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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48회 2017-11-12

    고생 끝 행복 시작, 김학래 임미숙 부부 ▶ 원조 개그맨 부부 김학래 임미숙, ‘각서’의 아이콘이 되다
    개그 프로그램이 시청률 40~50%를 장악하던 80년대,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 니다. 딸랑딸랑딸랑~', '괜찮아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등 구수한 입담으로 숱 한 유행어를 제조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감초 개그맨 김학래! 당대 최고의 개그 프로 그램인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뿐만 아니라 수많은 CF에도 출연하며 미 녀 개그우먼으로 유명했던 임미숙! 특히 임미숙은 동료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인기 가 많았는데, 김학래의 열렬한 구애 끝에 이들은 10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결혼에 골 인했다.
    “저는 교회를 안 나가면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개그맨실에서 엄청 큰 검정 책을 옆에 딱 끼고 와서는 제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빠 이거 뭐예요? 했더니 영어로 ‘바이블’, ‘나를 베드로라 불러다오’ 그러면서 매일 저한테 와서 오늘의 설교 말씀은 이거야, 나는 이제 예수님을 영접 했어 계속 그러는 거예요.” ― 임미숙 인터뷰 中
    “퇴짜 맞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 온갖 유행가 가사가 다 나를 위해 만든 것 같고. 그래서 몇 개월 만에 연애편지도 쓰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귀찮게 했죠. 최양락한테도 얘기하고, 이경애한테도 도와 달라 얘기하고, 그 결정체가 오늘의 우리 부부예요.” ― 김학래 인터뷰 中
    하지만 신혼 초부터 이들 부부의 결혼 생활은 생각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결혼 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부터 김학래는 아내의 속을 썩일 때마다 잘못을 반성 하고 용서를 구하는 각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 둔 각서가 100여 장을 헤아린다. 과거에는 아픈 기억이었지만 이제는 이것도 연애편지와 함께 추억처 럼 말할 수 있게 됐다는 부부. 여전히 아옹다옹 하며 삶의 재미와 행복을 함께 찾아 가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의 인생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본다.
    ▶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 연이은 사업 실패에 잇따른 아픔
    거리의 낙엽 한 장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세상만사에 호기심이 가득한 임미숙과 성 실하고 우직하게 ‘마이 웨이’를 걸어 온 김학래. 나이 차이만큼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들 부부는, 각자 바라는 가족의 모습도 많이 달랐다. 6남매 중 막내로 사랑을 듬뿍 받 고 자란 임미숙은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을 기대했지만, 장남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와 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한 남편 김학래는 그녀의 기대를 번번이 좌절시켰다. 아내는 남편과 더 많은 것을 함께하기를 바랐지만, 무엇보다 가장으로서 경제 활동 에 충실하고자 했던 남편은 그런 아내의 요구가 때로는 버거웠다. 한편 결혼 초기 부부의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순탄하지 않았다. 피자집, 고깃집, 라이 브 카페 등 도전했던 사업마다 번번이 실패했고, 김학래가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까 지 연이어 당하면서 부부는 수십억의 빚을 안고 파산 위기에 몰려 힘든 시기를 보내 야 했다. 결국 거듭된 위기로 인해 임미숙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앓게 됐고 방송 활동마저 접었다. 공황장애가 병이라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절, 곁에 있 는 남편조차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고, 가족들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 한다는 사실은 임미숙을 더욱 슬프고 힘들게 했다.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8년 만에 함께 방송에 출연한 김학래 임미숙 부부의 진솔한 이야기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 개된다.
    “비행기 타는 거는 생각도 못 하고, 어디 갇혀 있는 거는 더욱더 무서워서 엘리베이터를 못 타겠는 거예요. 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혹시 너 어디 아파? 그 말을 10년 만에 했어요. 혹시 너 어디 아파? 그때 눈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 가게 된 거예요. 사람이 어디가 아프면 나 아파 하고 치료를 받으면 되는데, 이거는 마음에서 오는 병이니까 보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숨기다 보니까 본인은 죽겠어도 남들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 임미숙 인터뷰 中
    “나는 공황장애가 뭔지도 모르고,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 방법을 잘 몰랐죠. 그렇게 세월이 많이 지나갔어요. 그걸 이해하고 지금은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제가 카운슬링해 줄 수 있을 정도가 됐는데도, 인간이기 때문에 또 잘 안 되더라고요. 아 내가 또 잊어버렸네, 아내가 아픈데 갑자기 또 소리를 질렀네 하면서 바로 또 후회하고.” ― 김학래 인터뷰 中
    ▶ 연매출 100억대 사업가로 변신한 부부의 인생 제2막,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
    김학래 임미숙 부부가 28년차 부부로 여전히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믿 음을 지켜 냈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맞춰 가려 노력하면서 마 음에 안정과 평화가 찾아왔고, 임미숙의 공황장애도 서서히 치료됐다. 경제적으로 재기하기 위해서도 부부는 쉬지 않고 함께 노력했다. 김학래는 30여 년 간 꾸준히 해온 방송 활동 및 각종 행사 진행, 강연에 부지런히 다녔고, 임미숙은 부 부가 새로 창업한 중식당 운영에 전념했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밑거름 삼아 부부의 삶을 일으키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창업한 중식당은, 좋은 음식 재료와 맛, 손님 한 명 한 명의 취향과 특징,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직접 챙기는 임미숙의 살뜰한 노력 덕분에 꾸준히 성장했다. 또한 자체 개발한 메뉴를 홈쇼핑에 런칭하면 서 부부는 연매출 100억 원까지 달성했고, 마침내 10여 년 만에 남은 빚도 다 갚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지금 현재 제가 하는 사업을 보고 성공한 사람, 성공한 CEO라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참 많은 대가를 치렀어요. 결국 지금에 와서 성공한 건 아내가 옆에서 힘을 북돋아 주고, 서둘러서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들과 얘기 나누고, 음식을 개발하고 이러면서부터예요.” ― 김학래 인터뷰 中
    성공한 사업가로서 인생 제2막을 꽃피우고 있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 아픔을 이겨 낸 부부는 자기를 고집하기보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며 나누고 함께할수록 삶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여전히 남편이 아내보다 드라마에 더 집중해서 아내의 마음을 서운하게 할 때도 있지만, 시련을 딛고 지켜 낸 가족이기에 부부에게 지금의 행복은 더욱 값지다. 옥신각신하면서도 서로의 곁을 든든하게 지 켜 주고 있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의 인생 스토리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본다.
    “사실 옛날에는 무조건 엄마 편이었는데, 지금 보면 엄마는 따뜻하고 아빠는 이성적이고 서로의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두 분이서 시간을 조금 더 알차고 즐겁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고, 엄마가 공황장애를 다 치유하시면 제가 서른 되기 전에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입니다.” ― 아들 김동영 인터뷰 中

    247회 2017-11-05

    여배우로 산다는 건 - 김보연 편 █ 또 한 번의 이혼 다시 돌아온 싱글라이프
    지난 2004년, 9살 연하의 배우 전노민과의 재혼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김보연. 연 예계의 소문난 잉꼬부부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전노민의 사업실패 로 8년 만에 다시 한 번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두 번째 이혼을 둘러싼 많은 억 측과 루머들로 한동안 마음고생에 시달려야 했지만 김보연은 한동안 공식석상 앞에 서 최대한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방송에서 최초로 이혼 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전노민을 만나게 된 이야기와 이혼 후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돌아서서 지나가는데 느낌이 이상한 거에요 누군가가 나를 보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보니까 전노민 씨가 보고 있더라고요 느낌으로 두 발짝 지나갔는데 후배들하고 전부 보고 있는데 그냥 가면 이상할 거 같고 반가웠어요 그냥 그래서 잘 지내시냐고 웃으면서 악수하고 보기 좋다고 했어요 ” - 김보연 int
    배우 이외에 김보연이 맡고 있는 또 다른 직함이 있다. 바로 ‘장애인문화예술원’의 홍 보이사직이다. 장애우 아이들, 장문원의 선생님들과 연을 맺은 지도 어언 10여 년. 화려하고 도도하게만 보이는 그녀에게 이곳에서의 봉사활동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 다. 배우로서의 삶에 감사하며 자신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김보연의 인 간적인 모습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본다.
    █ 할머니가 되었어요, 그녀를 지탱하는 힘 가족 그리고 사랑
    다시 돌아온 싱글이 된 김보연의 곁을 지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가족. 딸 부 잣집의 넷째 김보연과 돈독한 우애를 자랑하는 그녀의 자매들. 그 자매들을 키워온 어머니 역시 9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하게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다. 김보연의 두 딸 또한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훌륭히 자라 어느덧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다. 자신이 할머니로 불리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그녀. 그 런 가족이 있기에 힘든 세월을 버틸 수 있었고 혼자인 삶이 더 이상 외롭게 느껴지 지 않는다.
    “나는 우리 애들보다 엄마 생각이 먼저 나요 내가 이혼했을 때 80 넘으신 엄마가 관절 때문에 그래도 딸이 혼자인 게 걱정 돼서... 미안해요 미안해서 엄마 안 와도 되는데 나 엄마 씩씩해 괜찮아 우셨더라니까 나 그 때처럼 죄송한 일이 없었어 진짜 지금은 씩씩하게 잘 지내니까 우리 엄마도 좋아하세요 “ - 김보연 int
    누군가는 말한다. 나이 든 여배우는 더 이상 설 자리가 많지 않다고. 해야 할 역할 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배우 김보연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다. 중견여배우 라는 한계를 넘어 다시금 도약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 그 꿈을 향한 김보연의 연기 열정은 10대 소녀의 마음처럼 늘 한결같다.
    █ 40년 베테랑 김보연의 이 배우가 사는 법
    화려한 외모와 똑 부러지는 연기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 치고 있는 배우 김보연.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강남길과 의 코믹 중견 로맨스로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으며 다시 한 번 배우 김보연의 존 재감을 각인시켰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지도 어언 40년. 남부럽지 않은 삶 을 사는 화려한 싱글이지만 여전히 연기가 고픈 천상여배우이다. 화려한 싱글, 그리 고 계속 되는 그녀의 연기 인생과 열정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본 다.
    “연기자가 이제 나이 먹어서는 이 역할 저 역할 가릴 거 없다고 봐요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거는 어떤 역할이든지 그냥 이제는 해야지 초이스가 없어요 우리들한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역할 주면 잘 할 수 있을 거 같애 왜냐 많이 겪었잖아 뭔가 알잖아 그런 역할하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애“ - 김보연 int

    246회 2017-10-29

    더원, 최고의 사랑 ■ 아시아의 보이스, ‘더 원(THE ONE)’이 전하는 8년 만의 진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소리, 가수들이 꼽은 진정한 가왕 ‘더 원(THE ONE)’! MBC <나는 가수다>를 역대 초고속으로 졸업하고 최근 중국판 <나는 가수다3>에서 활약 하며 한류스타로 등극, 동방신기, 태연, 환희 등 SM사단의 역대급 아이돌 300여명 을 가르쳐 온 보컬트레이너이자 드라마 OST 20여곡을 히트시킨 음원 강자다.
    하지만 올해로 데뷔 19년차를 맞은 그는, 가수로선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를 표 현하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나쁜 남자’라는 오명도 존재한다. 오래전 사귀었던 여 성과의 양육비 관련 분쟁으로 시작된 ‘딸에 얽힌 구설수’가 원인이다. 하지만 그는 사 건 이후 지금껏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그가, MBC <사람이 좋다>에서 처 음으로 그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해명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 사람인가? 하고 오해가 더 커지는 게 있더라고요. 누구나 살면서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많은데 내가 뭐라고 말을 하나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설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더원 인터뷰 中
    지금껏 가수 ‘더 원’을 둘러쌌던 각종 오해와 구설수에 대한 진심어린 이야기, 그리 고 방송 최초로 공개하는 8살 딸아이와의 일상 그리고, 그가 지키고 싶은 가족에 대 한 이야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남자 ‘더 원의 진심’이 <사람 이 좋다>에서 최초 공개된다.
    ■ 삶의 바닥을 딛고 일어선 시간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전성기는 2012년 MBC<나는 가수다>에서 가왕 자리를 거머쥐었던 그때다. 하지만 그때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인 동시에, 가 장 큰 아픔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사업에 실패하면서 140억 원의 채 무를 안고 있던 상황! 당시 집과 통장을 압류 당하고 건물과 차까지 전 재산을 처분 해야 했다. 만 원 짜리 한 장 없어 8개월을 걸어 다녔고 잘 곳이 없어 전기 끊긴 건물 에서 무작정 자기도 했다. 딸아이와 관련한 구설수가 불거지면서 오명에 둘러싸였 던 시절도 바로 그때다.
    “진짜 바닥을 경험했어요. 어떤 느낌이냐면, 올라갈 수 없겠구나, 탈출할 수 없겠구나 라는 본능적인 무서움이 되는 바닥?” - 더원 인터뷰 中
    하지만 그는 가수로서의 삶도, 아빠로서의 삶도, 모두 포기하지 않았고 더 열심히 뛰 었다.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예전엔 하지 않던 지방 행사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현재는 많은 빚을 갚았고, 중국에까지 진출하면서 해외 활 동도 다니고 있다. 아직 9억 남짓한 채무가 남아있지만 그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생각하면, 그래도 스스로 가족과 회사를 지킬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날 이라고 이야기한다.
    ■ 나쁜 남자 꼬리표, 그리고 ‘아빠 더 원이 꿈꾸는 최고의 사랑’ - 더원, 과거 양육비 관련 분쟁으로 시작된 ‘딸에 얽힌 구설수’, 진실을 말하다
    세간에 딸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오해는 그에게 ‘나쁜 남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양 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외면했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그 구설수에 대해 ‘사 람이 좋다’가 만난 진실은 알려진 것과 달랐다. 누구보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고 군분투하는 아빠 더 원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스케줄 중에도 시간을 쪼개 딸아이를 만난다. 이제 8살이 된 딸은 아빠를 무척 따른 다. 하지만 정작 더원은 딸아이에게 아직 미안한 것이 많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 까. 그리고 구설수의 진짜 진실은 무엇일까. 초보아빠 더원과 여덟 살배기 딸아이가 함께한 즐거운 하루,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세간의 오해에 대해 침묵했던 진짜 이유 가 <사람이 좋다>에서 최초 공개된다.

    245회 2017-10-22

    서른아홉 댄스가수, 길건 ∎ 이효리의 춤선생님! 자타공인 댄싱퀸 길건
    이효리, 백지영, 왁스 등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탑 여가수들의 무대 뒤에는 댄서 길건이 있었다. 2004년 가수로 데뷔, 올해로 14년 차를 맞은 가수이지만 대중들에게 는 여전히 ‘이효리의 춤 선생’으로 더 익숙한 그녀. 이처럼 그녀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이효리와의 인연은 17년 전 시작되었다.
    “제가 댄서 생활을 2년 반 정도 했을 때, 이수영 씨 콘서트에 선 적이 있었어요. 그때 연습실에서 같이 연습을 하는데 이수영 씨 이효리 씨 제가 같은 나이였던 거예요. 직업이 달라서 저한테 좀 다르게 대할 줄 알았는데 가수 친구들한테 대하는 것처럼 똑같이 대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좀 친하게 많이 지냈죠” - 길건 인터뷰 中
    춤실력으로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댄서였지만 그 이면에는 늘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고, 댄서라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힘든 시간 을 보내야 했다는데
    “아무래도 수입이 없다 보니까 많이 처음에 시작할 때는 분명히 한 달 열심히 일했는데도 지하철 패스 1장 받았었어요.”
    “백업 댄서는 좋은 말이에요 오히려 빼까리? 이렇게 너무 딱 비하하듯이 말이 나오는 단어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좀 싫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 안무팀한테는 댄서라는 말도 잘 안써요. 댄스팀이라고 해요” - 길건 인터뷰 中

    댄서 시절을 함께한 친구를 통해 듣는 춤꾼 길건부터 춤 때문에 생긴 영광의 상처까 지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 ‘한국의 비욘세’를 꿈꾸며 데뷔...그러나 암흑같았던 8년의 공백기
    댄서로 먼저 이름을 알린 길건이지만 어릴 적부터 한순간도 ‘가수’라는 꿈을 잊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심한 반대에 꿈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부모님들이 너무 반대하셔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의 비욘세를 만들어준다는 말에 너무 순수하게 ‘비욘세? 유학 가기 전에 비욘세 한 번 해볼까?’ 그 생각에 덜컥하겠다고 했어요.” - 길건 인터뷰 中
    ‘한국의 비욘세’를 꿈꾸며 2004년 화제 속에 데뷔한 길건. <흔들어봐> <여왕개미> 를 발표하며 무대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도 출연하며 이슈가 됐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중들의 반응은 점점 식어갔고, 설 상가상 10년 지기 친구였던 김태우의 소속사에 들어갔지만 소송 직전까지 가는 갈등 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아무도 길건을 찾지 않았던 8년의 공백기가 이어졌다. 생계 를 위해 분식집에서 서빙을 하고, 에어컨 필터 청소를 하는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 활비를 벌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는데...딸의 힘든 사정을 아는 부모님이 매달 생활비 를 보내 주셨다고.
    “제가 쉬는 기간 동안 그 8년 동안 아빠가 암 선고를 받으신 거예요. 너무 놀랐는데 아빠가 웃으시는 거예요. ‘나 너한테 돈 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보험금 타면 너 줄게’” - 길건 인터뷰 中
    추석명절을 맞아 부모님을 뵙기 위해 포항을 찾은 길건. 그녀의 부모님은 포항에서 돌곱창 집을 운영하고 계신다. 가게 한편에 놓여있는 약가방. 현재 그녀의 어머니는 20년째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는 중이지만 딸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 하루도 가게를 쉬지 않으신다.
    “제발 엄마가 제가 잘 돼서 효도할 때까지 안 아팠으면, 버텨주셨으면... 부모님한테 용돈 드릴 수 있는 딸이 됐으면 좋겠어요” - 길건 인터뷰 中
    ∎ 8년 만에 댄스가수로 컴백! 멋진 가수로 기억되고 싶은 길건!
    힘든 시간을 지나 다시 무대로 돌아온 길건. 그동안 보여주지 못 했던 다양한 모습 의 길건을 보여주기 위해 스케줄이 없는 날에도 춤연습, 보컬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드라마 <완벽한 아내> OST를 부르며 발라드에도 도전한 한 그녀. 앞으로 는 감성적인 노래, 락발라드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말 사람들에게 어딜가도 ‘길건’ 하면 노래 잘하는 가수. 춤 잘 추는 가수. 이렇게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평생 음악을 했는데 아무도 안 알아주면 집에서 혼자 하는 거나 다름이 없잖아요. ‘멋진 가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 길건 인터뷰 中
    무대 위에서 ‘멋진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가수’ 길건. 보여줄 것도 많고, 보여주 고 싶은 것도 많은 다재다능한 그녀. 서른 아홉살 댄스가수 길건의 스토리를 <사람 이 좋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244회 2017-10-15

    모두잠든후에 지금은 육아중 가수 김원준 ∎ 데뷔 25년, X세대 대표주자에서 늦깍이 아빠로! 가수 김원준
    올해 10월18일은 정확하게 데뷔 25년이 되는 날이다. 1992년 스무살 나이에 자작곡 <모두 잠든 후에>로 등장해 가요 순위 프로그램 연속 7주, 3개 방송사를 모두 석권 했던 원조 꽃미남 하이틴 스타. 지난해 14세 연하 검사와 결혼을 발표하며 화제를 불 러일으켰던 그에게 딸이 생겼다. 허니문 베이비로 이제 8개월된 예은이. 딸은 그의 일상 전부를 뒤흔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딸바보’란 말을 하게 만든다. 앉으나 서나, 동료가수를 만나던 팬을 만나던 오로지 딸 애기 뿐이다. 말투도 달라졌 다. 표정도 달라졌다. 화려한 솔로 생활은 간데없고, 모든 소비의 중심도 오로지 딸 이다.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10가지중에 9가지가 힘들다 해도 그 단 한가지. 예은이가 절 보고 웃어주면 그 순간 모든 힘들었던 게 와르르 무너져요. 제가 원래 허스키 보이스인데, 요즘은 톤이 두 단계쯤 올라가 있어요. 까꿍! 맘마! 이런 말을 달고 살아요 - 김원준 인터뷰 中
    ∎ 딸을 얻고 더 절실하게 그리운 아버지, 가수를 반대했던 돌아가신 아버 지와 화해하다
    대대로 의사가 가업인 집에 3남매중 막내 아들로 태어난 김원준은 한마디로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아버지는 의사이기도 했지만 음악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 어릴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는 물론 음반과 전축, 헤드폰 등을 선물로 주곤 하셨다. 그러 나 그건 어디까지나 취미생활. 의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김원준 은 서울예대 진학도 숨겨야했는데...<모두 잠든 후에>로 1위를 한 뒤 들고 간 트로피 도 외면하셨던 아버지. 2013년 막내아들의 결혼도, 손녀딸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마음을 진정 이해하게 된 것은 딸 예은이를 얻고 난 뒤라는데....
    왜 살아 계실 때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나 그런 후회가 많이 들어요. 정말 부모가 돼봐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병원 대기실에 제 사진과 앨범 자켓을 걸어놓고, 제 음반대상 트로피를 진료실에 갖다놓을 정도로 저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걸 한참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죠. - 김원준 인터뷰중
    요즘 원준이는 정말 처음 보는 모습이에요. 근데 딸에게 하는 걸 보면 저게 집안 내력이구나 싶어요. 애들 아버지가 젊었을 때 일하다 들어오면 원준이를 업어주고, 재워주고 다 그랬거든요. 그걸 지금 가르쳐주지 않아도 똑같이 하는 거에요. - 김원준 어머니 인터뷰 중
    ∎ 처음 맛 본 인생의 쓴 맛, 2005년 무렵의 파산위기...가수 김원준을 교 수 김원 준으로!
    톱스타 김원준이 방송에서 사라진 것은 2002년 무렵. 싱어송라이터로 대부분의 노 래를 스스로 만들던 그는 자기만의 음악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모아놓은 돈을 모두 투자해 녹음실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사장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는 영리하고 똑똑한 사장이 아니었다.
    아는 형이 와서 원준아 녹음실 한번 쓸께 하면 응 써, 계산은 나중에 할게 그래그래.... 영화음악하는 선배도 와서 너네 시설 좋더라 한번만 쓰자 하면 그래 형, 근데 꼭 결제해줘 하면 그때는 그럼 그럼 하지만 또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그러다 어느날 보니까 빚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던 거죠. 은행에 갔더니 이대로 놔두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거에요. 숨이 턱 막혔죠. - 김원준 인터뷰 중
    하지만 절대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을 막음해주실 분도 아니었 다. 녹음실은 부도 처리됐고 당시 그가 해결해야 할 빚은 6억원이 넘었다.살면서 단 한번도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던 그는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들어오 는 행사란 행사는 모두 뛰었다. 지방의 작은 축제도 가고, 대형수퍼 사은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그런데 그 때의 실패가 김원준을 지금 교수(강동대 실용음악 과 학과장)로 만들었다는데,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무렵에 여러 대학에서 시간 강사일을 하게 됐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려니 공부를 해야되잖아요. 근데 공부를 하다보니 또 욕심이 생기는 거에요. 그래서 대학원도 가게 되고, 새롭게 실용음악과를 만드는 대학에서 교수 채용공고가 나서 제가 원서넣고 면접보고 해서 지금 학과장이 됐어요.
    음악실 부도나고 실패했던 게 엄청난 경험이 됐죠. 음악이란 게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제가 어떤 장비가 좋고, 어떤 시설을 갖춰야 하고, 당장 학생들에게 뭐가 필요한 지 그걸 녹음실을 하면서 너무 잘 알게 됐던 거죠. 제가 국내에선 신디사이저를 도입한 거의 초기 사람이잖아요. 두 번은 실패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 김원준 인터뷰 중

    ∎ 예은이의 첫 마디 ‘아빠’를 넣어 만든 ‘딸 바보송’ ...기저귀 갈고 이유 식 먹이 고 육아선배들에게 정보를 얻는 아버지 김원준의 약속
    예은이가 짜증이 나서 울면 노래를 불러준다. 기분이 좋으면 예은이 목소리가 담긴 그가 만든 곡 ‘딸바보송’을 틀어놓고 함께 뒹군다. 예은이에 관한 모든 정보와 일정 을 온 가족와 공유하며, 매일 매일 딸의 건강과 발육 상태를 점검하는 그는 행복하 다.
    특히 홍경민씨 딸 라온이가 우리 예은이랑 얼마 차이가 안 나요. 그래서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 걸어서 물어보죠. 보행기는 뭐가 좋아? 이유식은 어떻게 해야돼? 예방접종 했어?... 진짜 홍경민씨가 보행기를 물려 줘서 아주 잘 쓰고 있어요 - 김원준 인터뷰 中
    예전엔 만나면 학교와서 강의를 해달라, 무슨 공연 애기, 음악 애기 그랬는데, 요즘은 오로지 딸 애기. 그거 아니면 우리 할 애기가 없어요 - 홍경민 인터뷰 중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늘 고독했던 노총각 생활을 끝나게 해 준 고마운 아내와 딸, 칠순이 넘은 나이에 손녀딸을 봐주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가수 인생 25년을 지나 두 번째 인생의 무대에 선 김원준의 고군분투 육아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예은아, 엄마랑 아빠랑 니 이름 짓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아니? 니가 재주도 많고 은혜도 많고 밝고 건강하게 자라라고 예은이라고 지었어. 언제 어디서나 반짝반짝 빛나는 예은이가 되길 아빠는 소망한다. 그리고....약속할게...아빠도 좋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 - 김원준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