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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49회 2017-11-19

    이길 수 없는 시련은 없다 가수 김민우 ∎ 너무나 갑자기 찾아온 아내의 죽음, 희귀병으로 1주일 만에 세상 떠나
    1990년, 데뷔 3개월 만에 톱스타 가수가 되었다가 지금은 자동차 딜러로 살고 있는 김민우. 지난 7월 갑자기 사망한 아내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아 내의 병명은 애초 ‘대상포진’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희귀질환인 ‘혈구탐식성 림 프조직구증’. 평소 건강했던 아내를 순식간에 앗아간 무서운 질병이었다. 아내는 발 병 7일 만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계속 검사가 이루어졌어요. 많은 검사와 많은 약물. 중환자실에 있는데 위에 매달려있는 것만 20가지. 그걸 계속 보고 있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계속 보고 싶고, 너무 그립고…. - 김민우 인터뷰 中 -
    아내는 6살 연하의 회사원이었다. 가수 김민우가 아닌 자동차 영업사원이던 시절, 김민우는 아내의 헌신과 사랑에 반해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아내가 고통스러워 하며 세상을 떠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 맞닥뜨리게 되는 아내 의 빈자리, 딸 민정(9)의 뒷바라지와 회사 생활을 병행하며 눈물 한 번 제대로 흘리 지 못하던 김민우는 홀로 찾은 아내의 묘소 앞에 끝내 눈물을 터뜨린다.
    ∎ 데뷔 3개월 만에 화려하게 오른 정상의 자리, 그러나 잇따른 실패와 절 망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던 김민우는 대원외고에 들어간 뒤 음악에 빠져들었다. 결 국 명문대 진학에 실패하고 경원대학에서 헤비메탈 밴드의 싱어로 활동하던 중 우연 히 앨범 제작의 기회를 잡게 된다. 작곡가 하광훈, 작사가 박주연, 그리고 가수 윤상 의 도움으로 3년간의 처절한 훈련 끝에 내놓은 1집 앨범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다. ‘사랑일뿐야’, ‘입영열차 안에서’가 연이어 골든컵을 수상하며 무명의 신인가수 김민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활동 3 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군에 입대하게 된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훈련소에서 이제 불침번 같은 거 서잖아요, 저희들. 교육대에서 한 달간 생활을 하는데 야간 불침번을 서다가 밤에 그때, 가요톱10이라는 프론데 궁금한 거예요. ‘입영열차 안에서’가 후속곡이었는데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는데 딱 보니까 1위가 된 거예요 제가 없는데. 갑작스런 입대가 굉장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이런 생각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인기가 있는데 군대를 갔다 오더라도 복귀하면 이 인기를 다 원상 복귀할 수 있을 거다, 라는 생각도 한편으론 하고 있었죠. - 김민우 인터뷰 中 -
    가요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992년, 김민우의 제대 시기와 맞물려 ‘서태지와 아 이들’이 데뷔했다. 가요계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고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온 힘 을 다해 3개의 앨범이 더 만들었지만 연달아 실패하고, 노래할 무대를 찾아다니던 김 민우는 대출을 받아 녹음실을 차렸다. 그러나 그 녹음실을 화재사고로 잃게 되고, 수 억 원의 빚과 함께 신용불량자가 된 김민우는 끝내 추락하고 만다.
    당장의 생계를 고민하던 그 때, 그가 선택한 것은 외제 자동차 영업사원. 화려한 무 대를 뒤로 하고, 전단지와 명함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김민우에겐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뿐이었다.
    저에게는 연예인 고객님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 고객님들이 90퍼센트 이상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처음에 왔을 때 오히려 더 밖에 나가서 외부에서 영업을 많이 하고 많이 돌아다니고요. 고객 한 명을 만나기 위해서 그 분의 마음을 얻고 위해 길거리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나눠주고, 명함을 돌리고 그랬어요. 집에 돌아가면 새벽 네 시 이정도 되는 거죠. 그러면 완전히 누우면 아침에 못 일어납니다. 그래서 앉아서 자요. 재킷만 벗어놓고, 셔츠랑 타이만 풀어놓고 자는 거예요. 앉아서 자고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출근을 하고 또 계속 그런 일정들. - 김민우 인터뷰 中 -
    2006년부터 시작된 판매왕 행진. 한 달에 외제차를 열 대씩 팔았던 그의 기록은 지 금도 전설로 남아있다. 1년 반 만에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생활은 안정권에 접어들었 다. 그는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어내던 그 때의 가슴 부듯함을 잊을 수 없다.
    신용카드 발급 받으면 노란색으로 붙어 있잖아요. ‘본인 외에는 개봉하지 마시오’ 이런 것 있고요. 쫙 뜯고 ARS 눌러서 카드 등록하잖아요. 그거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마 저밖에 없었을 거예요 신용이 다 회복이 됐고 빚을 다 정리를 했는데 너무 바쁘니까 그것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고 나서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처음에 백만 원이었다가 그게 천 단위였다가요 나중에 억 단위까지 올라갔는데 9천 9백만 정도 통장에 잔고가 있을 때 아침에 ‘입금되었습니다’ 문자가 오는데, 잔액이 1억이 넘어갔더라구요. 그 때 그 느낌. 정말 새로웠어요. 돈 만원 들고 삼사일을 살던 내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산다는 느낌. - 김민우 인터뷰 中 -
    ∎ 오뚝이 인생 김민우에 찾아온 또 한 번의 시련, 아내 사별 이후 100일. 딸과 어머니, 그의 삶을 위한 슬프고도 처절한 몸부림
    작년 6월 김민우는 20여 년 만에 새 노래 ‘푸르다’를 발표했다. 아내가 너무나 좋아 했던 노래였다. 지금 김민우는 아내와 딸 민정(9)을 위해 또 다른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가요계를 떠나 있었던 그를 도와주는 건 대학교 헤비메탈 밴드 선배 였던 가수 김정민. 김정민은 김민우가 가수의 길로 이끌었던 인연도 있다.
    김민우가 저를 또 가요계로 이끌어주신 분이에요. 군대에 있을 때 ‘입영열차 안에서’를 들으면서, 김민우 씨의 유명세를 보면서 ‘난 지금 여기서 침상 닦고 있는데’ ‘아 부럽다’ 신세한탄도 했었죠. 제대하고 민우한테 사인을 받으러 갔다가 거기 제작자 분들을 소개시켜 줘서 제가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저에게는 은인 같은 후배에요. - 가수 김정민 인터뷰 中 -
    김민우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는 또 한 선배는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자동 차 영업사원 시절 친분을 쌓은 김태원은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과거에 명성에 매달 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김민우를 보고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지금 또 한 번의 시련 앞에서 김태원은 그에게 음악을 권유한다.
    도대체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있을까 너무 궁금했어요. 인생의 좌절과 성공을 모두 겪어봤으니, 어쩌면 음악인의 자격을 얻었다고 볼 수 있죠. 삶을 애기할 수 있는, 인생을 노래할 수 있는 자격. 이 친구는 슬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음악을 해야 되요. 음악을 통해 민우도 치유 받아야 해요. - 기타리스트 김태원 인터뷰 中 -
    화려한 가수 데뷔 이후 재기에 실패하고 성공한 자동차 딜러가 되기까지 김민우는 여러 차례 고비를 넘어왔다. 갑작스러운 아내와의 이별은 지금 그에게 찾아온 또 다 른 시련이다.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이겨내기 위해 달리고 있는 감동적인 김민우의 인생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248회 2017-11-12

    고생 끝 행복 시작, 김학래 임미숙 부부 ▶ 원조 개그맨 부부 김학래 임미숙, ‘각서’의 아이콘이 되다
    개그 프로그램이 시청률 40~50%를 장악하던 80년대,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 니다. 딸랑딸랑딸랑~', '괜찮아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등 구수한 입담으로 숱 한 유행어를 제조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감초 개그맨 김학래! 당대 최고의 개그 프로 그램인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뿐만 아니라 수많은 CF에도 출연하며 미 녀 개그우먼으로 유명했던 임미숙! 특히 임미숙은 동료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인기 가 많았는데, 김학래의 열렬한 구애 끝에 이들은 10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결혼에 골 인했다.
    “저는 교회를 안 나가면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개그맨실에서 엄청 큰 검정 책을 옆에 딱 끼고 와서는 제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빠 이거 뭐예요? 했더니 영어로 ‘바이블’, ‘나를 베드로라 불러다오’ 그러면서 매일 저한테 와서 오늘의 설교 말씀은 이거야, 나는 이제 예수님을 영접 했어 계속 그러는 거예요.” ― 임미숙 인터뷰 中
    “퇴짜 맞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 온갖 유행가 가사가 다 나를 위해 만든 것 같고. 그래서 몇 개월 만에 연애편지도 쓰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귀찮게 했죠. 최양락한테도 얘기하고, 이경애한테도 도와 달라 얘기하고, 그 결정체가 오늘의 우리 부부예요.” ― 김학래 인터뷰 中
    하지만 신혼 초부터 이들 부부의 결혼 생활은 생각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결혼 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부터 김학래는 아내의 속을 썩일 때마다 잘못을 반성 하고 용서를 구하는 각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 둔 각서가 100여 장을 헤아린다. 과거에는 아픈 기억이었지만 이제는 이것도 연애편지와 함께 추억처 럼 말할 수 있게 됐다는 부부. 여전히 아옹다옹 하며 삶의 재미와 행복을 함께 찾아 가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의 인생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본다.
    ▶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 연이은 사업 실패에 잇따른 아픔
    거리의 낙엽 한 장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세상만사에 호기심이 가득한 임미숙과 성 실하고 우직하게 ‘마이 웨이’를 걸어 온 김학래. 나이 차이만큼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들 부부는, 각자 바라는 가족의 모습도 많이 달랐다. 6남매 중 막내로 사랑을 듬뿍 받 고 자란 임미숙은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을 기대했지만, 장남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와 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한 남편 김학래는 그녀의 기대를 번번이 좌절시켰다. 아내는 남편과 더 많은 것을 함께하기를 바랐지만, 무엇보다 가장으로서 경제 활동 에 충실하고자 했던 남편은 그런 아내의 요구가 때로는 버거웠다. 한편 결혼 초기 부부의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순탄하지 않았다. 피자집, 고깃집, 라이 브 카페 등 도전했던 사업마다 번번이 실패했고, 김학래가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까 지 연이어 당하면서 부부는 수십억의 빚을 안고 파산 위기에 몰려 힘든 시기를 보내 야 했다. 결국 거듭된 위기로 인해 임미숙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앓게 됐고 방송 활동마저 접었다. 공황장애가 병이라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절, 곁에 있 는 남편조차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고, 가족들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 한다는 사실은 임미숙을 더욱 슬프고 힘들게 했다.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8년 만에 함께 방송에 출연한 김학래 임미숙 부부의 진솔한 이야기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 개된다.
    “비행기 타는 거는 생각도 못 하고, 어디 갇혀 있는 거는 더욱더 무서워서 엘리베이터를 못 타겠는 거예요. 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혹시 너 어디 아파? 그 말을 10년 만에 했어요. 혹시 너 어디 아파? 그때 눈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 가게 된 거예요. 사람이 어디가 아프면 나 아파 하고 치료를 받으면 되는데, 이거는 마음에서 오는 병이니까 보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숨기다 보니까 본인은 죽겠어도 남들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 임미숙 인터뷰 中
    “나는 공황장애가 뭔지도 모르고,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 방법을 잘 몰랐죠. 그렇게 세월이 많이 지나갔어요. 그걸 이해하고 지금은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제가 카운슬링해 줄 수 있을 정도가 됐는데도, 인간이기 때문에 또 잘 안 되더라고요. 아 내가 또 잊어버렸네, 아내가 아픈데 갑자기 또 소리를 질렀네 하면서 바로 또 후회하고.” ― 김학래 인터뷰 中
    ▶ 연매출 100억대 사업가로 변신한 부부의 인생 제2막,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
    김학래 임미숙 부부가 28년차 부부로 여전히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믿 음을 지켜 냈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맞춰 가려 노력하면서 마 음에 안정과 평화가 찾아왔고, 임미숙의 공황장애도 서서히 치료됐다. 경제적으로 재기하기 위해서도 부부는 쉬지 않고 함께 노력했다. 김학래는 30여 년 간 꾸준히 해온 방송 활동 및 각종 행사 진행, 강연에 부지런히 다녔고, 임미숙은 부 부가 새로 창업한 중식당 운영에 전념했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밑거름 삼아 부부의 삶을 일으키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창업한 중식당은, 좋은 음식 재료와 맛, 손님 한 명 한 명의 취향과 특징,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직접 챙기는 임미숙의 살뜰한 노력 덕분에 꾸준히 성장했다. 또한 자체 개발한 메뉴를 홈쇼핑에 런칭하면 서 부부는 연매출 100억 원까지 달성했고, 마침내 10여 년 만에 남은 빚도 다 갚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지금 현재 제가 하는 사업을 보고 성공한 사람, 성공한 CEO라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참 많은 대가를 치렀어요. 결국 지금에 와서 성공한 건 아내가 옆에서 힘을 북돋아 주고, 서둘러서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들과 얘기 나누고, 음식을 개발하고 이러면서부터예요.” ― 김학래 인터뷰 中
    성공한 사업가로서 인생 제2막을 꽃피우고 있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 아픔을 이겨 낸 부부는 자기를 고집하기보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며 나누고 함께할수록 삶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여전히 남편이 아내보다 드라마에 더 집중해서 아내의 마음을 서운하게 할 때도 있지만, 시련을 딛고 지켜 낸 가족이기에 부부에게 지금의 행복은 더욱 값지다. 옥신각신하면서도 서로의 곁을 든든하게 지 켜 주고 있는 김학래 임미숙 부부의 인생 스토리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본다.
    “사실 옛날에는 무조건 엄마 편이었는데, 지금 보면 엄마는 따뜻하고 아빠는 이성적이고 서로의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두 분이서 시간을 조금 더 알차고 즐겁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고, 엄마가 공황장애를 다 치유하시면 제가 서른 되기 전에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입니다.” ― 아들 김동영 인터뷰 中

    247회 2017-11-05

    여배우로 산다는 건 - 김보연 편 █ 또 한 번의 이혼 다시 돌아온 싱글라이프
    지난 2004년, 9살 연하의 배우 전노민과의 재혼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김보연. 연 예계의 소문난 잉꼬부부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전노민의 사업실패 로 8년 만에 다시 한 번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두 번째 이혼을 둘러싼 많은 억 측과 루머들로 한동안 마음고생에 시달려야 했지만 김보연은 한동안 공식석상 앞에 서 최대한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방송에서 최초로 이혼 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전노민을 만나게 된 이야기와 이혼 후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돌아서서 지나가는데 느낌이 이상한 거에요 누군가가 나를 보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보니까 전노민 씨가 보고 있더라고요 느낌으로 두 발짝 지나갔는데 후배들하고 전부 보고 있는데 그냥 가면 이상할 거 같고 반가웠어요 그냥 그래서 잘 지내시냐고 웃으면서 악수하고 보기 좋다고 했어요 ” - 김보연 int
    배우 이외에 김보연이 맡고 있는 또 다른 직함이 있다. 바로 ‘장애인문화예술원’의 홍 보이사직이다. 장애우 아이들, 장문원의 선생님들과 연을 맺은 지도 어언 10여 년. 화려하고 도도하게만 보이는 그녀에게 이곳에서의 봉사활동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 다. 배우로서의 삶에 감사하며 자신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김보연의 인 간적인 모습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본다.
    █ 할머니가 되었어요, 그녀를 지탱하는 힘 가족 그리고 사랑
    다시 돌아온 싱글이 된 김보연의 곁을 지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가족. 딸 부 잣집의 넷째 김보연과 돈독한 우애를 자랑하는 그녀의 자매들. 그 자매들을 키워온 어머니 역시 9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하게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다. 김보연의 두 딸 또한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훌륭히 자라 어느덧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다. 자신이 할머니로 불리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그녀. 그 런 가족이 있기에 힘든 세월을 버틸 수 있었고 혼자인 삶이 더 이상 외롭게 느껴지 지 않는다.
    “나는 우리 애들보다 엄마 생각이 먼저 나요 내가 이혼했을 때 80 넘으신 엄마가 관절 때문에 그래도 딸이 혼자인 게 걱정 돼서... 미안해요 미안해서 엄마 안 와도 되는데 나 엄마 씩씩해 괜찮아 우셨더라니까 나 그 때처럼 죄송한 일이 없었어 진짜 지금은 씩씩하게 잘 지내니까 우리 엄마도 좋아하세요 “ - 김보연 int
    누군가는 말한다. 나이 든 여배우는 더 이상 설 자리가 많지 않다고. 해야 할 역할 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배우 김보연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다. 중견여배우 라는 한계를 넘어 다시금 도약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 그 꿈을 향한 김보연의 연기 열정은 10대 소녀의 마음처럼 늘 한결같다.
    █ 40년 베테랑 김보연의 이 배우가 사는 법
    화려한 외모와 똑 부러지는 연기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 치고 있는 배우 김보연.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강남길과 의 코믹 중견 로맨스로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으며 다시 한 번 배우 김보연의 존 재감을 각인시켰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지도 어언 40년. 남부럽지 않은 삶 을 사는 화려한 싱글이지만 여전히 연기가 고픈 천상여배우이다. 화려한 싱글, 그리 고 계속 되는 그녀의 연기 인생과 열정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본 다.
    “연기자가 이제 나이 먹어서는 이 역할 저 역할 가릴 거 없다고 봐요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거는 어떤 역할이든지 그냥 이제는 해야지 초이스가 없어요 우리들한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역할 주면 잘 할 수 있을 거 같애 왜냐 많이 겪었잖아 뭔가 알잖아 그런 역할하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애“ - 김보연 int

    246회 2017-10-29

    더원, 최고의 사랑 ■ 아시아의 보이스, ‘더 원(THE ONE)’이 전하는 8년 만의 진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소리, 가수들이 꼽은 진정한 가왕 ‘더 원(THE ONE)’! MBC <나는 가수다>를 역대 초고속으로 졸업하고 최근 중국판 <나는 가수다3>에서 활약 하며 한류스타로 등극, 동방신기, 태연, 환희 등 SM사단의 역대급 아이돌 300여명 을 가르쳐 온 보컬트레이너이자 드라마 OST 20여곡을 히트시킨 음원 강자다.
    하지만 올해로 데뷔 19년차를 맞은 그는, 가수로선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를 표 현하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나쁜 남자’라는 오명도 존재한다. 오래전 사귀었던 여 성과의 양육비 관련 분쟁으로 시작된 ‘딸에 얽힌 구설수’가 원인이다. 하지만 그는 사 건 이후 지금껏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그가, MBC <사람이 좋다>에서 처 음으로 그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해명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 사람인가? 하고 오해가 더 커지는 게 있더라고요. 누구나 살면서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많은데 내가 뭐라고 말을 하나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설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더원 인터뷰 中
    지금껏 가수 ‘더 원’을 둘러쌌던 각종 오해와 구설수에 대한 진심어린 이야기, 그리 고 방송 최초로 공개하는 8살 딸아이와의 일상 그리고, 그가 지키고 싶은 가족에 대 한 이야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남자 ‘더 원의 진심’이 <사람 이 좋다>에서 최초 공개된다.
    ■ 삶의 바닥을 딛고 일어선 시간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전성기는 2012년 MBC<나는 가수다>에서 가왕 자리를 거머쥐었던 그때다. 하지만 그때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인 동시에, 가 장 큰 아픔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사업에 실패하면서 140억 원의 채 무를 안고 있던 상황! 당시 집과 통장을 압류 당하고 건물과 차까지 전 재산을 처분 해야 했다. 만 원 짜리 한 장 없어 8개월을 걸어 다녔고 잘 곳이 없어 전기 끊긴 건물 에서 무작정 자기도 했다. 딸아이와 관련한 구설수가 불거지면서 오명에 둘러싸였 던 시절도 바로 그때다.
    “진짜 바닥을 경험했어요. 어떤 느낌이냐면, 올라갈 수 없겠구나, 탈출할 수 없겠구나 라는 본능적인 무서움이 되는 바닥?” - 더원 인터뷰 中
    하지만 그는 가수로서의 삶도, 아빠로서의 삶도, 모두 포기하지 않았고 더 열심히 뛰 었다.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예전엔 하지 않던 지방 행사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현재는 많은 빚을 갚았고, 중국에까지 진출하면서 해외 활 동도 다니고 있다. 아직 9억 남짓한 채무가 남아있지만 그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생각하면, 그래도 스스로 가족과 회사를 지킬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날 이라고 이야기한다.
    ■ 나쁜 남자 꼬리표, 그리고 ‘아빠 더 원이 꿈꾸는 최고의 사랑’ - 더원, 과거 양육비 관련 분쟁으로 시작된 ‘딸에 얽힌 구설수’, 진실을 말하다
    세간에 딸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오해는 그에게 ‘나쁜 남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양 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외면했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그 구설수에 대해 ‘사 람이 좋다’가 만난 진실은 알려진 것과 달랐다. 누구보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고 군분투하는 아빠 더 원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스케줄 중에도 시간을 쪼개 딸아이를 만난다. 이제 8살이 된 딸은 아빠를 무척 따른 다. 하지만 정작 더원은 딸아이에게 아직 미안한 것이 많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 까. 그리고 구설수의 진짜 진실은 무엇일까. 초보아빠 더원과 여덟 살배기 딸아이가 함께한 즐거운 하루,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세간의 오해에 대해 침묵했던 진짜 이유 가 <사람이 좋다>에서 최초 공개된다.

    245회 2017-10-22

    서른아홉 댄스가수, 길건 ∎ 이효리의 춤선생님! 자타공인 댄싱퀸 길건
    이효리, 백지영, 왁스 등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탑 여가수들의 무대 뒤에는 댄서 길건이 있었다. 2004년 가수로 데뷔, 올해로 14년 차를 맞은 가수이지만 대중들에게 는 여전히 ‘이효리의 춤 선생’으로 더 익숙한 그녀. 이처럼 그녀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이효리와의 인연은 17년 전 시작되었다.
    “제가 댄서 생활을 2년 반 정도 했을 때, 이수영 씨 콘서트에 선 적이 있었어요. 그때 연습실에서 같이 연습을 하는데 이수영 씨 이효리 씨 제가 같은 나이였던 거예요. 직업이 달라서 저한테 좀 다르게 대할 줄 알았는데 가수 친구들한테 대하는 것처럼 똑같이 대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좀 친하게 많이 지냈죠” - 길건 인터뷰 中
    춤실력으로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댄서였지만 그 이면에는 늘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고, 댄서라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힘든 시간 을 보내야 했다는데
    “아무래도 수입이 없다 보니까 많이 처음에 시작할 때는 분명히 한 달 열심히 일했는데도 지하철 패스 1장 받았었어요.”
    “백업 댄서는 좋은 말이에요 오히려 빼까리? 이렇게 너무 딱 비하하듯이 말이 나오는 단어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좀 싫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 안무팀한테는 댄서라는 말도 잘 안써요. 댄스팀이라고 해요” - 길건 인터뷰 中

    댄서 시절을 함께한 친구를 통해 듣는 춤꾼 길건부터 춤 때문에 생긴 영광의 상처까 지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 ‘한국의 비욘세’를 꿈꾸며 데뷔...그러나 암흑같았던 8년의 공백기
    댄서로 먼저 이름을 알린 길건이지만 어릴 적부터 한순간도 ‘가수’라는 꿈을 잊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심한 반대에 꿈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부모님들이 너무 반대하셔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의 비욘세를 만들어준다는 말에 너무 순수하게 ‘비욘세? 유학 가기 전에 비욘세 한 번 해볼까?’ 그 생각에 덜컥하겠다고 했어요.” - 길건 인터뷰 中
    ‘한국의 비욘세’를 꿈꾸며 2004년 화제 속에 데뷔한 길건. <흔들어봐> <여왕개미> 를 발표하며 무대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도 출연하며 이슈가 됐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중들의 반응은 점점 식어갔고, 설 상가상 10년 지기 친구였던 김태우의 소속사에 들어갔지만 소송 직전까지 가는 갈등 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아무도 길건을 찾지 않았던 8년의 공백기가 이어졌다. 생계 를 위해 분식집에서 서빙을 하고, 에어컨 필터 청소를 하는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 활비를 벌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는데...딸의 힘든 사정을 아는 부모님이 매달 생활비 를 보내 주셨다고.
    “제가 쉬는 기간 동안 그 8년 동안 아빠가 암 선고를 받으신 거예요. 너무 놀랐는데 아빠가 웃으시는 거예요. ‘나 너한테 돈 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보험금 타면 너 줄게’” - 길건 인터뷰 中
    추석명절을 맞아 부모님을 뵙기 위해 포항을 찾은 길건. 그녀의 부모님은 포항에서 돌곱창 집을 운영하고 계신다. 가게 한편에 놓여있는 약가방. 현재 그녀의 어머니는 20년째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는 중이지만 딸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 하루도 가게를 쉬지 않으신다.
    “제발 엄마가 제가 잘 돼서 효도할 때까지 안 아팠으면, 버텨주셨으면... 부모님한테 용돈 드릴 수 있는 딸이 됐으면 좋겠어요” - 길건 인터뷰 中
    ∎ 8년 만에 댄스가수로 컴백! 멋진 가수로 기억되고 싶은 길건!
    힘든 시간을 지나 다시 무대로 돌아온 길건. 그동안 보여주지 못 했던 다양한 모습 의 길건을 보여주기 위해 스케줄이 없는 날에도 춤연습, 보컬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드라마 <완벽한 아내> OST를 부르며 발라드에도 도전한 한 그녀. 앞으로 는 감성적인 노래, 락발라드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말 사람들에게 어딜가도 ‘길건’ 하면 노래 잘하는 가수. 춤 잘 추는 가수. 이렇게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평생 음악을 했는데 아무도 안 알아주면 집에서 혼자 하는 거나 다름이 없잖아요. ‘멋진 가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 길건 인터뷰 中
    무대 위에서 ‘멋진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가수’ 길건. 보여줄 것도 많고, 보여주 고 싶은 것도 많은 다재다능한 그녀. 서른 아홉살 댄스가수 길건의 스토리를 <사람 이 좋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