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다. 주방에서는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지만 딸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못 말리는 딸 노예 강레오의 딸 사랑 일기가 공개된다.
    159개 시·군과 200여개 마을, 전국 방방곡곡 강레오의 ‘자신의 맛’ 찾기 순례
    요리 인생 25년. 강레오의 요리 열정은 아직 뜨겁다. 식재료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어떻게 유통돼서 주방으로 왔는지 아는 것이 요리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 그는 유 명 셰프와는 어울리지 않게 식재료를 더 잘 알기 위해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졸업했 고, 현재 한국수산벤처대학에 재학 중이다. 또한, 10년 전부터 전국의 시, 군을 돌아 다니며 좋은 식재료를 찾아다니고 있다. 현재 그가 방문한 곳이 159개 시 군, 200여 개 마을. 단순히 식재료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식재료를 키우는 농부와 어부의 철 학까지 배우며 그들과 ‘새로운 음식’, ‘강레오만의 맛’을 찾기 위해 교감하고 소통하 는 중이다. ‘빨리 정상에 오르면 빨리 내려가야 한다. 성공을 서두르지 마라’는 어머니의 말씀 은 강레오의 인생철학. 요리사를 꿈꿨던 전교 꼴찌 10대 소년이 40대 유명 셰프가 되 었지만 더 나은 건강한 요리에 도전장을 던지며 유쾌한 식재료 여행에 나서는 강레 오의 여정을 17일(화) 오후 8시 55분 <휴먼다큐-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볼 수 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