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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40회 2017-09-17

    친절한 현우씨, 가수 이현우 ∎ 미국에서 한국으로, 디자인 회사에서 ‘꿈’꾸던 무대로! 가수 이현우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불확실한 ‘꿈’을 택한 남자, 90년대 대표 싱어송 라이터 가 수 이현우. 재미교포 출신인 이현우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한국행 비행 기에 올랐다. 그리고 우연히 음반 제작자를 만나 데뷔곡 <꿈>을 발표, 단숨에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노래 제목처럼 꿈같은 일이 벌어졌지만, 갑작스레 얻은 인 기엔 부작용도 따라왔다.
    예전에는 저만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나르시시즘에 좀 빠져서 모든 걸 제 위주로 생각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열심히 일하는 스태프들, 주변 연예인들을 아예 보지 못 했어요. - 이현우 인터뷰 中
    ∎ 이현우를 180° 변화시킨 아내와 아이들
    대마초 사건, 음주운전 등 좋지 않은 뉴스로 지면을 오르내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 던 이현우. 그런 그를 일으키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킨 건 가족이었다. 2009년 44살,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어느덧 9살, 7살의 아이를 둔 가장 이현우. 한때 자기중심 적이고, 비혼주의자였던 그에게 결혼이 가져다 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혼을 한 순간부터 저한테 찾아온 큰 변화는 주변사람들을 처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제가 총각 때 했던 행동들이 제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한테 굉장히 큰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9살 동하, 7살 주하의 아빠 이현우로 아이들과 함께 떠난 글램핑 여행. 아이들을 먼 저 챙기고 난 뒤 다 식은 밥을 먹는 그의 모습은 예전 같으면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 다고.
    아이들은 제 전부예요. 그냥 저의 스물 네 시간이죠. 늘 아이들 생각을 하고 밖에 나가서도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떤 발언을 할 때 누구와 뭐 술 한 잔을 마실 때도 항상 아이들의 아빠라는 걸 잊지 않고 행동하려고 노력해요. - 이현우 인터뷰 中
    ∎ 가수 이현우, ‘맛집 블로거’, ‘미식가 아저씨’ 이현우로!
    가수는 물론 연예계 다방면에 걸쳐 전천후로 활약 중인 이현우. 특히 그가 10년 넘 게 DJ로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꼭 섭취해야 하는 ‘공깃밥’처럼 생활의 일 부분이 되었다. 라디오 스튜디오 벽면에는 10년 넘게 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DJ 이현우에게 수여된 ‘골든 페이스’ 조형물이 걸려있는데, KBS 라디오 DJ를 통틀어 3명만이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성실함과 꾸준함의 산물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 음식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어린 학생들에게는 가수 이현우보다 ‘미식가 아저씨’ 이현우로 더 익숙하기도 하다. 미국생활 시절, 일 때문에 바쁜 부모 님을 대신해 요리를 배웠다는 이현우. 그 시기에 요리실력과 음식에 대한 관심을 키 웠다고 한다.
    어릴 때 이민을 가서 엄마랑 시장 골목이나 그 시절의 길거리 음식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요. 거기에 대한 추억 같은 것들이 항상 있었고 한국에 가게 되면 그런 데를 한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죠. 다른 문화권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다보니 그런 것에 대한 애정이 커요. - 이현우 인터뷰 中
    ∎ 이현우의 ‘꿈’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역시 노래다. 11월에 있을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밴드 멤버들과 연습중인 이현우를 만날 수 있었는데. 특 별히 이번 공연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소극장 무대를 계획하고 있단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감정 전달이에요. 가창력도 아니고, 무대매너도 아니고, 화려한 조명도 아니에요. 관객들하고 똑같은 걸 느낄 때 어마어마한 희열이 느껴져요. 그런 순간이 자주 찾아오지는 않는데 그런 순간에 어마어마한 행복감이 있죠. - 이현우 인터뷰 中
    90년대 톱스타에서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까칠한 고슴도치에서 아들바보로 변 신한 이현우. 결혼 이후 ‘내’가 아닌 ‘주변’을 바라보게 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 었다는 ‘친절한 현우 씨’, 이현우의 달라진 모습을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볼 수 있 다.
    그냥 아이들한테 친구 같은 아빠로 남고 싶고 아내한테는 늘 애인 같은 남편으로, 그리고 제 자신에 있어서는 계속해서 좋은 사람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 이현우 인터뷰 中

    239회 2017-09-10

    당돌한 엄마, 배우 오승은 ■ 젖은 날개로 두 딸을 품고 고향으로 간 여배우 오승은
    “가만 안두겠어~!” 털털한 여장부 스타일, 거침없고 화끈한 연기를 뽐내며 ‘오서방’ 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던 미녀 배우 오승은. 밀레니엄 시대가 열리던 2000년, 스 물두 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청춘 시트콤 《골뱅이》로 데뷔해 영화 《두사부일체》, MBC 시트콤 《논스톱4》, 드라마 《김약국의 딸들》에서 연이어 히트를 기록하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영화, 드라마, 예능을 섭렵하며 승승장구 하던 그녀는 방송생 활 8년 만에 돌연 결혼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는데...
    “저의 마음의 심지, 두터운 심지를 만들어 준게 제 고향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가줄 수 있게 해준 게 제 고향이기 때문에 ....이번에 그래, 어 조금 놔보자. ... 그렇게 조금 뭔가 빛을 쫓아가는 느낌?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고향에서 밝음을 찾고 싶었어요.“ - 오승은 인터뷰 中
    결혼 6년 만에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고 그녀가 두 딸(채은, 리나)과 함께 선택한 곳 은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경상북도 경산시였다. 보물이 된 두 딸과 자신에게 밝고 긍 정적인 빛이 되어 줄 것만 같았던 고향에서의 3년!
    ■ 온 몸의 엔진이 꺼졌던 식물인간 같았던 열흘, 그 후!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제 몸과 마음은 많이,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혹시 그 마음이 들킬까봐. 저 스스로한테 들킬까봐 정말 쉬지 않고 뭔가 계속 일하고, 움직였어요. ... 나중에는 끝까지 찼는지 몸이 그냥 엔진이 꺼져버리더라고요. 그래서 한 열흘 정도 누워만 있었어요“ - 오승은 인터뷰 中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지은 2층 집. 2층은 딸들과의 생활 공간이고 1층은 카페를 운 영 중이다. 승은씨가 쓸고 닦는 1층 카페는 쿠션부터 컵, 화장실 휴지걸이까지 승은 씨의 아이디어와 손떼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지역의 음악하는 지 인들과 함께 공연도 한다. 그 덕분에 불경기에도 손님은 끊이지 않고 있다는데... 그 뒤에는 승은씨가 3년 전 고 향에 오면서 마음이 아픈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자기 몸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24시 간을 쪼개가며 카페에 공을 들였던 시간들이 숨어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식 물인간처럼 열흘을 앓아 누웠던 그때, 처음으로 그녀는 쌓아두고 살지 말자 그때그 때 분출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가 찾은 방법은 바로 노래였다. 무작정 노래방에서 혼자 네 댓 시간씩 노 래부르기를 수 일.. 심지어는 노래방에서 만난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는가 하면 음 반에 뮤직비디오까지 냈을 정도. 카페 정기 공연 무대에서 그녀는 오늘도 “저 산이 나를 막겠어~!”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다시는 아프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사랑하는 가족 때문에라도 나의 천직은 배우!
    “(연극영화학과 입학이) 막상 덜컥 됐는데 서울에서 생활을 하자니 숙식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엄마가 주변에 막 돈을 빌리고 다니셨던 것 같아요. ... 결국에는 엄마가 사시던 집을 정리를 하시고 산 밑에 있는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하시고 그 이제 뺀 돈으로 서울에 집을 얻어 주셨었어요. ...엄마아빠는 저 때문에 정말 산 밑에 왜 추우면 파카입고 이불 덮어쓰고 자야 될 정도로 웃풍이 막 숭숭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를 하신 거예요.“ - 오승은 인터뷰 中
    평생 도배일로 마련한 아파트를 팔아 딸의 서울 생활을 지지해주었던 부모님. 19년 만에 엄마와 찾아간 산중턱의 옛집은 가족들의 희생과 사랑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여섯 살 어린 시절부터 맞벌이 부모님 대신 밥을 차려주고 화장실을 함께 가주던 하 나뿐인 오빠는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무뚝뚝함 속에서도 1호 팬임을 자처해 결국 촬 영 중 승은을 울컥 눈물 짓게 했는데...! 과연 승은을 울린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활동을 재개하면서 서울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딸들과 생 이별식을 치르는게 힘들지만 승은은 자신을 기억해주는 팬이 있는 곳이라면, 작은 기회가 있는 곳이라 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가장 바라는 것은 연기자로써 다시 서는 것! 자신 의 천직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흉터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는 것처럼, 두 딸과 가족을 위해 남들이 만들어 놓은 행 복이 아닌 자신만의 행복을 채워나가겠다는 배우 오승은! 그녀가 찾아낸 두 번째 행 복을 만나보자.

    238회 2017-09-03

    “내게 남은 8%” 개그맨 최홍림 ▶ 칠전팔기의 사나이, 개그맨 출신 프로골퍼 1호 최홍림!
    1987년 제 1회 대학 개그제에서 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개그맨 최홍림. <꼭 지와 깍지> <청춘교실>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그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쏟 아지는 개그맨들 사이에서 최홍림은 설 자리를 잃었고 더 이상 방송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브라운관이 아닌 바로 골프장이었다. TV 에 나오는 동료들을 보며 박탈감에 도무지 견디가 힘들었다는 최홍림. 우울증까지 앓던 그는 결국 가족들이 있는 미국행을 택했다. 우연히 미국에서 골프방송을 보게 된 최홍림은 그 순간 골프를 통해 방송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 게 됐다. 그날로 골프를 시작한 최홍림은 2002년 최초의 ‘개그맨 출신 프로골퍼’가 됐 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14년 만에 한 방송을 통해 복귀했다. 어떤 고비가 닥쳐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역경을 헤엄쳐 나오는 칠전팔기의 사나이, 개그맨 최홍림의 일상 을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방송은 너무 하고 싶은데 불러주는 데는 없고, TV 속에 나오는 동료들보면 속상하고 그래서 점점 안 보게 되고... 나중엔 우울증까지 오더라고요. 그래서 가족들이 있는 미국에 간 거죠. 하루는 미국에서 TV를 보다 골프 채널을 보게 됐어요. 그때 문득 내가 골프를 잘 치게 되면, 골프전문방송인 쪽으로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MC나 사회자나? 그래서 골프를 치기 시작 한 거예요 미국에서 혼자.” - 최홍림 int
    ▶ 기러기 아빠 최홍림의 마지막 남은 8%
    데뷔 33년 만에 처음 맞이한 전성기라고 할 정도로 인지도도 쌓이고 사업도 자리를 잡던 시기에 최홍림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는다. 바로 말기 신부전증이라는 진단 을 받게 된 것. 3년 전 처음 진단을 받을 땐 관리만 잘하면 10년도 쓸 수 있다던 신장 기능이 3년 만에 8%로 악화된 것이다. 어떤 질병보다 관리가 중요한 신부전증, 기러 기 아빠로 지난 3년간 고군분투하느라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한 것이다. 지 난 3년, 최홍림은 사람들이 찾아줄 때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방송국과 골프 장을 밤낮없이 뛰어 다녔다. 챙겨주는 가족이 없다보니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그 사이 신장은 손 쓸 새 없이 망가졌다. 당장 치료를 해야 하는 상태지만 치료를 받게 되면 지금처럼 경제활동을 할 수 없기에 최홍림은 자신이 아픈 것 보다 가족들에 대 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제가 만약에 수술을 하면 이제 방송은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수술이 먼저다, 건강이 먼저다 이야기하지만 저는 제 아내한테도 훌륭한 남편이 되고 싶고 딸한테도 열심히 방송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요. 주변에선 빨리 수술해야한다고 하는데 제 마음 같아선 일단 방송 녹화 하다가 쓰러지면 수술을 할까, 당분간은 수술을 안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 최홍림 int
    3년 전, 아내의 한식당 사업과 딸의 학업 때문에 모녀는 함께 중국으로 가게 됐다. 가족이 떨어져 있던 시기에 남편의 건강이 악화돼 아내 도경숙 씨는 모든 게 본인 탓 인 것만 같다. 마침 딸의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한 아내와 딸. 오랜만에 본 남편은 몸 무게가 무려 5kg나 빠져 있었다. 아픈 남편을 두고 곧 다시 중국으로 가야하는 아내 도경숙 씨는 줄곧 한국에 혼자 있을 남편의 끼니 걱정뿐이다. 방학 때만 잠깐 아빠 를 볼 수 있는 딸은 혼자 남을 아빠 걱정에 아빠 얼굴만 봐도 눈물이 흐른다.
    “저는 곧 다시 중국으로 가야하니까... 중국가서 우리가 걱정할까봐 본인 아픈 얘기를 잘 안해요. 우리말고 본인 몸 걱정만 했으면 좋겠고 아침은 꼭 챙겨 먹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신부전증은 음식 간을 조심해야 하는데 저 없다고 바깥 음식만 사먹을까봐 걱정이에요“ - 아내 도경숙 int
    ▶ ‘미워도 다시 한번’ 40년간 의절했던 형과의 조우는 가능할까?
    최근 진행된 검사에서 신장기능이 8% 남았다는 진단을 받은 최홍림. 지난 2월 14% 가 남았다던 검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6개월 만에 무려 6%나 떨어졌다. 투석이나 이 식수술로 신장기능을 대신해야할 상황이 온 것이다. 그런 최홍림에게 애타게 기다 렸던 소식이 전해졌다. 누군가 신장을 공여해주겠다는 것. 그러나 최홍림은 기뻐할 수가 없다. 신장을 공여해주겠다는 이가 40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지냈던 친형 최길 림 씨이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지독히도 가족들을 괴롭혔던 형이었다. 형은 어머 니가 돈을 주지 않으면 애꿎은 홍림과 누나들을 두들겨 패곤 했다. 심지어는 돈을 주 지 않는다고 집에 불을 지르고 집문서를 들고 도망가기도 했다. 형 때문에 집안은 조 용할 날이 없었다. 이 모든 걸 보고 자란 최홍림에게 형은 ‘공포’ 그 자체였다.
    “형이라는 존재는 나한테는 원수였죠. 형이 죽어야 내 상처가 씻어질 거라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긴 시간 안 보다가 신장 준다고 하니까 연락 하는 것도 우습고... 형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덥석 신장을 준다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 아직 용서가 힘들기도 해요 상처가 너무 커서. 형은 손을 내민 것 같은데 제가 내민 손을 잡기가 힘드네요. 그 손을 어떻게 잡아야 되는 건지 꽉 잡아야 되는 건지 악수 하듯이 잡아야 되는지... 용기가 잘 안 나요” - 최홍림 int
    그런 형이 ‘홍림이에게 그동안 해준 게 없으니 신장이라도 주고 싶다’며 동생에게 먼 저 손을 내민 것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이식 소식이건만 최홍림의 마음은 무겁기 만 하다. 덥석 신장을 주겠다고 한 형이 고마우면서도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울 컥 울컥 분노가 치솟는다. 맞았던 몸의 상처는 모두 아물었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가 너무도 커 용서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애꿎은 형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만 폈다 접었다 하는 그다. 과연 최홍림은 어릴 시절의 상처를 딛고 형에게 연락할 수 있을까? 죽이 고 싶을 만큼 미웠던 형이 내민 손을 이제는 잡을 수 있을까? 40년의 미움을 뛰어 넘 는 형제의 뜨거운 화해와 용서의 여정이 <사람이 좋다>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신장이 나빠진 게 돌아가신 부모님의 뜻인가? 형하고의 관계가 안 좋으니까 이렇게라도 화해하라고 부모님이 신장을 나쁘게 한 건가? 이런 생각도 가끔씩 들어요.” - 최홍림 int

    237회 2017-08-27

    돌아왔다, 역전의 정수! - 윤정수 편 █ 모진 비바람을 이겨낸 잡초 같은 생명력, 윤정수의 제 2의 도약!
    작은 키 다부진 체격, 튼실한 장딴지의 주인공, 개그맨 윤정수! 1992년 SBS 공채 개 그맨 1기로 데뷔한 그는 <느낌표>, <일요일 일요일 밤에>, <기쁜 우리 토요일>, < 좋은 친구들>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을 휩쓸고 2003년에는 MBC 방송연예대상 쇼 버라이어티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인기를 누렸다. 공백기 없이 각종 예 능에서 종횡 무진하던 그는 일과 사업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만큼 승승장구했다. 그러 나 시련은 소리 없이 찾아왔는데... 브라운관을 종횡 무진하던 그가 갑자기 방송에 서 자취를 감췄다. 이유인즉, 보증을 서는 바람에 20억 상당의 집을 헐값에 경매 당 했고 채무도 10억 가까이 생겼던 것. 갚다 갚다 사회생활에 압박을 받은 그는 어쩔 수 없이 파산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고.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는 정수. 그는 당시만 해도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관리비를 못 낼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는 바람에 물과 전기까지 끊겼다는데... 어려움에 굴복하고 싶 지 않았던 그는 밤새 음용수를 통에 받아 그 물로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했다고. 그 뒤 전기까지 끊겨 더운 한낮이면 집 근처 은행으로 직행하고 초를 사용해서 저녁 8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열흘가량 지속해야 했다.
    “ 정수는 어머니도 오랫동안 편찮으셨었고 돌봐야하고 또 서울 처음에 올라와서 고시원에서 정말 오랫동안 살면서 고생 많이 한 친구예요. 그런데 정수 어릴 때 별명이 인동초예요, 잡초. 밟아도, 밟아도 다시 싹을 피우는 힘을 가진 친구예요 “ - 박수홍 int
    모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낸 그를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잡초’같은 남자라 고 말한다. 2013년 파산 선고를 받은 후 최근에 주변에 가져다 쓴 돈을 모두 갚았다 고. 그런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김숙과 가상 결혼 생활을 컨셉으로 진행하 고 있는 <님과 함께>가 대박이 나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 그는 최근 <오지 의 마법사>, <홈쇼핑>까지 출연하는 등 잠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그의 유일한 가족, 어머니
    윤정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청각 장애를 가지고 계셨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후, 그는 외할머니 댁 삼촌 손에서 자라게 된다. 외할머니와 외삼촌 네 부부는 그때 나 지금이나 그에게 부모님 같은 존재다. 무작정 괴나리봇짐을 싸매고 서울로 상경 했던 20대 초반의 정수,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올라온 그는 반 지하 방에 살면서 도 외삼촌에게 손 한 번 벌리지 않고 어려운 가정환경을 이겨내고 개그맨으로서 성 공한다. 20대 후반 그를 성공하게 한 힘, 어머니... 보증으로 빚을 지고 좌절했을 때 그를 일으킨 힘 역시 어머니였다. 그래서일까 늘어만 가는 채무 빚에 허덕이고 방송 일마저 끊기는 어려움 속에서도 치매로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는 일을 결 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토록 소중한 어머니가 2016년 11월 생을 마감하고 만다. 기 저귀가 짓무를 까봐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외박 한 번 하지 않고 살뜰히 어머니를 챙 겨왔던 정수. 그런 그가 어머니에게 불효를 저지른 것 같다고 눈물을 흘렸는데... 과 연 그 사연은 무엇일까. 정수를 울린 가슴 찡한 사연이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 다.
    “ 엄마 돌아가실 땐 사죄도 하고 그냥 둘이 있었던 그 생각들 하고 너무 둘만의 시간을 되게 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젠 산소에 계시니까 그게 안 되니까 오죽하면 정말 꺼내고 싶을 정도더라고... 지금도 엄마가 쓰던 방에 가면 너무 슬퍼지고 너무 미안해요 “ - 윤정수 int
    █ 또 하나의 가족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며...
    어머니는 정수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무치는 그리움 으로 아파하는 정수. 그러나 항상 곁을 변함없이 지켜주는 사람들 덕분에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윤정수에겐 또 하나의 가족이 있다. 자신 을 친아들처럼 키워주신 강릉댁 외삼촌 부부, 그리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조현민, 강 두한 두 후배까지... 외삼촌은 정수의 어린 시절부터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형처 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힘든 시기 자신의 곁을 지켜준 두 후배 역시 더 없 이 소중하다는데...
    “ 초등학교 때 부모가 보살피지 못하니까 입학 할 때도 손 붙잡고 초등학교 보냈고 봄 소풍에 도시락 싸서 따라 가고 그랬어요 태어날 때 우리 집에서 내가 보는 데서 태어났으니까 내 아들하고 똑같아요. “ - 외삼촌 int
    “ (외삼촌이 저를) 누나의 애틋한 아들이 아니라 (자기) 자식 같이 생각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자식이라고 생각하기엔 어릴 때부터 많이 뒹굴었어요 그래서 형제, 늦둥이 막둥이 동생.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 - 윤정수 int
    두 달에 한 번씩은 꼭 자신의 고향 강릉을 찾아간다는 정수, 모처럼의 휴일 강릉 외 삼촌댁을 방문했다. 그동안 쉴 틈 없이 일만 하고 살아오신 외삼촌 가족을 위해 그 가 선물을 준비했다는데... 과연 정수가 준비한 선물은 무엇일까? 한편 여름 휴가철 을 맞아 후배네 펜션 일을 돕기 위해 바쁜 일정 가운데 짬을 낸 정수! 그곳에서 벌어 지는 세 남자의 유쾌한 웃음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의리 있는 대화까지... 밟아 도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잡초 같은 윤정수의 이야기를 휴먼 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함께 만나보자.

    236회 2017-08-20

    내 인생, 미워도 다시 한 번, 이상아 ■ 꿈꾸는 아줌마! 아직 끝나지 않은 이상아의 인생후반전
    책받침 여신, 원조 국민 첫사랑 이상아! 서구적인 이목구비와 깜찍한 매력으로 드라 마, 영화. 500여 편의 CF에 출연했던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다. 영원할 것만 같았 던 이상아의 전성기는 26살 어린 나이에 선택한 결혼으로 멈춰버리고 말았는데... 사 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세 번 이혼한 여자라는 수식어까지 붙으며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던 그녀. 숱한 방황과 아픔 끝에 길었던 공백을 깨고 원조 하이틴 스타에서 아줌 마 연기자로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배우 이상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벽 홈쇼핑 생 방송 현장으로 출근하는가 하면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빈 다. 그녀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더욱 굳세게, 때로는 억척스러울 정도로 달리는 이유 는 바로 가족 때문이라는데... 40대 싱글맘인 그녀는 딸과 노모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아간다. 숱한 부침 속에서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이상아. 소문과 편견, 좌절을 딛고 씩씩하게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이상아의 오늘을 <사람 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 내가 실패를 했잖아요,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실패를 거듭해도 나는 아직 성공을 못했으니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모습으로 나도 한 번 살고싶다는 욕심은 아직 있죠. 앞으로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게 인생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하는거죠. 이제는 내가 만들어 나가야하는 미래가 있으니까... ” - 이상아 int -
    ■ 홀로서기 이상아, 이제는 가족으로 선다! 모녀 삼대의 독특한 동거
    연이은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마지막이길 바라며 버틴 세 번째 결혼마저 끝난 후 좋 지 않은 시선들과 소문에 견딜 수 없어 마음을 닫고 혼자가 됐던 시기, 그녀 곁에는 친정엄마와 어린 딸이 남았다. 이상아를 곁에서 지켜봐온 친정엄마와 딸 또한 그녀 와 마찬가지로 힘든 시간들을 함께 보내야 했는데...
    “ 가족이 있다 보니까 주변 사람이 상처 받는 게 의식되더라고요. 나 때문에, 나 하나 아팠으면 되는데 우리 식구들이 너무 많이 다쳤으니까 모든 일에 있어서 나 혼자 생각할게 아니라 우리 가족 생각해서 행동을 해야 되겠다 싶은 거죠. (딸이) 이제는 커서 다 아니까 엄마 때문에 안고가야 할 한이 있을 거고 나도 분명 한이 생겼고 맨날 울어도 그건 안 풀릴 것 같아요. “ - 이상아 int -
    거듭된 이혼 후 딸 서진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인 엄마 이상아.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딸 서진은 사춘기까지 겪고 있어 이미 벌어진 사이를 좁히기가 쉽지 않은데... 같 은 듯 다른 모녀 삼대의 동거는 매일 티격태격, 늘 일촉즉발의 연속이다. 어린 시절 아역배우 이상아의 매니저 역할을 했던 억척 엄마 박명숙씨(71)와, 엄마의 끼를 닮 아 예고에 진학했지만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 윤서진(18), 그리고 쉰을 바라보는 나 이에도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사춘기 딸과 매일 전쟁을 치르는 철없는 엄마 이상 아(46)까지. 하루에도 여러 번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는 세 모녀의 동거! 때로는 서로 에게 친구이자 남편, 아버지로 의지하며 지내는 모녀 삼대의 바람 잘날 없는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가족이라는 마음 하나는 똑같은 그들. 아직은 서툴지만 천천히 다가가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세 모녀의 진짜 이야기를 만나 본다.
    “ 초인종만 없을 뿐이에요. 한 공간에 각자의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도) 저는 그런 의리는 있어요. ‘우리 가족이 최고다’, 가족끼리 따뜻하고 정감 있게 알콩달콩, 여자들끼리의 어떤 애틋함 이런 건 없는데 저는 우리 식구들이 다치는 건 못봐요. (가족이) 어디서 상처 받고 오면 제가 가만 못 있어요. 제가 우리 가족에 대한 그 끈끈함이 있는 거 같아요. ” - 이상아 int -
    ■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 내 인생, 미워도 다시 한 번
    눈물로 얼룩졌던 과거만큼 여전히 힘든 날들의 연속이지만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게 이상아의 방식. 이제부터 인생은 하고 싶은 도전도 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살고 싶 다는 그녀다. 최근 새로운 드라마의 캐스팅 물망에 오른 이상아. 주연이 아닌 조연으 로, 예전 화려했던 이상아와는 정반대의 역할이지만 지금은 주어지는 역할 하나하나 가 다 소중하다. 새로운 캐릭터에 맞춰 헤어스타일도 바꿔보고 밤낮으로 대본연습에 도 몰두한다. 드라마에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인연으로 선배 이정길과 배우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연기 못하는 배우라는 편견을 깰 수 있을까? 드 라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그녀. 최근 새롭게 배우기 시작 한 수상스키와 패들보드. 보통 여자가 하기 어려운 운동까지 섭렵했다. 여자라서, 아 줌마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여자니까, 아줌마니까 해내고 싶다는 씩씩한 아줌마 이 상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멋지게 살아가는 이상아의 진짜 모습을 <사람 이 좋다>가 공개한다.
    “ 자의든 타의든 너무 쉬었어요. 사실 그냥 34년이 흘렀어요, 대표작도 없고. 그래서 쉰 시간이 억울해서라도 (앞으로는) 쉬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어요. 사는 동안 이제는 안 쉬려고요. 남은 시간은 진짜 쉬지 않고 일하는 게 제 소원이에요. 그래서 우리 서진이가 엄마인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 - 이상아 i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