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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74회 2018-05-22

    사람이 좋다 사람이 좋다

    273회 2018-05-15

    나는 배우다, 김민교 ▶ ‘라이터 빌려달라는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 김민교가 부인 만난 러브스토 리
    눈알 하나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남자. TVN 코미디쇼 에서 '최순실', '쩐유 라'를 비롯, 화제의 인물을 패러디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김민교. 하지만 무 명의 서러움은 아주 긴 시간 그를 따라다녔다. 고단한 삶에서 연극만이 유일한 도피 처이던 어느 겨울, 운명같이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지금의 아내 이소영 씨. 한 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거문고를 전공하는 학생이던 소영 씨는 방학을 맞이해 연극 매 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당시 연극의 주인공이던 김민교를 만났다. 순진한 얼굴 로 라이터를 빌려달라던 그녀. 그는 한 겨울에 라이터로 테이프를 녹여가며 포스터 를 붙이는 그녀의 모습에 반했다. 그녀는 옥탑방에서 먹는 천원어치의 떡볶이도 함 께라면 행복하다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전 어찌도 인생을 이렇게 못나게 살아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기회는 저보다 빠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성공이라는 놈은 저보다 잘난 사람이 다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가난한 연극배우고, 얼굴도 모르는 영화배우지만 당신이 옆에 있어주고 믿어 준다면 그 누구보다 진실 된 연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연기보다 더 진실 되게 사랑하겠습니다. 소영아 나랑 결혼해 주겠니? - 김민교 프로포즈 편지 中 -
    처가의 반대를 이겨내고 마침에 4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된 두 사람은 꽤나 바쁘 다. 산책시켜야 하는 개들만 5마리, 거기다 길고양이, 동네 유기견들까지 챙기려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겁다는 결혼 9년차 부부. 인생의 가장 어두울 때 만나 함께 숱한 고비를 헤쳐온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와 소박 한 전원생활이 <휴먼다큐-사람이좋다>에서 공개된다.
    오빠는 정말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어요.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인생의 밑바닥까지 경험하고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걸 보면서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인생의 고난도 씩씩하게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 아내 이소영 씨 int -
    ▶ 1500평 대저택에서 판자촌으로, 스님의 아들로 살아야했던 파란만장 인생 사
    김민교는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당시 유명 종합병 원의 원장이었던 아버지는 개를 좋아하는 김민교를 위해 30마리나 되는 개를 키울 정도로 아들에게 한없이 헌신적인 부모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아버지가 큰 사 기에 휘말리면서 가세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1500평 대저택에 살다가 한순간 에 판자촌 쪽방을 전전하게 된 김민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버지는 모든 책 임을 짊어져야 했다. 그런 아버지가 기댈 곳은 종교뿐이었다. “더 이상 아버지라 부 르지 마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스님이 되신 아버지. 눈앞에 닥친 가난보다 태산 같았 던 아버지가 무너졌다는 사실이 더욱 그를 힘들게 했다. 존재만으로 든든했던 아버 지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아픈 존재가 되었다. 이후 15년을 먼발치에서 아버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김민교. 췌장암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서야 마침내 아버지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15년의 세월을 보상이라 도 하듯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모셨던 김민교. 매일 매일 찾아뵙기 위해 아버지의 사찰이 있는 시골 마을로 거처까지 옮겼다. 아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없는 형편이지만 결혼도 서둘렀다. 정성이 통했는지 3개월을 못 넘긴다던 아버지는 3년을 더 사셨고, 아들이 결혼을 보고서야 눈을 감으셨다
    제가 이제 가장이니까 힘들어도 기댈 수 있는 기둥이 없잖아요. 힘들고 정신적으로 괴로울 때 그럴 때 가장 생각나죠. 결혼하고 제가 사기를 당한 적이 있는데 저 혼자 힘든 건 괜찮은데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안 좋은 생각도 많이 들고... 그 시기를 겪으면서 ‘아버지는 그때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티셨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 김민교 int -
    이제는 아버지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 결혼 후 당한 사기. 힘들어하 는 아내와 어머니를 보며 가장의 책임감과 외로움이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알게 되 었다. 그가 로 성공하기 1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미처 잘 되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한 것이 내내 사무친다는 김민교. 그의 절절한 사부곡을 <사람이 좋다>에 서 담아본다.
    ▶ 다른 누구도 아닌, ‘배우 김민교’의 분투기
    개그맨 보다 웃긴 코믹 연기로 종종 개그맨으로 오해 받기도 하는 그이지만 알고 보 면 그는 연극 경력만 25년인 탄탄한 연기 내공의 소유자다. 연기파 배우의 산실이라 불리는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1998년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영화 <성철>로 데뷔 했던 그. 장밋빛 미래만이 가득할 것 같았지만 이후 동기들 하나둘 이름을 알리고 자 리 잡을 때 그는 20년 가까이 단역과 연극 무대를 전전해야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 기를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형은 연출로도 대학로에서 굉장히 유명했어요. 배우가 극본을 써서 연출을 하고 그게 대박이 난 그런 상황은 거의 없거든요 대학로에서. 형은 연출력이 있기 때문에 연기를 할 때도 극에 대한 맥락을 정확히 짚어요.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요. 이 형은 ‘연기도 잘하는데 그런 재능도 있구나’ 그거 쉽지가 않거든요. - 배우 정상훈 int -
    10년 동안 20여만명이 넘는 관객을 웃기고 울린 연극계의 스테디셀러 <광수 생각> 은 김민교가 처음으로 연출과 각본을 맡았던 작품이다. 이후 그는 본인의 창작극 < 발칙한 로맨스>까지 흥행시키며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 극본까지 다 되는 대학로의 전설이 됐다. 하지만 이후 바빠진 탓에 잠시 무대를 떠나있었던 김민교. 그 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다시 섰다! 밀려드는 스케줄 마다하고 그가 연극에 올인하 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름 석자 아는 이 없던 시절부터 자기를 불러주고 인정해줬 던 무대. 본인이 받았던 기회를 후배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대학로 에 다시 돌아왔다. 개그맨 보다 웃긴 사람에서 연기파 배우로 그리고 이젠 카리스마 넘치는 작가이자 연출가로 우리 앞에서 선 배우 김민교. 그의 이유 있는 도전을 <사 람이 좋다>에서 그려본다.
    저는 만약에 집이 그대로 잘 살고 그랬으면 지금만큼 연기 못 했을 것 같아요. 인간 김민교에게는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니 배우 김민교로서는 굴곡이 있는 삶을 살아볼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 김민교 int -

    272회 2018-05-08

    웃겨야 산다! 개그맨 박성호 ■개그맨 박성호, 장모님의 반대를 뚫고 11세 연하 미모의 부인과 결혼한 사연
    “아버님이 오랫동안 병환에 계셔서 큰 어려움을 겪었죠. 스스로 감당했을 마음의 무게를 제가 덜어주고 싶어서 결혼을 결심했어요“ - 아내 이지영 인터뷰 中
    개그맨 박성호(46세)는 2003년 한 대학 축제에서 이제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11세 연하의 부인 이지영씨를 만났다. 박성호가 곰인형을 선물하며 적극적으로 구애 하며 결혼을 꿈꿨지만, 나이차와 직업 때문에 장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박성호는 그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결혼에 임하는 각오를 쓴 각서를 작성해 장모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이후 2006년, 박성호는 당시 불과 23세였던 아내 이지영(35세)과 결 혼해 가정을 꾸렸다. 이지영씨가 결혼을 결심한 건 다름 아닌 그의 책임감이었다. 박 성호는 개그맨이 되고 방송은 물론 지방 행사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8년 동 안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홀로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 지영씨는 그 모 든 것이 믿음직스러워 어린 나이에도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부부가 결혼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은 지금, 여전히 아내가 예쁘다는 박성호의 눈빛에선 꿀이 떨어 진다. 아내의 생일 때마다 늘 꽃과 편지를 준비하는 로맨티스트 박성호! 편지에선 ‘그 누구보다도 많이 웃는 아내가 되길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해요 여봉♡’과 같은 아내를 향한 그의 마음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아빠를 능가하는 끼를 자랑하는 아들 정빈이(10세)와 뽀뽀를 부르는 귀염둥이 딸 서 연(5세)! 그간 방송에서 잘 소개되지 않았던 개그맨 박성호 가족이 함께 하는 사랑 가득한 일상이 공개된다.
    ■개그맨이 낯을 가리고 무대 공포도 있다? 박성호의 인기 개그맨이 된 비법
    “낯가림이 심해요.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못해요. 아직까지 무대 공포증도 있는데 극복하려고 노력해요. 저도 어떻게 개그맨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 개그맨 박성호 인터뷰 中
    데뷔 21년차 개그맨 박성호, 어릴 때 그의 꿈은 줄곧 개그맨이었다. 당시 유머 1번지 등 각종 코미디프로그램을 녹화해 테이프를 수없이 돌려보며 캐릭터를 분석했을 정 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원양어선 선원이었기에, 어린 시절 그의 곁에서 웃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준 것이 다름아닌 코미디였던 것. 코미디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하 는 그의 노력은 개그맨이 된 후에도 계속됐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적어놓은 노 트가 서랍장 가득 쌓여 있을 정도다. 사실 그는 개그맨이 되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심한 낯가림과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에 무대 울렁증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지 금도 코미디 프로가 아닌 토크쇼에 나가면 얼어붙어 말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최고의 개그맨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분장?! 분장을 하면 다른 사람 인양 180도 달라지는 박성호! 여기에 남다른 연기력이 더해져 명실공이 ‘분장개그의 끝판왕’이라 불린다. 갸루상, 앵그리버드 등의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전성기 를 달릴 수 있었다. 사람들을 웃길 때 가장 행복하다는 천생 개그맨 박성호, 그의 웃 음 철학을 전한다.
    ■가자, 미국 무대로! ‘박성호와 쇼그맨’ 해외 진출하다!
    ‘언제까지 개그를 할 수 있을까?’, 박성호가 개그맨으로서 가진 난제였다. 치고 올라 오는 후배들에 46세 그가 무대에 설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좁아졌기 때문이다. 공개코 미디를 떠나 그가 선택한 길은? 후배 개그맨 김재욱, 김원효, 정범균, 이종훈과 함께 ‘쇼하는 개그맨’(이하 쇼그맨)을 결성했다. 이들은 공개 코미디 프로를 통해 저력을 쌓아온 실력파들이다. 개그뿐만 아닌 마술 등의 요소를 섞어 새로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쇼그맨은 개그맨으로서 처음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재외 국민들 을 대상으로 미국 아틀란타, 달라스, LA, 뉴욕, 호주 시드니 등지에서 뜨거운 반응 을 얻었다. 하지만 공연 전날까지 예매율이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다는데.. 그 난 관을 해쳐나간 비법은? 맨땅의 헤딩! 멤버들이 직접 발로 뛰며 홍보전에 나섰다. 자 신들을 웃겨보라는 자칫 무례할 수 있는 워싱턴 교민들의 요청에도 개인기를 보여주 며 교민들을 웃기며 공연 만석에 다다르는 결과를 얻었다. 이민사회의 현실이 녹록 치 않아 웃을 일이 없었다는 교민들은 공연 후 쇼그맨 멤버들에게 이민을 온 뒤 제 일 많이 웃은 날 같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는 박성호와 쇼그맨과 함께 좌충우돌 미국 공연의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
    좋은 아빠로서, 개그맨으로서 고군분투하는 박성호! 그의 새로운 도전을 8일(화) 오 후 8시 55분 MBC <휴먼다큐-사람이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271회 2018-05-01

    아버지의 무게 뽀빠이 이상용! ■ ‘뽀빠이’ 이상용 ‘올리브’ 같은 아내와의 운명적인 만남! 가족을 위해 피땀 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아버지 이상용!
    1970년대 어린이들의 우상, 80년대 군인들의 맏형으로 큰사랑을 받았던 이상용! 뽀 빠이’를 닮은 그는 ‘올리브’같이 키 크고 늘씬한 아내 윤혜영씨를 고향 누나의 집에 서 우연히 만났다. 놓칠 수 없단 일념으로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결혼식을 올린 이상 용. 하지만 결혼 후 외판원 생활을 하며 생계를 꾸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청량 리에서 동두천까지 걸어 다니며 물건을 팔았지만 좀처럼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른 살에 외판원을 그만두고 무작정 방송을 해야겠단 일념으로 MBC를 찾아왔다. 방송국 청소를 자청하며 얼굴을 알린 이상용. 각고의 노력 끝에 1973년 ‘유쾌한 청백전’의 출연 기회를 잡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로 방송에 성공적으 로 데뷔했다. 그가 이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단돈 2만 원의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가난을 자식들에게는 대물림 할 수 없단 생각으로 이상용은 일에만 전념했다. 방송에 데뷔한 후 승승장구하던 이 상용은 1989년 ‘우정의 무대’ 진행을 맡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아버지가 많은 돈을 주고 가셨으면 지금의 저는 없어요. 제가 열심히 한 것은, 내 세대에서 가난과 돈 없는 것을 끝내야 되겠다. 우리 애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거든요” - 이상용 인터뷰 中
    자식들이 크는 모습을 볼 새도 없이 바빴던 이상용은 75세가 된 이제야 비로소 자식 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가족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아버지 이상용 의 모습은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볼 수 있다.
    ■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심장병 돕기 횡령 사건! 이상용 인생 최대 시련을 겪다!
    승승장구하던 이상용에게 1996년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다. 25년 넘게 직접 발로 뛰며 성금을 모아 심장병 어린이들을 도왔던 그가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보도가 난 것이다. 결국 사건은 3개월 만에 혐의점을 찾을 수 없어 불기소 처분되며 무혐의로 밝혀졌지 만 그에 대한 기사는 신문에 단신으로 보도될 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억울 함과 분통함에 이상용은 지금까지도 품에 불기소 확인증을 지니고 다닌다. 당시 이상용의 도움을 받았던 심장병 어린이 가족은 생명의 은인인 그와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낸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심장병 가족들과 이상용. 그는 자신보 다 훨씬 작았던 아이들이 어느 새 스물여덟이 어엿한 청년으로 자랐다. 이상용의 심 장병 성금 횡령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아이들의 아버지들은 말도 안 되는 보도에 방 송국까지 찾아갔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횡령한 게 없는데 그날부터 꼼짝을 못했죠. 바깥에도 못 나가고 우정의 무대는 그날 자동적으로 없어지고 우리 가족들은 어떡해. 벼락 맞은 거죠.” - 이상용 인터뷰 中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이 고통 받았어요. 방송기자가 정말 나쁘게 썼더라고요. 가면 쓰고 한 것 같이 썼어요. 그런데 나중에 무혐의라고 밝혀졌는데도 그에 대한 것은 신문에 안 내주더라고요.” - 아내 윤혜영 인터뷰 中
    “중국에 있던 저희를 선생님이 비행기 표까지 다 보내주시면서 까지 지원해주셨는데 너무 억울한 보도가 나서 제가 방송국을 찾아갔지만, 방송국 대문도 못 들어갔어요.” - 심장병 어린이 아버지 장태용 인터뷰 中
    어떤 시련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다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이겨냈다는 이상용. 험난했던 시간들을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이상용의 긍정 에너지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보자.
    ■ 미국 버스 관광 가이드부터 한국 비닐하우스 일까지... 이제는 강연자로 제2 의 인생을 사는 뽀빠이 이상용!
    사건 이후 방송재개가 힘들어진 이상용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단돈 42만원을 들 고 다음해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2년 동안 버스 관광 가이드를 하며 하루 14시간 씩 버스를 탔던 이상용. 가이드로 번 돈을 단 1달러도 쓰지 않고 모아서 가족 들 곁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로인해 가족들 모르게 비닐하우스에서 모종을 심는 일까지 하며 이상용은 하루 25000원을 벌었다. 10년 가까이 방송 복귀가 쉽지 않았던 그는 체면을 내려놓고 온 갖 궂은일을 해냈다. 그렇게 버틴 끝에 현재 이상용은 강연자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 다. 비록 이제는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지만 75세의 나이에도 자신 을 찾아주는 곳이 있어 늘 행복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다고 하는 이상용.
    “저는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노력하자.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서 이렇게 TV에 깜냥도 안 되는 내가 나올 수 있었고 이 나이까지 바쁜 거예요. 그래서 노력을 계속 하는 거예요.” - 이상용 인터뷰 中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며 풍파를 겪은 이상용. 가족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 와 고통의 시간을 겪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제는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살 고 싶다는 이상용의 인생 이야기는 5월 1일 화요일 오후 8시 55분 <휴먼다큐-사람 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270회 2018-04-24

    다시 봄날, 배동성·전진주 █ ‘꽃중년’ 개그맨 배동성과 ‘천생 여자’ 요리연구가 전진주의 재혼 스토 리
    개그맨, 가수, 연기자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해오며 많은 사랑을 받아온 방송인 배동성. MBC ‘기분좋은날’이란 프로그램에서 만나, 작년 8월 요리연구가 전진주와 낌짝 결혼 발표를 했다.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즐기며 제2의 인생 황금기를 누리고 있지만, 이러한 행복을 맞기까지 많은 우여곡절 또한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연예 인 배동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마음의 결정을 하기 어려웠다는 전진주. 게다가 두 사 람 모두 한 번의 결혼 실패로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우선 앞섰다.
    “제 친구가 ‘여행을 가 봐야 해. 여행을 가서 남자를 지켜봐야 (진짜) 성격 다 나온다. 여행 길수록 좋아’라고 이야기 해주는 거예요. 여행 갔다 와서 결혼을 최종적으로 결정해보래요. 정말 마지막 관문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 전진주 인터뷰 中
    서로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믿음, 그리고 이들을 믿고 지지해주었던 가족의 응원 으로 다시금 새 출발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부부. 이제껏 단 한 번의 싸움도 한 적이 없는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주변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 듯 방송프로그램, 홈쇼핑, 지방 행사까지 많은 일들을 함께 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 고 있는 배동성·전진주 부부. 이들의 새롭게 써내려가는 재혼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휴먼다큐-사람이좋다>를 통해 만나본다.
    █ 새롭게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아프지만 경이로운 일!
    배동성의 생일을 맞아 모처럼 서울로 올라오신 홀어머니. 전진주는 그런 시어머니 를 마치 친정엄마 대하듯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살갑게 맞이한다, 재혼으로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된 것이 그 무엇보다 기뻤다는 그녀. 전진주는 5세 때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어머니 역시 2006년, 암으로 돌아가신 까닭에 그녀에게 시부모님 특히 시아 버지가 생긴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창 신혼의 즐거움을 만끽하 던 작년 12월, 배동성의 아버지는 암으로 가족의 곁을 떠났다. 아들로서 생전에 더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는 배동성. 그가 전진주에게 들었던 가장 고마웠던 말은, 다름아닌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고 한다.
    “우리 부인한테 제일 고마운 게 딱 하나 있어요. 오빠, 아버지 등 밀어드리고 오라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등 한 번 밀어주라고.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등을 밀어드렸어요. 엄청 좋아하시는 거예요.” - 배동성 인터뷰 中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 연탄 배달로 4남매를 키우며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늘 떳 떳하셨던 배동성의 아버지. 그에게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존경하고 의지할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이었다. 이제 배동성은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처럼, 아이들 앞 에 당당하고 멋진 아버지로 남기 위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누구보다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 50대 초반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다!
    23세 딸 결혼식에서 DJ로 변신한 배동성의 포복절도할 무대 배동성의 하나 뿐인 딸 수진이 지난 14일, 뮤지컬 배우 임현준과 결혼식을 올렸다. 딸 수진의 나이 불과 23살, 결혼하기에 아직 이른 나이다. 자신의 눈에는 아기 같기 만 한 딸이 결혼한다는 것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는 배동성. 게다가 50대 초반에 머지않아 태어나게 될 손주로 인해 ‘할아버지’로 불려야 한다는 사실이 어색하기만 하다. 전진주 역시, 어린 나이에 어린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책임지겠다고 나선 딸 수진, 임현준 부부가 대견하기만 한데... 배 아파 낳은 딸이 아니기에 남모를 걱정 또 한 많았다. 수진의 친어머니가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다면 자연히 그 곁을 함께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홀로 마음의 준비를 한 적도 있었다.
    “수진이 (친)엄마도 내 딸의 결혼식을 얼마나 보고 싶겠어요. 내가 정말 어디를 앉아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먼저 가서 물어봤어요. ‘수진아 혹시 엄마 오실 수 있니?’ 정말 (친)엄마로서 그 자리에 앉고 싶다는 생각을 저라도 할 수 있거든요. 제가 양보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수진이에게 친엄마 결혼식 참석 여부를) 제일 먼저 물었어요.” - 전진주 인터뷰 中
    배동성, 전진주 부부는 재혼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참 많은 일을 겪고 있다. 재혼한 후 몇 개월되지 않아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나 서 몇 개월 지나지 않아 23세 어린 딸이 결혼하게 돼 50대 초반에 할아버지, 할머니 가 되게 됐다. 재혼이란 주변에서 도움이 많아도 쉽지 않은 길이다. 배동성, 전진주 부부도 꽃길처 럼 보일 수 있지만 녹록치 않은 힘든 여정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서 로 의지하며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배동성·전진주 부부의 다시 피는 봄날, 다 시 시작되는 인생 여정을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