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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79회 2018-07-17

    레오네 맛, 셰프 강레오 전교 꼴찌가 유명 셰프가 되다! ‘한국의 고든 램지’ 강레오는 농부의 자식? ‘마스터 셰프 코리아’를 통해 얼굴을 알린 셰프 강레오(43). 거침없는 독설, 차가운 이미지로 주목받았던 강레오는 외국 출생이 아닌 토종 한국 농부의 아들이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100여명, 28가구를 거느린 부농 집안에서 할머니, 어머니에게 요리 를 배웠던 그는 이미 초등학생 시절 웬만한 제사 음식을 직접 만들 정도로 요리는 자 연스러운 것이었고,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아들이 공부만 하기 바라셨던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강레오가 요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크게 반대했다. 아버지 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강레오는 공부에 손을 놓고 전교 꼴찌가 되었다. 아버지와 의 반대와 대화 단절에도 불구하고, 강레오는 고등학생 때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했 고, 발골하는 사람들의 소·돼지 발골하는 모습에 반해 막일꾼으로 발골을 배우기도 했다. “장남이다 보니까 하지 말하는 것이 무척 많았어요. 자전거도 못 타게 했고, 수영도 못하게 해서 무작정 한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익히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오로지 공부만 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공부 빼고 다른 건 다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잘하는 게 요리였지요.” - 강레오 인터뷰 中 - 21살 때 돈을 모아 영국으로 건너간 강레오는 인종차별, 18시간 노동 등을 견디며 런던과 두바이의 식당에서 청소부터 시작해 고든 램지, 피에르 코프만, 피에르 가니 에르의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데 양식 셰프인 그가 한식에 뛰어든 지 9년. 요리연구가 한복려에게 한식을 배우고, 그만의 요리를 위해 새롭게 도전하는 중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정상에서 내려와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다시 도전하고 있는 강레오의 25년 요리 인생이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 펼쳐진다. 딸 바보 넘어서 딸 노예?! 강레오 vs. 박선주의 못말리는 딸 사랑 대결 2012년 6세 연상 가수 겸 작사가인 박선주(48)와 결혼한 강레오는 딸을 갖고 싶어 결혼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딸이 박선주를 닮은 딸이기를 바랐 고, 딸 에이미(5)가 태어났다. 2014년 SBS ‘오마이베이비’에 출연했을 당시 17개월이 었던 에이미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둘 다’라고 말할 정도로 훌 쩍 자랐다. 유명 셰프 강레오네 주방은 아내 박선주 차지. 하지만 딸을 깨우고, 아침 밥상을 차리고, 유치원에 보내는 등 육아는 아내에게 맡기지 않는다. 아내 박선주는 이런 강레오를 바라보며 딸 바보가 아니라 딸 노예라고 할 정도. “저는 결혼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박선주 아니었으면 결혼 안 했을 거 같아요. 박선주라는 사람이 너무 멋있고, 저는 예전부터 딸을 가지고 싶은 로망이 있었기 있었기 때문에 어느 날 제가 그 이야기를 한 거죠. 내가 딸을 갖고 싶은데, 당신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요.” - 강레오 인터뷰 中 - “아이 아빠가 배려의 수준이 너무 높아요. 예를 들면 아이가 성장할 때 쓰는 물건들을 이미 몇 개월 전에 다 주문해 놓고, 아이가 필요한 건 미리 다 준비하고... 그런 거 보면 이런 아빠를 만난 에이미는 복이 많은 친구다 싶어요. 딸 바보가 아니라 딸 노예같을 때가 있어요.” - 박선주 인터뷰 中 - 강레오의 아버지는 장남이니까 다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자전거, 수영 등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된 강레오는 자신의 아버지와 사뭇 다르다. 틈틈이 에 이미에게 자전거, 수영을 알려주고 딸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은 아버지다. 딸 에이미가 나중에 자라서도 함께 의논하고, 대화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그는 딸 과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다. 주방에서는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지만 딸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못 말리는 딸 노예 강레오의 딸 사랑 일기가 공개된다. 159개 시·군과 200여개 마을, 전국 방방곡곡 강레오의 ‘자신의 맛’ 찾기 순례 요리 인생 25년. 강레오의 요리 열정은 아직 뜨겁다. 식재료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어떻게 유통돼서 주방으로 왔는지 아는 것이 요리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 그는 유 명 셰프와는 어울리지 않게 식재료를 더 잘 알기 위해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졸업했 고, 현재 한국수산벤처대학에 재학 중이다. 또한, 10년 전부터 전국의 시, 군을 돌아 다니며 좋은 식재료를 찾아다니고 있다. 현재 그가 방문한 곳이 159개 시 군, 200여 개 마을. 단순히 식재료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식재료를 키우는 농부와 어부의 철 학까지 배우며 그들과 ‘새로운 음식’, ‘강레오만의 맛’을 찾기 위해 교감하고 소통하 는 중이다. ‘빨리 정상에 오르면 빨리 내려가야 한다. 성공을 서두르지 마라’는 어머니의 말씀 은 강레오의 인생철학. 요리사를 꿈꿨던 전교 꼴찌 10대 소년이 40대 유명 셰프가 되 었지만 더 나은 건강한 요리에 도전장을 던지며 유쾌한 식재료 여행에 나서는 강레 오의 여정을 17일(화) 오후 8시 55분 <휴먼다큐-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볼 수 있 다.

    278회 2018-07-10

    테리우스 머슴 되다! 신성우 ▶ ‘신성우, 알고 보면 줌마미(美)넘치는 살림꾼?’ 원조 테리우스의 반전 라이 프
    1992년 ‘내일을 향해’로 가요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신성우. 큰 키와 꽃미남 외모로 단번에 여심을 사로잡으며 가요계의 ‘테리우스’로 등극했다. 1994년엔 직접 작사, 작 곡한 노래 ‘서시’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가요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된 그. 어느 새 데뷔 28년 차, 이제는 브라운관과 뮤지컬 무대를 넘나드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됐 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조각 같은 외모 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말수 없이 우 수에 젖은 눈빛으로 앉아있던 테리우스는 어디 가고 ‘줌마미(美)’ 넘치는 이웃집 아 저씨가 된 신성우. 뮤지컬 공연이 있는 날이면 동네 부녀회장님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대기실 복도를 서성이며 동료 배우들과 공연 스텝들의 근황을 속속들이 챙기 는 것은 물론이고 앙상블 배우들의 목 상태까지 신경을 쓰고 나야 마음이 놓인다. 카리스마 대신 편안한 ‘줌마미(美)’가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곳은 바로 그의 집에서 다. 어지간한 요리는 물론 요리 고수도 힘들다는 김장을 척척 해내는 신성우. 아내 도움 없이 혼자 파김치부터 백김치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종갓집 며느리가 따로 없 다. 항상 완벽할 것 같은 신성우의 숨겨진 모습!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그의 반전 라이 프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사실 91년도에 ‘내일을 향해’라는 곡이 나왔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신성우 씨는 스타성은 말할 것도 없고 작곡, 작사 능력까지 겸비해 음악성까지 갖추고 있었죠. 그때 잘생긴 외모로 여성분들한테 인기가 많았지만 음악 관계 분들도 정말 괜찮은 친구가 나왔구나, 전부다 한 마디씩 했었어요. 외모로 음악성이 가렸던 거죠.” - 가수 유현상 int -
    “신성우 선배님은 무대 위에서는 정말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다가 무대에서 내려오면 후배들한테 너무 다정하세요.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동료처럼 대해 주시죠. 가수로서도 본인의 자리를 굳건히 하셨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도 후배들에게 물려 주셔서 항상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님이세요.” - 가수 바다 int -
    ▶ 터프가이 신성우의 수염을 잡아당긴 남자는 누구? 반 백 살 아빠의 육아 일 기 최초 공개!
    카리스마의 상징, 터프가이의 대명사 신성우. 그런 그의 수염을 함부로 잡아당긴 남 자가 있다?! 그는 바로 지난 1월 태어난 아들 ‘태오’다. 영원한 오빠일 줄 알았던 그 도 2016년 16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결혼 1여 년 만, 나이 50 세에 마침내 아들 ‘태오’가 태어났다. 친구들 손자 볼 나이에 얻은 아들이지만 열정만 큼은 젊은 아빠들 저리가라다. 투박한 손으로 아들 이유식을 챙기는 신성우. 터프가 이도 아이 밥 먹일 때는 비행기 흉내를 피할 수 없다. 바이크 대신 보행기를 조종하 고 기타 대신 동화책을 들고 있는, 너무도 낯선 신성우의 모습. 그가 아들이 태어난 이후 180도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다. 9살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부모님의 이혼과 그로 인한 아버지의 부재는, 신성우 에겐 씻어내기 힘든 상처였다. 남자가 되는 법, 어른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 이 없어 혼자 모든 것을 터득해야 했다. 본인의 아이에게는 같은 아픔을 물려주고 싶 지 않아 결혼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는 신성우. 마침내 긴 기다림 끝에 짝을 만나 아들 ‘태오가 태어났다. 태오에게만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든든함을 알려주고 싶다 는 그. 6개월 된 아들과 소주 기울일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는 못 말리는 ‘아들 바 보’ 신성우의 육아 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처음으로 담아본다.
    “나 어릴 적 아버지는 파란 하늘처럼 높기만 했죠. 그곳에는 꿈처럼 뛰어노는 하얀 새들과 하얀 구름이 언제부터인가 그 하늘이 내겐 아버지를 대신하곤 했죠. 알지 못한 많은 이야기와 이상들을 내게 가르쳤죠. 그렇게 난 그 하늘을 보며 어느새 어른이 돼 가고 있었죠.” - 신성우 <아버지 없는 아이들> 가사 中 -
    “아버지를 지금은 미워하진 않아요. 어릴 적에는 용서하지 못하겠다. 이런 게 있었지만 아빠가 되고 나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 태오한테는 절대로 그런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아빠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느끼게 해 줄 거예요. 멋있게 늙어서 아들 옆에 오랜 시간 함께 있어주는 아버지가 될 겁니다.“ - 신성우 int -
    ▶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한 신성우의 러브하우스
    신성우의 어머니는 이혼 후, 여군으로 복무하며 홀로 남매를 키웠다. 여자 몸으로 아버지 몫까지 해내야했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늘 강하고 엄한 모습만 보여주셨다. 더 넓은 곳에서 공부하라며 13살이었던 신성우를 혼자 서울에 올려 보내기까지 하셨 던 어머니였다. 그렇게 강하기만 했던 어머니가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홀로 서울에 올라온 13살 이후로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던 그는 문득 어머니와 함께할 시 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어머니의 여생만큼은 손주의 재롱을 보며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싶어 온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6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지만 어서 가족들과 한집에 살고 싶은 마음에 휴가까 지 자진 반납하고 집에 매달렸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계실 공간이라 더욱 꼼꼼하 게 준비한 신성우. 문만 열면 바로 산책이 가능한 정원 설계부터 화장실 손잡이 위 치, 계단 높이까지 신경을 쓰는 신성우에 건축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 집의 가 장이자 한 아이의 아빠로 새로운 집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신성우. 구석구석 가 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그의 러브하우스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 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혼자 서울에 창문도 없는 집에서 하숙하면서 산 이후로 어머니와 같이 산 시간 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건강이 안 좋아지시는 걸 보면서 같이 살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기가 커 가는 걸 옆에서 보면 더 행복해하실 것 같아서... 어머니가 우리하고 이별을 하기 전에 그 행복한 시간을 드리고 싶어서 집을 짓게 됐어요.” - 신성우 int -
    ▶ 20년 넘게 지속된 스토킹의 그리고 이를 지켜보며 가슴 졸여야만 하는 가족 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외모로 유난히 여성 팬이 많이 따랐던 신성우. 인기의 뒷면에 는 남모를 고통이 있었다. 번호를 바꿔도 밤낮으로 걸어오는 전화와 수백 개의 아이 디로 SNS에 올리는 근거 없는 비방들, 집 앞까지 찾아와 부리는 행패가 무려 20년 간 지속됐다. 자신만 괴롭힐 때는 ‘유명인으로 사는 숙명이겠거니’ 하고 참을 수 있었 다. 하지만 스토킹은 결혼과 아이가 태어난 후 극에 달했다. 온 세상이 연예계 대표 노총각의 결혼을 축하할 때 정작 주인공인 신성우가 결혼을 마음껏 자랑할 수 없었 던 이유였다. 아내의 얼굴이 알려진다면 아내가 어떤 피해를 입을지 눈에 뻔했기 때 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 후,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를 위협하는 협박까지 이어졌 다. 이번에 집을 지으면서도 무엇보다 보안 문제에 가장 신경을 쓴 이유였다. 가족들 을 두고 스케줄을 가야할 때면 창문과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다 확인한 후에야 집을 나설 수 있다는 신성우. 연예인의 가족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까지 겪게 한 것이 그는 내내 미안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아내와 아들인 만큼 앞으로 함께할 시간 동안은 행복만 주고 싶다는 신성우. 그에게 가족은 하루를 뜨겁게 살아가는 이유이자 힘이다.
    “(스토커가) 아내에 대한 근거 없는 루머를 만들어서 올리고, ‘내가 교통사고가 나서 빨리 죽기를 바란다는 둥’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퍼붓고 피해를 주는 상황이에요. 아내가 화면에 나오면 캡쳐해서 비방글을 올리고 찾아와서 행패를 부릴 게 뻔해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드러나 있는 인생이라 괜찮지만 저로 인해서 가족들이 곤란을 겪는 건 견디기가 힘들더라고요. 이 시기가 지나고 다시 한 번 저희 가족들이 다 같이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릴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 신성우 int -

    277회 2018-07-03

    내가 사는 이유, 배우 김승환 ■굴곡 가득한 연기인생, 배우 김승환
    “2000년대 초반에 인터넷이 활성화될 때에요. 처음으로 악성댓글이 달리고 뭇매를 맞으니까 영향을 받았어요. 끝나면 꼭 술을 먹어야 풀린다고 생각했고 너무 괴로웠어요.” - 배우 김승환 인터뷰 中
    1985년, 영화 <왜 불러>로 데뷔한 김승환. 이후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 <사랑 은 없다>, <애인> 등 많은 작품을 소화하며 90년대 청춘 스타로 남부럽지 않은 인기 를 누렸다. 한창 바쁠 때는 작품 서너 개를 동시에 촬영, TV만 틀면 채널 불문하고 그의 얼굴이 나올 정도로 바빴고 전성기 때 자신의 매니저가 배우 허준호였을 정도 로 인기 스타였다고 한다. 인기가도로 달리던 그가 배우로서 큰 시련에 부딪혔던 것이 2002년. 드라마 <내 이 름은 공주>에서 악역을 맡았던 김승환은 악성 댓글에 시달렸고 시청자들의 원성이 너무 커서 결국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대역으로 들어온 배우가 승승장 구하는 걸 집에서 TV로 시청해야만 했다. 그는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에 4갑씩 담배 를 피우고 매일 술을 마시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엉망이 된 생활이 그에게 독이 되었 던 걸까. 2005년, 대장내시경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종양. 조직 검사 결과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았는데...대장암 수술 및 항암 치료로 인해 연기활동을 모두 중단해야 만 했던 김승환의 파란만장한 연기 인생을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 공개한다.
    ■대장암도 이겨낸, 17살 어린 아내와의 사랑가
    “결혼은 운명이야 운명, 넌 그때 결혼 안 했으면 내 생각엔 죽었어. 옆에서 누군가 지켜주고 지켜봐줬기 때문에 이겨낸 거야“ - 배우 독고영재 인터뷰 中
    2007년, 그의 결혼식은 많은 화제를 모았다. 당시 마흔넷 노총각이 17살이나 어린 스 물일곱 살의 꽃다운 신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장암을 극복한 직후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먼저 프러포즈를 한 건 김승환이 아닌, 아내 이지연씨라고 한다. 암 투병 이후 심신을 추스르기도 바빴던 김승환은 상 처받을까 두려워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버렸지만, 김승환이 한 발짝 달아나면 이지 연은 두 발짝 따라붙었다. 아내의 적극적인 구애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된 두 사람. 하 지만 결혼생활이 녹록치는 않았다. 오랜 투병생활로 인한 드라마 공백기, 주식 투자 실패로 모든 재산을 탕진한 상태에서 시작한 두 사람. 김승환은 아직까지도 그때 기 억이 생생하다며 눈물을 흘리는데...
    “너무 힘들 때였어요. 와이프가 만삭이었는데 길 건너편에서 차에 애들 베넷 저고리를 걸고 팔고 있는 거예요. 그때 노점상 단속반이 오니까 와이프가 놀라서 집어넣는데 너무 불쌍했어요. 괜히 나 만나서 미안하죠.” - 배우 김승환 인터뷰 中
    이젠 자신이 남편을 먹여 살리겠다며 얼마 전부터 옷가게를 시작한 아내 이지연 씨. 김승환은 그런 아내를 대신해 초등학생인 두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챙겨주고 설거지 며 청소 등 집안 살림을 맡았다. 아내가 자신의 ‘삶의 목표’라는 김승환, 가족을 향한 그의 진심을 들어본다.
    ■‘살아남아야 한다’, 아빠 김승환!
    “회사로 말하면 부장 올라가야 되는데 계속 과장이야. 그런 게 딱 지금 나 같아요. 나이는 들어가는데 만년 과장을 하고 있으니까 너무 서글프죠.“ - 배우 김승환 인터뷰 中
    어느덧 쉰다섯의 나이가 된 중년 김승환. 그는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들(아들 김현 12세, 딸 김한별 10세)과 젊은 아내, 여든을 바라보며 홀로 사시는 어머니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룬다. 나이 많은 아빠를 혹여나 부끄러워 할까봐 아이들에겐 나이도 숨겼 다. 아이들은 아빠가 엄마보다 다섯 살 많은 줄로만 안다. 젊은 아빠로 보이기 위해 아이들 학교에 갈 때면 더 꽃단장을 하고,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도 운동 을 거르지 않는다. 하루에 헬스, 수영, 등산은 기본이고 20층인 집 계단을 걸어 올라 가며 매일 4시간 운동을 꼭 한다고 한다. 지금 그에게 가장 큰 숙제는 50대 배우로서 살아남는 일. 시간이 갈수록 그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은 줄어들고 심지어 캐스팅 연락조차 오질 않는다. 대한민국의 50대 가 장이라면 느껴질 ‘만년 부장의 설움’...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 밀려 제자리를 맴돌 며 점차 뒤쳐지는 자신의 모습이 서글프다.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 하는 등 돈을 벌기 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보고자 새 로 찍은 프로필 사진을 들고 한 영화사를 찾았다. 주연이 아닌, 아주 작은 역할이라 도 할 수 있다는 그에게 예상치 못한 냉담한 반응이 돌아오는데...
    칠전팔기,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는 김승환의 힘찬 도약은 3 일(화) 오후 8시 55분 MBC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276회 2018-06-26

    우리 이런 사람이야, DJ DOC ■ 가요계의 악동 DJ DOC? 우리 그런 사람 아니에요!
    데뷔 24년차, 최장수 힙합그룹 DJ DOC. ‘머피의 법칙’, ‘여름이야기’, ‘DOC와 춤 을’, ‘Run To You’, ‘나 이런 사람이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오랫동안 사랑받 고 있다. 그러나 숱한 사건 사고들로 인해 대중은 DJ DOC를 ‘가요계의 악동’으로 기 억하고 있다. 그에 대한 DJ DOC의 솔직한 마음은 어떨까?
    “저희가 다 잘한 건 아니에요. 근데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우리가 잘했다, 우리가 맞다가 아니라 솔직히 언젠가 알겠지? 이런 마음도 조금 있었어요. 흔히들 얘기하는 주홍 글씨 같은 건데. 안고 살아야죠. 그게 우리 숙명이고 우리 팔자예요.” - DJ DOC 인터뷰 中
    수많은 논란에도 DJ DOC는 그동안 어떤 해명도 하지 않으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람이 좋다’에서 그들이 담담하게 밝힌 속내는 우리가 생각했던 ‘악 동’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해와 악성 댓글에 상처받는 그들도 결국 속앓이를 하는 마 음 여린 남자들일 뿐이었다. 바람 잘 날 없던 20대를 지나, 이제는 40대 중후반의 아 저씨가 된 DJ DOC.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DJ DOC의 진짜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 에서 공개한다.
    ■ 너희가 진짜 창렬스러운 게 뭔지 알아?!
    ‘창렬하다’라는 유행어로 곤욕을 치른 김창열. ‘창렬하다’는 화려한 포장과 달리 내 용이 부실하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이는 김창열이 이름을 빌려준 식품 회사 제품의 구성이 엉성하다는 평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본의 아닌 논란으로 이름 자체가 트라 우마로 남게 되었다는 김창열. 수십 년간 김창렬로 활동하던 그가 이름까지 변경할 정도로 큰 상처를 받으며 속앓이를 했던 것.
    “‘창렬스럽다’ 저 며칠 전에도 그 말 들었거든요. 주환이도 학교에서 그런 말 듣나 봐요. 주환이가 저한테는 얘기하는 편이긴 한데 그런 거 때문에 상처 받았다는 느낌보다도 저로 그렇고 오빠 걱정이 되죠. 괜찮아 질 거야. 나중에는 저게 좋은 말로 될 거야” - 아내 장채희 인터뷰 中
    “내 잘못도 있죠.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거였다면 조금 더 신경을 쓰고 했었어야 하는데 그런데 너무 이름이 언급되고 ‘창렬스럽다’가 놀림거리가 되는 것 같아서 속상하긴 했어요. 그 이름이 그렇게 나쁜 이미지라면 그걸 좋게 만들려고 저는 노력을 할 거고 좋은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 김창열 인터뷰 中
    과거 숱한 논란에 휘말리며 악동이라고 불리던 김창열은 어느새 결혼 16년 차에 접 어든 가장이다. 15살 아들 김주환 군과 6살 딸 김주하 양에겐 최고의 아빠가 되어주 고 싶은 김창열. 2003년 결혼한 이후,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그는 각종 예능에서 활약하는 등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또한 2006년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를 맡 은 김창열은 올해로 13년 째 라디오를 진행하는 장수 DJ이기도 하다. 가족을 위해서 라면 기꺼이 슈퍼맨을 자처하는 김창열. 그가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 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어릴 적 중동에서 일을 하시던 아버지로 인해 아버지와 추억 이 많지 않아 아쉬움이 컸던 김창열. 좋은 아빠가 되겠다 결심한 그는 아이들과 많 은 시간을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라디오 생방을 마치고 돌아와서 딸 주하 양의 침대 를 직접 만들어주는가 하면 사춘기 아들 주환 군과 낚시 여행을 떠나는 등 친구 같 은 아빠의 면모를 보였다.
    무대 위의 악동 김창열에서 두 아이들의 친구 같은 아빠 김창열이 된 그의 진짜 ‘창 렬스러움’을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인생의 암흑기 낚시로 극복한 이하늘!
    연예계 대표 낚시꾼으로 알려진 이하늘. 전문 낚시꾼들도 인정할 만큼 실력이 대단 하다고 한다. 그런데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던 DJ DOC의 리더 이하늘이 20년간 낚시 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숨구멍 같아요. 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아가지고 때로는 내가 잘못한 게 더 많고 때론 내가 한 것보다 내가 안 한 것도 나한테 다 그대로 온전히 다 떠안아야 되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럴 땐 몇 달 동안 잠을 못자요. 숨구멍은 낚시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난 낚시 없었으면 죽었을 지도 몰라요.” - 이하늘 인터뷰 中
    이하늘이 9살이 된 무렵 고인이 된 그의 아버지 또한 생전에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하늘의 아버지는 낚시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픈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낚싯대를 놓을 수 없는 이하늘. 구설수로 인해 힘들 때 몸을 혹사 시키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그는 한 때 공황 장애를 겪기도 했다고 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결 국 아버지를 사고로 잃은 아픈 기억의 낚시뿐이었다.
    “밖에서 볼 때는 강해보이거든요. 그런데 되게 여려요. 자기가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쉽게 밖에 나가서 사람들한테 약한 모습도 안 보이려고 하고 그러니까 풀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낚시를 가는 것 같고, 한동안 공황장애가 왔어요. 자기가 그걸 이겨내는 법을 계속 찾는 것 같아요.” - 김창열 인터뷰 中
    수많은 사건 사고와 구설수에 오르내려도 묵묵히 버텨야했던 이하늘. 그는 살기 위 해 스스로 발버둥 쳤다. 야구에 빠졌던 것도 볼링에 빠져 지내는 것도 낚시에 집중하 는 것도 숨구멍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는 이하늘. 무대 위의 화려한 모습에 가려 져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이하늘의 속마음을 <사람이 좋다>에서 들어볼 수 있다.
    ■ 18년 만에 셋이 떠난 낚시 여행, 이젠 모두 가정을 이루고 싶은 DJ DOC
    한편 DJ DOC 멤버들은 18년 만에 함께 낚시 여행에 나섰다. 18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김창열의 아들 주환이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주환이를 위 해 낚시꾼 이하늘과 정재용이 준비한 대마도 여행. 아들 같은 조카 주환이에게 낚시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큰소리 친 이하늘과 정재용은 4시간 넘게 한 마리도 잡지 못했 다. 반면 아빠 김창열과 선상 낚시에 나선 주환이는 돔을 낚아 올리며 아빠와 총 70 마리가 넘는 생선을 잡아 올렸다. 또한 이하늘은 여행 중 주환이를 살뜰하게 보살피 며 삼촌으로서 살가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아들과 함께 다정한 모습을 뽐내 는 김창열을 향해 연신 부러움을 표했다.
    “나는 자식이 없잖아. 장인어른이랑 같이 낚시 다니고 그런 게 되게 하고 싶었어. 아내의 가족들까지 관계를 좋게 지내고 내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건 진짜 복이야.” - 이하늘 인터뷰 中
    대마도 낚시를 마친 후, 김창열 부자와 정재용은 김창열의 부산 처가로 걸음을 옮겼 다. 이들을 맞은 장인, 장모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며 진수성찬을 대접했다. 결혼 전 부모님을 모두 여읜 김창열에게 또 다른 부모가 되어준 장인, 장모. 사위를 향한 한결같은 믿음에 김창열 역시 장인, 장모를 부모로 대하고 모시고 있다. DJ DOC의 멤버들 역시 김창열의 장인, 장모와 각별하게 지내고 있는데. 멤버들의 결혼 소식까 지 기다릴 정도로 김창열의 장인, 장모는 DJ DOC 멤버들에게도 또 다른 가족이 되 어 주었다.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신 이후에 결혼을 한 거였기 때문에 부모님 대신 많이 애교도 부렸던 것 같고 못했던 것도 더 했던 것 같아요.” - 김창열 인터뷰 中
    마음 따뜻한 장인, 장모를 만난 김창열의 부산 처갓집 방문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DJ DOC, 8년 만에 준비하는 신곡 작업 현장 최초공개!
    데뷔 후 24년 동안 한결같이 DJ DOC표 음악으로 팬들을 들썩이게 하던 그들이 반가 운 소식으로 돌아왔다! 7집 ‘나 이런 사람이야“ 이후 8년 만에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 다는 DJ DOC. 40대 중후반에 들어서서 김창열은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치열하게 살고 있고, 이하 늘과 정재용은 각자 만의 방식으로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하고 있다 보니, 그들의 앨 범 작업은 조금씩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벽 앞에 고민이 많기도 하지만 불혹 을 넘어선 DJ DOC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하 다.
    “자기 삶이나 자기의 중요한 어떤 인생보다도 자녀들의 인생에 다 올인 하느라 잊고 살고 있는 그런 분들한테 하는 말이에요. 우리 아직 할 수 있잖아. 우리 재밌게 놀자!” - DJ DOC 인터뷰 中
    여전히 셋이 함께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DJ DOC. 의리와 정으로 똘똘 뭉 친 세 남자의 속 깊은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275회 2018-05-29

    혜영이 남편, 가수 션 █ 5년 만에 복귀하는 아내를 위해, ‘아이들은 내게 맡기라’는 외조의 왕! 뭇 남편들을 주눅 들게 하는 극진한 아내 사랑 끝판왕을 만나다
    MBC 주말드라마 ‘이별이 떠났다’로 5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하는 배우 정혜영은, 5월 23일 제작 발표회 자리에서, 남편 션의 외조에 대해 언급했다. 아내의 배우 생활 을 적극 지지하는 남편 션이 SNS를 통해, ‘아이들을 위해 참 많은걸 내려놓았던 혜 영이... 이제 배우 정혜영의 모습도 많이 보여줘~ 아이들은 내게 맡기고’라고 외조 의 의지를 밝힌 것이다. 지금도 아내에게 멋진 남자이고 싶어서 고강도 운동으로 초 콜릿 복근을 만들고, 떡볶이 트럭을 몰고 촬영장에 나타난 못 말리는 사랑꾼. 그는 단연 ‘혜영이 중심주의자’다.
    “저에게 가장 큰 행복은 혜영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 보는 거예요. 살면서 항상 행복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저는 남편으로서, 혜영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게 제 몫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아내가 여성으로 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주면 그 행복으로 더 멋진 아내로, 더 좋은 엄마로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 션 인터뷰 中
    지난 5월 25일 이별이 떠났다 최종 리허설 날, 촬영장에 션이 나타났다. 검은 민소매 티를 입고 치즈 케익을 들고 온 이유는 다름 아닌 17년 전, 자신이 혜영에게 했던 깜 짝 이벤트를 다시 재현한 것. 예전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맡아 스트레스가 많은 아 내를 위한 못말리는 사랑꾼의 이벤트 앞에 아내 정혜영은 결국 웃고 마는데... 그 외 에도 도시락도 모자라 떡볶이 트럭까지 몰고 왔다. 이유인즉 혜영이가 좋아하는 간 식이 떡볶이 이기 때문. 떡볶이를 앞에 두고 달달한 부부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자신 을 혜영이 남편 사랑꾼이라 소개했다는 말에 아내 혜영의 반응은?
    “당신이 그랬어? 혜영이 남편, 사랑꾼이라고? 근데 그거 맞아요. 언젠가 남편이 말했어요. 농담으로. ‘여보, 아이들은 내가 키웠잖아’라고요” - 션 인터뷰 中
    여전히 아내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는 아내 바보, 션. 외조와 내조를 구분하지 않고 아내인 정혜영을 좋은 아내이자 좋은 엄마, 좋은 여자로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 그 는 오늘도 끊임없이 노력한다.
    █ 여전히 무대를 사랑하고, 관객의 기쁨을 위해 과감히 웃통을 벗는 남 자, 47살에도 여전히 힙합 전사를 꿈꾸는 뮤지션, 가수 션에게 힙합이란 어떤 의미일까?
    힙합 뮤지션, 가수 션은 자신의 가수 인생이 ‘토토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 한 다. 자신을 사회복지사로만 알고 있던 어린 친구들이 토토가 이후 자신을 가수로 알 아보기 때문이다. 미군인 형을 통해 힙합을 접하고 홀딱 빠진 그가 혜영이 남편 다음 으로 불리고 싶은 이름은 가수 션이다.
    “저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그냥 힙합이에요. 그 때는 제 삶도 약간 힙합이었고요. 지금도 아직도 제 삶에는 힙합퍼 같은 부분이 있고요. 또 사회 복지사 다운 면면도 있는데,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결혼 하면서 ‘사회 복지사 스러운’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들이 더 크게 드러난 거 같아요” - 션 인터뷰 中
    숱한 선행이 화제가 돼서 힙합 가수로의 션은 덜 주목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사람 이 좋다>에서는 힙합 가수 션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다. 그건 다름 아닌, ‘최초 공 개, 슈 콜렉터의 신발장’. 음악계에서는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힙합을 사랑하고 좋아하여 희귀하고 진기한 힙합퍼의 신발을 모았다. 이번 방송에 서 그의 300켤레가 넘는 화려한 신발이 소개되는데, 그 신발을 통해 그의 힙합 사랑 을 가늠할 수 있다. 그토록 아끼던 신발을 아내 혜영과 함께 하는 첫 바자회에 내놓 다는 션, 기부 천사가 된 힙합 전사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다른 가수들이나 댄서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새로 나오거나 구하기 어려운 신발들만 신고 다녔어요. 저의 힙합 인생의 한 부분을 내어 놓는 거라서 아쉽기도 하죠. 아쉽기도 한데 혜영이하고 저하고 바자회는 처음이니까 내놓을 수 있어서 기뻐요.” - 션 인터뷰 中
    █ 축적 기부액이 45억, 세계 후원 아동만 900명, 사람이야? 천사야? 그런 그를 쉬지 않고 움직이게 한 건, ‘기적의 경험’이다. 과연 그에게 무엇이 기적이었는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한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다. 아내와의 결혼이 너무 행복 해, 그것을 나누고 살겠다는 다짐이 그를 사회복지사 션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제 900명이 넘는 빈곤아동의 아버지가 되었고, 아픈 어린이 ‘은총이’의 삼촌, 루게릭을 앓는 박승일 선수의 친구가 되었다. 언제나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며, 끊임없이 새 로운 도전 앞에 서는 그는 기부를 하나의 컨텐츠로 만들어 나가며 즐기고 있었다.
    “재밌잖아요. 우리 모두는 결국 행복을 찾으려고 살잖아요. 그게 맛 집을 찾아서 맛있는 걸 먹든 자기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든 우리가 살아가면서 궁극적으로 무언가 행복을 찾아가는 게 삶의 목표인데, 나눔에는 우리 삶에 한 부분의 행복이 숨겨져 있은 거 같아요. 그 행복을 찾아가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 션 인터뷰 中
    최근 션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승일희망재단에서는 9년 만에 기부금 20억을 들여 루게릭 요양 병원을 건립할 부지를 매입했다. 그 현장에서 션은 자신의 외숙모가 얼 마전 루게릭으로 사망했다는 아픈 가족사를 밝히기도 했는데, 그와 함께 2018년 다시 시작하는 루게 릭 환우들을 위한 아이스 버킷 첼린지, 특히, 월드스타를 포함 초특급 스타들의 이름 을 공개했는데... 그들의 정체가 방송에서 밝혀진다.
    “저 션이! 2018년도 첫 번째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도전합니다! 다음 주자는 OOOOO, 박OO, 소녀시대 OO입니다!” - 션 인터뷰 中
    2018년도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이어 갈 유명 연예인 세 명 공개! 슈 콜렉터로 20년 동안 모아온 300켤레 힙합퍼 신발과, 늦은 밤 홀로 식당에 들어가 고기 5인분을 뚝 딱 해치우는 일탈, 그를 기부천사로 만들었던 어려운 시절의 ‘따뜻한 손길’이 MBC <휴먼다큐 – 사림이 좋다>를 통해 소개된다. 근육질의 거친 힙합 가수, 기부 를 제일 행복하다는 착한 삼촌, 그리고 못 말리는 사랑꾼 남편까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션 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