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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19회 2017-04-23

    내 인생은 마라톤 – 김성환편 █ 60대 후반에 맞이한 제 2의 전성기! 내 나이는 ‘묻지마세요’
    노래 <묻지마세요>를 발표하면서 가수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김성환! <묻 지 마세요>의 인기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사 실 이 노래는 김성환의 노래가 아니었다고.. 친한 후배 가수 진성 씨의 신곡 품평회 자리에서 작곡가로부터 ‘김성환 씨가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 는 말과 함께 우연히 받은 운명적인 곡이었던 것. 연기를 할 때와는 다르게 노래 한 곡이 주는 행복감을 누리고 있는 지금. 자신의 노래를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그의 가수로 서의 인생 2막을 들여다보자.
    “사실은 어떤 가수보다도 노래 실력이 너무나 뛰어나시고. 게다가 정말 사람이 좋은 분이더라고요. 그 좋은 마음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는 것 같아서 가수로서도 굉장히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은 훌륭하신 분입니다.” - 장윤정 int
    █ 연예계 대표 팔방미인, 김성환을 만든 그만의 숨겨진 노력!
    재수생 시절,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탤런트 시험을 봤다가 약장수 연기 4번으로 단번 에 탤런트가 된 김성환! 하지만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 때문에 역할이 들어오지 않아 ‘시체’ ‘행인3’ ‘인민군’ 등 주로 대사가 없는 단역을 전전하며 10년 가까이 무명시절 을 보냈다고... 하지만 전화위복! 아예 팔도 사투리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능수능란 한 사투리 구사능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 도전은 멈 출 줄 모르니 얼마 전부터는 판소리를 손박자 장단에 맞춰 부르기 위해 새로운 도전 을 시작했다는데...
    “저는 뭘 하던지 끝을 봅니다. 대충하는 법이 없어요. 예로부터 어르신들이 한 우물을 파라고 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해요. 단,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어요.” - 김성환 int
    █ 데뷔 47년 동안 공개한 적 없던 그의 사생활 전격 공개!
    재수생 시절 탤런트로 데뷔한 김성환은 못 다한 공부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고. 2004 년 쉰셋의 나이로 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하며 만학도의 꿈을 실현했고 이후 석사 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공부 중이다. 그가 이렇게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던 건 그의 끊임없는 건강관리 덕분인데... 특별히 돈을 들여서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매 일 아침 2시간 씩 걷는가 하면 과식은 절대 금물이다.
    “정말 철두철미하세요. 자기 관리가 딱. 아침에 일어나시고 운동하시고 그리고 안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확하게 안 하시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곁눈질, 이것도 없습니다. 저 분은 그냥 오직 앞으로.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조금 잘 못되면 도닥여주시고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 개그맨 정진수 int
    특히 28년째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그의 건강을 가능케 한 숨은 비결. 매일 밤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라디오 덕분에 자동적으로 술 약속을 잡지 않게 되었 다는데... 하지만 아내와 함께 마음 놓고 여행 한 번 가지 못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 빚이라고. 그런 아내를 위해 바쁜 와중에도 집안일을 돕는 김성환의 가정적인 모습 을 <사람이 좋다>를 통해 공개한다.
    “탤런트면서도 노래를 굉장히 잘 하시고 음반도 내시고 그런 노래들이 대중화돼서 많이 사랑받고, 다재다능하시고 그러면서도 항상 가정에 충실하시고 가정에 화목을 위해서 많이 애쓰시는 모습을 옆에서 이렇게 보면서 나도 나이 들면 꼭 저렇게 저런 모습으로 성장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신철 int
    █ 연예계 마당발 김성환, 강부자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비공개 금혼식에 초대 된 사연은?
    탤런트 협회장을 지내고 평소 어려운 동료를 다독이고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연예 계 마당발, 김성환! 그가 탤런트 강부자 씨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그녀의 비공개 금혼 식에 초대를 받았다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의 인연은 4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다. 데뷔 3년 후, 군대를 가게 된 김성환! 연기 인생을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접힐 뻔 한 상황에서 군부대 위문공연을 온 강부자 씨의 도움으로 군대 내에서 연극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많은 후배가 있고 수많은 동료가 있지만 유일하게 성환씨를 초대했어요. 성환씨는 상당히 재능도 많고 끼도 많고 아주 재간도 많고 그런 훌륭한 연기자지만 특히 그것보다도 사람이 너무 인간적이고 너무 좋아요. 아주 훌륭한 후배고 특히 요즘에 연기자보다도 가수로 또 날리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둔다고. 그 동안 쌓아 온 인맥과 인간성이 훌륭한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내가 좋아해요.” - 강부자 int
    “많은 후배가 있지만 김성환은 많은 후배 중에 가장 사랑하는 후배예요. 성환이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고 또 동료들에 대한 애정이 엄청 많은 후배예요. 옛날 초창기 때는 많이 어려웠지만 지금 자기 노력으로 훌륭하게 성공해서 노래 부르거나 연기를 하거나 타고난 끼가 많은 그런 만능 탤런트, 정말 자랑스러운 후배라고 생각합니다.” - 사미자 int
    어릴 적 아버지의 말씀처럼 쓰잘데기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지난 47년 간 쉼 없이 노력해 온 김성환! 일이면 일, 사람이면 사람,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프로다운 그의 일상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보자.

    218회 2017-04-16

    슈퍼스타 최대철 ■ 국민 찌질이 최대철 시청률의 요정이 되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 ” “미미미 미춰버리겠네” 수많은 유행어를 남기고 50%에 육박한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그 안에서 대한민국 대표 찌 질이 삼촌으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배우가 있다. 바로 최대철이다. 이후 <왔다! 장보리> , <내딸 금사월>, <우리 갑순이>등 2013년부터 4년 동안 한 번 도 쉬지 않고 대박드라마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 최대철. 찌질이 삼촌, 조폭, 사기꾼, 내시 그리고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까지! 다양한 역할마다 제 옷 입은 것 마냥 소화해내며 시청률의 요정이라 불리는 최대철을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본 다.
    “작은 배역은 없다라고 하잖아요. 저는 최대철을 보면서 그걸 느꼈어요. 작은 역할 같지만 최대철이 배역을 맡으면 거기서 신스틸러 역할을 하더라고요. 어떤 배역이든 정말 잘 소화해요” -개그맨 박수홍 INT
    “최대철은 타고난 배우에요. 왕가네 식구들을 통해서 세상에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진가를 발휘할만한 역할은 못 만났어요. 최대철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 -배우 안내상 INT
    ■ 연기! 인생의 제 2막을 열다.
    다양한 캐릭터를 맡으며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최대철. 사실 그는 한양대 무용 과를 전공하고 각종 신인상을 휩쓸며 인정받았던 무용계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무용 수들에게 꿈의 대회였던 국제파리콩쿠르를 예선 1위로 진출하고 결선을 일주일 앞 둔 그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손목 인대 세 개가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 부상투혼을 발휘하면서까지 파이널 무대에 출전했지만 결과는 꼴찌였다. 무용수로 서의 인생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최대철. 꿈을 잃은 절망적인 그의 인생에 전환점 이 찾아왔다! 바로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연기는 그가 인생 제 2막을 열수 있게 해 준 희망이자 꿈이었다.
    하지만 꿈만 쫓기에는 현실은 냉혹했다. 아내와 두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었 던 최대철은 때로는 한 달 몇 십 만원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연기를 하며 투잡은 기본 택배, 대리운전까지 해야 했다. 아이들은 커 가고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 이상과 현실의 기로에 놓인 최대철이 연기를 포기하려고 할 때, 그 의 인생 최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지금의 최대철을 있게 해 준 작품 <왕가네 식 구들>에 캐스팅 된 것이다. 대학로에서 이미 12년의 연기 경력이 있는 연기자지만 드라마에서는 신인의 마인드로 연기에 임했다. 지금도 여전히 제일 먼저 촬영장에 도착해 대본을 보며 촬영을 준비하고 스스럼없이 선배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을 묻 고 듣는 최대철. 아무리 작은 배역이라도 기대이상을 해낸 결과 그에게 끊임없이 기 회가 주어졌고, <왕가네 식구들> 48.3%, <왔다! 장보리> 37.4% , <내 딸, 금사월> 34.9%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행진을 이루고 있다! 최대철, 그의 인생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던 것도 연기였고, 그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것도 바로 연기였다.
    “대철이가 나이가 어린 후배도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님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요” - 배우 유선 INT
    “연기라는 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거잖아요. 연기를 완성하려면 좌절과 어려움 등 다양한 경험들이 필요한데 연극이라는 무대가 그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해 줘요. 그걸 딛고 일어선 이들이 치고 나가는 게 있거든요. 그 과정들을 최대철이 밟아 나갔다고 생각이 들어요” - 배우 안내상 INT
    ■ 당신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최대철은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지만 뮤지컬 4년, 연극 8년, 1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안정적인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런 최대철 대신 집안 의 생계를 책임진 건 다름 아닌 아내였다. ‘돈은 내가 벌 테니 하고 싶은 연기를 포 기하지 말라’ 며 아울렛 가방 매장의 판매원으로 취직한 아내. 가스비를 내지 못해 가스가 끊겼지만 돼지 저금통에서 4만 5천원을 발견했다며 해맑게 미소 짓던 아내. 하루 12시간 이상을 서서 판매직으로 일하며 하지 정맥류로 고생하면서도 남편을 믿 어 준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 덕분에 최대철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때 문에 현재 최대철의 핸드폰에 저장 되어있는 아내의 이름은 바로 <신의 선물>이다. 신이 내려준 선물처럼 최대철을 응원하며 묵묵히 곁을 지켜준 아내. 연애 8년에 결 혼 11년차 부부이지만 아직까지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하트가 뿅뿅’ 사랑이 가 득하다.
    “남편이 연기하는 것이 싫지가 않았어요. 저도 남편의 공연을 보면서 팬이 됐어요. 남편이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집에 가서 정말 잘해줘야지, 많이 챙겨줘야지 생각 했어요.” -아내 최윤경 INT
    “아내가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속으로 ‘아직 멀었어, 네가 행복해야 할 시간은 지금부터야. 앞으로 더 행복하게 해줄게’ 라고 생각해요” -최대철 INT
    무용, 뮤지컬, 연극 등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과거의 고생들이 값진 경험이 었다고 말하는 최대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결과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이 제는 아빠가 배우라고 말할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아들, 딸. 항상 남편을 믿어주 고 응원해주는 아내. 그리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넌 잘 될 거야’ 라고 응원해주는 지 인들까지.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최대철은 이미 ’슈퍼스타’ 이다. 브라운관으로 시청 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지 이제 겨우 5년. 그래서 앞으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 은 무궁무진하다. 예비 슈퍼스타 최대철의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한다.

    217회 2017-04-09

    내겐 너무 예쁜 그녀, 심진화 김원효 부부 ▶ 개그맨 잉꼬부부, 김원효, 심진화의 7년째 신혼일기!
    최근 몸무게 18kg 감량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해 연일 관심을 받고 있는 개그우먼 심 진화! 그녀는 다이어트 후 몰라보게 예뻐진 모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심진화는 2011년, 경쟁 방송사인 KBS 개그맨 김원효 와 결혼해 세간에 관심을 받았다. 그녀는 뚱뚱해진 모습까지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말하는 남편 덕분에 결혼 후, 살이 25kg이나 쪘다며 푸념한다. 뚱뚱한 모습을 버리 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후,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과 방송 섭외, 홈쇼핑 ‘완판녀’ 등 극까지, 남편보다 잘나가는 아내가 된 심진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아내의 인기 에 남편 김원효가 더 기뻐하며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다.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잉꼬 부부 김원효, 심진화! 아내 심진화를 향한 남편의 애정은 결혼 7년차에도 식지 않고, 신혼 같이 달콤하다는데. 금슬 좋은 이 부부의 특별한 결혼 생활 비결은 무엇일까?
    "진화 언니가 캐나다 출장을 갔던 적이 있는데, 그 짧은 시간을 못 버티고, 김원효 씨가 술 취해서 저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신영아 어디고. 너무 힘들다. 진화가 너무 보고 싶다. 어떡하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도 마요. 진짜 최수종씨는 다시 더 열심히 하희라씨를 사랑해 주셔야해요. 이 부부가 이길 것 같아요." - 개그맨 김신영 INT
    ▶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줄게요” 그 남자가 사랑하는 법!
    10년 전인 2007년은 진화 씨 인생의 가장 아픈 한 해였다. 당시 그룹 ‘미녀삼총사’ 행 사를 마치고 이동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해 동료 故 김형은을 옆에서 떠나보낸 심진 화.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 그녀의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까지 뇌출혈로 세상 을 떠났다. 게다가 ‘미녀삼총사’의 해체로 생활고까지 닥친 심진화는 심각한 우울증 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당시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등 환청에 시달리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술로 괴로워하던 심진화. 벼랑 끝에 몰렸던 그녀에게 남편 김원효가 찾아왔다. 삶의 이유를 잃고, 방황하던 진화 씨를 한 달 내 내 찾아와 식사를 챙겨주고, 걱정해주던 김원효. 처음엔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 한다는 원효 씨를 믿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가는 그의 진심에 진화 씨도 마음을 열었다. 원효 씨는 그녀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의 버팀목이 되어줬다. 아낌없 이 사랑한 남자 김원효의 순애보와 애틋한 러브 스토리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본다.
    제 인생은 김원효 씨를 만나기 전과 후로 갈리는 것 같아요. 제가 32년을 살아오면서 조금이라도 행했던 착한 행동들이 모두 모여지고 합쳐져서 김원효 씨를 내 옆에 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결혼 생활 7년 동안 김원효 씨에게 받았던 사랑이 너무 커서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 심진화 인터뷰 中
    ▶ 가장의 무게를 견뎌라! 세 가족의 가장이 된 김원효
    결혼 후, 원효 씨는 바쁜 시간을 쪼개 지방 공연, 작은 행사 하나도 마다하지 않는 다. 지금까지 다닌 결혼식과 돌잔치 행사가 1000번을 훌쩍 넘겼다. 그가 하루도 쉬 지 않고 일하는 이유! 자신의 부모님과 처갓집의 생활비까지 책임지는 세 가족의 가 장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빚을 내서 무릎이 아픈 부모님을 위해 새 아파트로 이사 를 시켜드렸다. 또한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장모님을 위해 왕복 8시간 거리에 있는 경북 청송을 일주일에 한번 씩은 꼭 찾아간다는 원효 씨. 장모님과 데이 트도 하고, 생활비를 책임지며 장인어른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진화 씨에게 원 효 씨는 이제 사랑하는 남편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저희가 시댁과 친정 부모님까지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요. 제가 수입이 없을 때는 남편 혼자 세 가족을 먹여 살려야 되는 거예요. 그런 부담감, 책임감 때문에 남편은 하루도 못 쉬고 매일 일을 하는 거죠. 평소엔 괜찮다고 하지만, 가끔 술 취해 힘들다고 얘기할 때는 정말 안쓰러워요. - 심진화 인터뷰 中
    부담감이 들고, 힘들긴 하지만, 제가 부모님께 일하지 말고 쉬시라고 했어요.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일하시면서 아프신 것보다 편히 쉬면서 건강하게 지내시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가끔 주위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친구들이 후회하는 걸 보면 ‘난 잘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요. 지금보다 더 잘해야죠. - 김원효 인터뷰 中
    ▶ 결혼 7년차, 새로운 시작을 꿈꾸다.
    최근 진화 씨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어느덧 결혼한 지 7년이 됐지만 아직 둘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것. 그동안 임신을 위해 몸에 좋다는 한약도 먹고, 인공수정 등 병원 치료도 받아봤다는 진화 씨. 적지 않은 서른여덟의 나이 때문에 점점 마음 이 급해지는 진화 씨에게 남편은 아직 괜찮다며 아내를 위로한다. 하지만 유독 아이 들을 예뻐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하루 빨리 서로를 닮은 아이를 품에 안겨주고 싶 다는데. 서로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결혼 7년 차 부부 김원효, 심진화의 달콤한 결혼생활을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오늘 하루 종일 웃고 있네요. 지금처럼 사랑 변치 말아요. 나보다 더, 그댈 더 아낄게요. 지금부터 우리 함께 해요. 힘든 일도 아주 많을 거예요. 평생토록 그댈 지켜줄게요. 그대만 있다면 내 옆에 늘 있다면 무엇도 필요 없을 텐데. 한평생 그대 사랑하며, 그리워하고, 그대만을 볼게요. - 아내를 위한 김원효 자작곡 ‘설레임’ 가사 中

    216회 2017-04-02

    내일도 울랄라, 이다도시 ■ ‘울랄라 여사’의 못 말리는 한국사랑. 나는 한국인‘이다’, 이다도시
    90년대 많은 사랑을 받은 원조 1세대 외국인스타 이다도시! 한국 생활 26년, 귀화 21 년차. 찜질방은 물론 보통 외국인들이 무서워하는 침도 한의원에서 즐겨 맞으며 이 제는 웬만한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제대로 즐기는 그녀. 자신이 선택한 한국의 삶 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다도시의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 서 만나본다.
    “한국에서 26년 동안 살게 되리라고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한국에서 살면서 인생을 다시 다르게 바라보게 됐고 살게 됐고... 그동안 늘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셨는데 (지금은) 왠지 (마치) 식구인 것처럼 알아보시고 특히 나이 있으신 분들이 애들 잘 자라고 있냐고, 잘 있는지 물어봐주시죠.” - 이다도시 int -
    ■ 이다도시를 둘러싼 수많은 이름. 그래도 한국에 산다!
    한국을 사랑하고 늘 유쾌한 이다도시지만 26년 한국에서의 삶은 모두 행복한 것만 은 아니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전성기와 함께 겪었던 이혼이었는 데... 이다도시는 이혼 이후 사실이 아닌 갖가지 소문들이 나돌았고 사람들의 차가 운 시선과 함께 다짜고짜 ‘한국에서 떠나가라’는 모진 말까지 들어야 했다. 다문화 가 정의 가장이자 이혼녀, 귀화는 했지만 그래도 파란 눈의 외국인이자 이방인, 두 아들 을 키우며 교수로 일하는 싱글맘... 그녀 앞에 붙는 다양한 수식어들에 상처를 받기 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내고 있 다. 최근 5년 전부터 한 대학교의 프랑스언어문화학과 전임교수로 강단에 오르며 방 송보다는 대학교수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다도시. 매 강의평가 만점을 받 으며 인기교수로 자리 잡았고 최근 논문까지도 발표했다. 또한 작가로서 꾸준히 책 을 써 온 그녀는 이혼 이후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도 집필 중이다. 그 간의 아픔을 딛고, 씩씩하고 당당하게 마흔아홉 해를 살아가는 이다도시를 만나본 다.
    “한창 힘들었을 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거든요. 아예 (프랑스로) 떠나갈까 그런 생각. (하지만 내가) ‘왜 도망가지?’ 제가 무슨 죄를 지은 적도 없었고... 또 우리 아들들 생각해서, 이미 이혼 사실도 나름대로 충격인데 만약에 한국에서 떠나갔었으면 한국어도, 한국문화도 (잊었겠죠). 자기 문화예요. 그런 걸 뺏기고 싶지 않았어요.” - 이다도시 int -
    이다도시가 무너지지 않고, 더 씩씩하게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녀를 따뜻하게 감싸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이다. 그런 고마운 응원들이 하나 둘 모여 그녀의 한국에서의 삶을 지켜내게 했다. 그녀의 영원한 친구 로버트 할리 역시 소중 한 사람 중 한명이라는데... 90년대 당시 부부로 오해받을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함께 했던 두 사람. 그들의 우정은 2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채웠다. 함께한 세월만큼 공유 하는 추억도 많고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들. 로버트 할리는 이다도시 의 힘든 시기에 친오빠처럼 곁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줬던 사람이었다. 오랜만 에 할리를 만나 식사대접을 하는 이다도시. 유쾌한 두 사람이 만나니 쉴 틈 없이 수 다가 쏟아지는데... 환상의 콤비 이다도시와 로버트 하일의 특별한 만남을 <사람이 좋다>가 함께한다.
    “늘 똑같아요. 제가 이다를 만난 지 한 22년이나 됐거든요. 한결같이 변함없습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죠. 굉장히 고생하면서 한국에서 생활 해왔는데 다 자기가 잘 해냈어요. 정열적이면서도 아주 열심히 하는 그런 여자예요.” - 로버트 할리 int -
    ■ 갱년기를 앞둔 엄마 vs 사춘기 아들. 이다도시의 당차고 솔직한 프랑스식 교 육법
    이다도시 삶의 이유 중 하나인 두 아들. 이다도시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한국에 계 속 남아야 했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한국을 떠날 수 없었다. 어느덧 엄마 보 다 키가 훌쩍 커버린 두 아들. 첫째아들 유진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파일럿의 꿈을 품 고 엄마의 곁을 떠났다. 프랑스 기숙사에 지내며 주말이면 이다도시의 부모님댁을 찾아 한국에 있는 엄마와 동생에게 영상통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한편, 한국에서 는 유진이 떠난 이후 둘째아들인 태진과 단둘이 지내는 엄마 이다도시. 그녀의 요즘 고민은 둘째아들에게 찾아 온 사춘기! 요즘 부쩍 말수가 줄고 예민해진 태진이는 엄 마 이다도시와의 의견 충돌로 티격태격하는 날이 늘었다는데... 그래도 집안의 유일 한 남자로서 아빠의 빈자리를 든든하게 채워주기도 하는 둘째아들 태진. 엄마의 사 소한 의상 선택부터 요리의 간보기까지 최종 결정권을 갖기도 한다. 서로에게 의지 하며 유쾌한 웃음으로 일상을 채워가는 이다도시 모자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본 다.
    “드디어 이젠 제가 나 자신과 평화스럽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하고도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고 (사람들에게) 사랑도 다시 받고 있고요. 주고 있고... 그래서 괜찮아요. 어려움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 굉장히 많았고 되게 좋았어요. 그럼 50대 되면 더 좋지 않을까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다도시 int -

    215회 2017-03-26

    전설의 디바, 그대는 이은하 ■ 7080 디스코의 여왕! 원조 디바 이은하
    9년 연속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수상! 7080 세대를 주름 잡았던 디 스코의 여왕이 있다. 바로 데뷔 45년차 가수 이은하다. 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가요 계에 도전장을 내민 그녀! 어린 아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청 중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봄비>,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겨울 장미>, <아리송해>, <돌이키지 마>,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 등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국민 애창곡으로 손꼽히며, 명불허전 45년차 가수의 저 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은하 씨 음색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단 한 명뿐인 독특한 음색이고, 가창력도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에요. 이은하 씨는 세계 무대에 올라도 전혀 손색없는 가요계의 보물입니다." - 가수 배철수 인터뷰 中
    "이은하 씨 같은 경우에는 해가 거듭될수록 음악의 깊이가 깊어지더라고요. 같이 음악 하는 동료로서, 아끼는 후배로서 이은하 씨는 누구보다도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 중에 한 명이에요. 꼭 노래해야 돼요." - 가수 전영록 인터뷰 中
    하지만 최근 들어 음악 방송에서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웠던 그녀.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상의 이유로 무대에서 잠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는데... 그동안 한 번도 털어놓 지 못했던 가수 이은하의 파란만장 인생사를 <사람이 좋다>에서 전격 공개한다.

    ■ 이은하의 아픈 손가락, 그 이름 ‘아버지’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음악 세계에 발을 들인 이은하. 그 녀에게 있어 아버지는 인생의 스승이자, 음악 인생을 함께 걷는 동료였다. 그녀는 아 버지 덕분에 가수로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92년도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가 딸의 이름으로 발행했던 어음이 문 제되며, 이은하가 빚을 떠안게 된 것이다. 결국 집을 경매에 넘기고, 모아둔 재산 모 두 처분해야 할 수밖에 없던 그녀. 이은하는 아버지 빚을 갚기 위해 야간 업소 무대 를 전전했고, 10년 만인 2002년에 거액의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제가 많이 어렸고, 또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아버지가 빚을 졌어도 아버지는 이은하의 아버지니까 아버지가 빌린 돈도 당연히 제 빚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빚 갚기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했죠." - 이은하 인터뷰 中
    하지만 그녀는 또 한 번 인생의 내리막길에 놓였다. 다시 시작한 아버지 사업이 기 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급성 패혈증으로 쓰러지게 된 것이다. 지난 2002년 갚았던 빚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중환자실 병원비까지 더해져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혼자서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그녀는 결국 법정 파산 절차를 밟 고 있다.
    "아버지가 많이 원망스럽죠. 그런데 원망해봤자 어쩌겠어요. 제가 평생 동안에 많이 무식하고, 무지했던 거죠. 다만 아버지도 쓰러지셨다가 회복 중이고, 저도 약물 치료 없이는 못 움직이는 상태잖아요. 사실 당장이라도 수술해야 되는데 빚진 사람이 수술할 수는 없고... 그래도 제가 어떻게든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 이은하 인터뷰 中

    ■ 아직도 그대는 ‘가수’ 이은하
    다시 찾아온 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인 이은하. 매일매일 약물 치료를 받 으며 자기와의 싸움을 견뎌내는 중이다. 그녀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힘겨운 도전 을 멈추지 않는 이유! 바로 그녀 인생의 전부인 ‘노래’ 때문이다. 가수로서 인생의 마 지막까지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그녀! 아직까지 도전해보지 못한 음악 장르에 대한 갈증으로 계속해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덧 데뷔 45주년. 여전히 음악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 않는 가수 이은하!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봄날을 기다리는 이은하의 모습을 <사람이 좋다>에서 따라가 본다.
    "제가 몸이 안 좋으니까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제 건강 생각해서 어느 정도 자제하면서 하자고 생각하는데 무대에 올라가서 관객들 박수 받고, 앵콜 소리가 들리잖아요? 그러면 내가 오늘까지만 살다가 죽자는 생각으로 노래를 하게 되는 거예요. 내 노래가 좋다고 박수를 쳐 주는 관객들이 있는데 내가 뭔들 못할까 하는 생각으로요." - 이은하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