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내

다시보기를 보며 방송상품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자세히보기

단축키 안내 자막안내

홈페이지로 이동
바로보기 다운로드 무료보기
    바로보기 다운로드 무료보기

    다른 회차 보기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28회 2017-06-25

    1. 자우림 김윤아의 하하하쏭
    2. 송민형의 내일은 스타
    ■ 독보적인 무대 위의 카리스마, 김윤아
    단 한명의 멤버 교체 없이 20년 째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록밴드 자우림. 영화 ost로 사용되었던 이후 <매직카펫라이드> <일탈> <하하하쏭> 등 발표 하는 앨범마다 큰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 잡았다. 사실 밴 드가 20년 이라는 긴 시간동안 사랑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남성 보컬 이 아닌 여성 보컬을 내세워 20년을 지켜온 건 유례없는 일이다. 특히나 여자는 결 혼, 출산, 육아로 인해 쉽지 않은 게 현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으며 왕성 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윤아. 그녀는 밴드 활동뿐만 아니라 솔로 앨범으로도 큰 사랑 을 받고 있다. <나는 가수다> <듀엣 가요제> 등 무대에서 보이는 짧은 시간은 김윤아의 매력을 담 아내기에는 부족한 시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김윤아의 일상을 <사람이 좋다>에서 따라가 본다.
    “밴드의 기본은 힘이거든요. 아무래도 힘은 남성 전유물이었잖아요. 옛날에는 밴드가 다 남자였는데 여성이 대표로 지금까지 팀을 이끌고 있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밴드 내에서 여성 리더의 성공 가능성과 무게를 확실하게 알려준 인물이 김윤아죠” - 음악평론가 임진모 INT-
    ■ 가수 김윤아의 또 다른 이름, 워킹 맘
    김윤아는 무대 위에서는 자우림의 뮤즈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11살 민재의 엄마이 다. <사람이 좋다> 제작진이 본 김윤아는 학교에 가는 아들을 챙기고, 가족들을 위 해 음식을 하는 여느 엄마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출, 퇴근을 하는 직장 워킹 맘보다는 수월하게 일 하는 거죠” 라고 말하는 김윤아. 하지만 음악가로서 그녀에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었다. 출산 후 신체적 변화로 인해 관절이 아파 기타를 쥐기가 힘들고, 오랜 시간 건반을 연주하지 못하는 건 당연, 수면 사이클이 달라지며 항상 해 오던 음악작업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도 아이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그녀는 출산 1년 만에 가수 활동을 재개하며 슈퍼맘의 대열에 합류한다. 김윤아가 음악과 육아를 병행 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바로 VJ 출신 치과의사인 남 편 김형규였다. 한동안 방송 일을 떠났던 그는 알고 보니 치과와 가정에 매진하고 있 었다. 현재는 공석이 되어버린 아내의 매니저로 일을 하며 스케줄도 봐주는 그. 항상 아이 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부부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시간을 분배해 아이와 시간 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이상적인 부모이다.
    “엄마가 바빠도 서운하거나 외롭지 않아요. 그냥 대충 대충 하고 쉰다는 느낌이 안 들고 저를 위해주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모든 순간 엄마 아빠가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느껴요” - 아들 김민재 INT-
    이제는 대중적인 인기와 수익에 연연하지 않는 그녀. 자신의 음악 세계를 공감하는 고마운 팬들을 위해 음악을 하고 싶다는 김윤아다. 다음에 또 그녀가 어떤 노래로 어 떤 변신을 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게 무엇이 됐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녀는 현재 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위해 노력할 거라는 것. 무대 위 에서는 그 어떤 누구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의 여제, 무대 밖에서는 애교 만점 사랑스러운 엄마이자 아내로 바뀌는 그녀! 김윤아의 반전매력을 <사람이 좋다 >에서 만나본다.
    ■ 명품조연 ‘송민형’을 아시나요?
    명품드라마엔 필수 요건이 있다! 바로 명품 조연이 있어야 한다는 것. 아무리 훌륭 한 주연이 있어도 조연이 없으면 드라마는 빛날 수 없다. 여기 개성 있는 연기로 다양한 역할을 맡아 명품 조연으로 자리 잡은 배우가 있다. 10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하며 적은 분량이지만 씬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배우 송민형. 그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 연기는 내 운명
    사실 송민형은 1960년대부터 연기를 해 온 아역 1세대, 53년 차 경력의 베테랑 연기 자이다. 초혼에 실패를 하고 싱글대디가 된 그가 아들과 미국으로 떠나게 되며 성인 연기자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기회가 찾아온 다. LA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시트콤 에 우연히 출연을 하게 된 것, 비 록 단역이었지만 가슴 깊숙이 접어둬야 했던 연기의 꿈을 다시 한 번 이룰 수 있는 기회에 송민형은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한다.
    마흔이 넘어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했던 송민형은 직접 발로 뛰며 배역을 따내고, 아 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작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차츰 브라운관에 얼 굴을 내밀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그. 기대 이상으로 해 낸 결과 처음 몇 회만 출연하 기로 했던 <주몽>에서는 82회 중 81회에 출연, <각시탈>에서는 28회 중 26회에 출 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15시즌이 방영된 막돼먹은 영애 씨에 출연하면 서 배우로써 얻기 힘들다는 ‘영애 아빠’ 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송민형. 그는 비록 분 량이 적은 조연이지만 대사 하나, 씬 하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개성 있게 살려내는 명품 배우다.
    “별이 좀 작아서 그렇지 지금도 반짝 반짝 빛나는 스타에요. 제가 제일 하고 싶은 게 연기거든요. 작은 역이든 큰 역이든 연기를 하고 있는 자체가 행복이고 생동감을 줍니다. - 송민형 INT-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
    미국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난 송민형, 미국 생활을 포기하고 연기를 하기 위해 한국 으로 돌아온 그를 따라 아내도 한국행을 택했다. 긴 무명 생활을 하던 송민형은 안정 적인 수익을 위해 식당을 크게 열지만 실패를 하게 된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빚 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그는 자살을 시도, 마지막 그의 마음을 돌려놓은 건 아내였다. 죽을 용기로 못할게 없다는 각오로 빚을 갚은 부부, 하지만 새로운 인생 을 시작하려는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온다. 2006년 처음 간암 선고를 받은 이 후, 2012년, 2014년에 걸쳐 세 번의 간암 선고를 받게 된 것. 드라마보다 더 드라 마틱한, 비극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인생이지만 연기를 향한 그의 열정은 그 무엇 도 꺽을 수가 없었다. 드라마 속에서는 조연이지만 드라마 밖에서는 주연인 송민형. 해피엔딩을 꿈꾸는 송민형의 인생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들어본다.
    “복 중에 제일 좋은 복이 말복입니다. 왕년에 아무리 잘 살아도 말년 와서 잘 못 살면 그건 꽝이에요. 그런데 저는 중년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잖아요. 이제 저한테 좋은 복을 갖다 주신 거예요. 그렇게 믿고 삽니다. ” - 송민형 INT-

    227회 2017-06-18

    개그맨 이상호 이상민, 쌍둥이가 간다! ▶ 친구? 라이벌? 쌍둥이 개그맨 이상호, 이상민의 37년 ‘한 이불 스토리’
    37년째 한 이불 덮는 사이? 눈빛만 봐도 텔레파시가 통하는 두 남자! 외모부터 목소 리까지, 마치 거울처럼 닮은 대한민국 유일무이 쌍둥이 개그맨, 이상호 이상민! 어 린 시절부터 개그맨이라는 같은 꿈을 키워왔던 쌍둥이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 일푼으로 함께 상경했다. 고시원을 전전하며 무명생활을 보낸 그들은 2006년 함께 공채에 합격했고, 어느덧 14년차 개그 동반자가 되었다. 태권도, 검도 등 둘이 합쳐 22단 소유자인 쌍둥이는 개그 콘서트의 ‘닭치고’ ‘꺾기도’ 등 인기코너에서 그들만의 ‘쌍둥이 표’ 몸 개그로 웃음을 선사하며 인기를 얻었다.
    TV 개그 코너 속 쌍둥이는 합이 척척, 눈빛만 봐도 통하지만, 현실 속 쌍둥이는 서로 에게 일생일대의 라이벌! 집안일을 하다가도 티격태격 싸우는 것은 물론, 똑같은 얼 굴을 두고 “누가 더 잘생겼나”를 경쟁하기 일쑤. 무뚝뚝한 형과 섬세한 동생, 겉모습 은 같지만 속은 너무나 다른 쌍둥이!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평생의 라이벌인 쌍둥이의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37년을 같이 살면서 작은 일 하나에도 정말 많이 싸웠어요. 싸우고 나서 “다신 너 안 봐!” 하고 제가 집에 가면 조금 이따가 동생도 집으로 오는 거예요. 다신 안 볼 듯이 싸워 놓고, 결국 한 이불 덮고 자는 거죠. - 형 이상호 INT 中 ▶ 62세, 최고령 신인개그맨을 꿈꾸는 아버지까지, ‘개그 DNA' 패밀리!
    쫙 달라붙는 청바지에 빨간 양말, 새하얀 재킷을 걸친 백발의 말총머리 신사! 올해 62세가 된 쌍둥이 아버지 이운우 씨는 대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기 스타다. 형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는 안하고 오락부장만 도맡아 해도, 그런 아들들을 응원하 고 지지해준 유별난 아버지였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전통시 장부터 노인회관까지 온 동네 자랑을 하는 아버지는 쌍둥이의 든든한 매니저이기도 하다. 방송을 쉬고 있는 쌍둥이를 위해 앞장서서 홍보를 도맡고, 대전 지역 행사 스 케줄까지 잡아주고 있는 것.
    아버지의 유별난 응원에는 남모를 사연이 있다. 사실 아버지의 꿈도 개그맨이었던 것. 가난했던 집안 사정 때문에 중학교도 가지 못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아버지는 자신과 똑 닮은 아들들이 개그맨이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두 아들을 모두 번듯하게 키워놨으니, 이제 가장으로서의 무게는 잠시 내려놓고 접었던 꿈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는 아버지!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아들 몰래 매년 공채 개그맨 시 험에도 도전했다. 줄줄이 낙방했지만, 여전히 두 아들의 후배가 되길 꿈꾸는 ‘늦깎 이 개그꿈나무’ 이운우 씨. 두 아들을 자랑스러운 개그맨으로 키워낸 아버지의 가슴 찡하고 따뜻한 스토리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저희 형제의 끼, 개그 감, 순발력, 애드리브, 이런 건 모두 아빠를 닮았어요.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저와 동생에게 성대모사, 장기 등을 계속 가르쳐 주셨죠. 어떻게 보면 아버지가 저희를 개그맨으로 만들어 내신 거예요. - 형 이상호 INT
    ▶ ‘당신 없인 못 살아’ 영원한 동반자! ‘쌍둥이’의 두 번째 데뷔 도전기!
    지난 해, 개그콘서트 데뷔 10년을 맞은 쌍둥이 개그맨. 그동안 ‘씁쓸한 인생’ ‘닭치 고’ 등 여러 코너에서 활약을 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어느 덧 선배보다 후배들이 많아진 상황. 최고참으로서 더 재미있고 좋은 아이디어를 짜 야 한다는 부담감에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결국 그들은 재도약을 위해 잠시 공 개코미디 방송 하차를 선택했다. 1년간 방송을 쉬면서 많은 도전을 했다. 야심차게 어린이 개그 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기도 했다. 공연 홍보를 위해 직접 아파트 를 돌며 다리가 부르틀 정도로 전단지도 뿌렸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개그콘서 트>라는 집을 떠난 쌍둥이에게 현실은 만만치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이 약해질까 힘 든 내색조차 하지 않았던 쌍둥이 형제. 급기야 동생에게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까지 생긴 걸 알게 된 형은 마음이 무겁다.
    최근 쌍둥이는 잇단 실패를 딛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무일푼이었지만 열정만 큼은 넘쳤던 초심으로 돌아가 트로트댄스 장르에 도전한 것! 개그맨으로서의 넘치 는 흥을 ‘외로워’라는 트로트 곡에 담았다. 고달팠던 무명 시절을 함께 버텨 개그맨으 로 데뷔했을 때처럼, 서로에게 의지해 다시 함께 달리는 쌍둥이! 서로가 있어 외롭 지 않다는 쌍둥이의 ‘제2의 데뷔’ 도전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처음 개그맨 하자고 상경할 때, 동생한테 “야, 나만 믿고 따라와.” 이랬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 동생한테 미래가 없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제가 제공한 거잖아요. 그냥 평범하게 직장 다녔으면 안 해도 됐을 고생을 하는 것 같아서 형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크죠. - 형 이상호 INT
    "혼자였으면 여기까지도 못 왔을 거예요. 형은 자꾸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는데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거예요. 여태 같이 왔는데, 앞으로도 같이 가야지 어떡하겠어요. 힘들어도 우리는 쌍둥이니까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둘이 같이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웃기는 쌍둥이 개그맨으로 남고 싶어요. - 동생 이상민 INT

    226회 2017-06-11

    끝까지 간다, 성진우 ■ 트로트계의 8년차 중고 신인. 포기하지 않고 돌아온 성진우!
    “포기하지마” 노래 하나로 95년 가요계 신인상을 싹쓸이했던 꽃미남 가수 성진우. 그 는 댄스가수 타이틀을 버리고 트로트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8년이 됐다. 자신 의 노래는 물론 다른 트로트가수의 메들리까지 부르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성진 우! 그는 밤업소는 기본, 주민센터 행사에 주부노래교실까지, 무대의 크기에 상관없 이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노래하는 행사 전문, 업소 전문 트로트 가수다.
    10년의 공백기와 방황 끝에 선택한 트로트 가수 생활도 어느덧 8년. 이렇다 할 히트 곡 하나 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신인 아닌 신인으로 살고 있는 그는 또 한 번의 전성 기를 꿈꾸며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보컬트레이닝에서 기초 트로트 창법을 다시 배 우고, 판소리 명인에게 창법 개인 교습도 받고, 행사와 업소 무대를 위한 전용 반짝 이 의상까지 새로 맞추는 8년차 중고 신인 성진우! 그가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들 을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야 제대로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초심으로 돌 아가 노래열정을 불태우는 열혈가수 성진우의 고군분투를 <사람이 좋다>가 함께한 다.
    “정말 그냥 바닥에서부터 다시 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고 (예전엔) 이렇게 하지 못했죠. 이렇게 살았다면 지금 히트곡이 있었겠죠, 트로트로 봤을 때. 어떻게 보면, 10년 이상을 그렇게 못했기 때문에 그걸 몰아서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할 일이 더 많고 더 해야할 게 많고 더 중요한 게 많고. 그러다보니 더 치열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제가 지금 상황이.” - 성진우 int -
    ■ 내일 모레 쉰, 더 늦기 전에 말하고 싶었던 결혼 이야기
    마흔여덟 노총각으로 알려진 그가 실은 유부남이라는 갑작스런 고백으로 대중 앞에 섰다. 왕년의 스타의 뒤늦은 결혼 고백에 큰 이슈거리가 될 리 만무한데도, 그는 더 늦기 전에 이 고백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며 카메라 앞에 섰다. 4년 전 혼인신고 를 한 성진우 부부는 왜 결혼식도, 그 흔한 결혼사진도 한 장 찍지 못하고 결혼생활 을 시작했을까? 성진우가 가수로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만난 아내는 누구보다 든든 한 응원군으로 그의 곁에 있었고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식을 계획할 무렵 아이를 가졌지만 임신 11주 만에 유산이 된 아내. 몸을 추스르고 결혼식 이야기가 오 갈 즈음 아내의 소장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유산의 상처도 아물기 전에 대수술을 받 고 완치판정까지 5년을 기다려야한다는 결과를 받아든 성진우. 병상에 누워있는 아 내를 바라보며 그가 선택한 것은 혼인신고였다. 아픈 아내의 손을 잡고 보살피는 사 이 흘러버린 시간이 4년. 그동안 기회가 마땅치 않아 세상에 알리지 못했다. 본의 아 니게 총각행세를 하게 돼 늘 아내에게 미안했다고 말하는 성진우. 이제는 아내의 남 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데...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용기 를 낸 진짜 사나이, 성진우의 결혼 이야기와 그의 아내를 <사람이 좋다>에서 최초공 개한다.
    “저는 인기가수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근데 아내를 지켜야 되고 제 가정이잖아요. 가정이 있고 이제는 제가 살아야 될 이유도 생기고 목적도 있고 뭔가 그런 게 생기니까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얘기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살기 위해서, 정말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려면 누가 궁금해 하든 궁금해 하지 않든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성진우 int -
    ■ 아직은 포기할 수 없는 가수인생, 오늘도 달린다!
    영원할 줄 알았던 인기는 금세 사라지고 뒤이어 소속사와의 결별, 길었던 공백기, 사 업실패, 트로트로 전향한 후에도 히트곡 하나 없이 야간 업소와 행사장을 전전해야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버텨낸 힘은 댄스가수가 아닌 트로트가수로 다시 대 중의 사랑을 받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매니저 대신 반짝이 무대의상 픽업을 가 고, 좋은 곡을 받기 위해서 여기저기 작곡가 사무실을 수없이 찾아가 신곡을 부탁하 는 그는 언젠가는 자신에게 맞는 트로트 히트곡을 만날 날이 올거라 믿고 있다. 언 제 나올지 모르는 앨범이지만 이 모든 과정이 새롭고 즐거운 성진우. 아직 트로트계 에서는 변변한 히트곡 하나 없지만 자신의 한방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 다. 아직도 터지지 않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그의 한방!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라 믿 으며 늘 최선을 다 할 거라는 마흔여덟 살의 트로트 중고 신인 성진우! 그는 과연 ‘포 기하지마’를 뛰어넘는 히트곡을 만날 수 있을까?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가수 성진 우의 오늘을 만나본다.
    “가정이 있잖아요, 이제. 내가 지켜야 될 사람도 있고 목표가 있잖아요. 이유도 있고. 근데 제가 약해지거나 흔들리면 안 되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거고 제가 이루고 있는 제 가정, 제 가족, 제가 꼭 끝까지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게 해줄 거예요.” - 성진우 int -

    225회 2017-06-04

    못 말리는 의리남, 정찬우 – 정찬우 편 █ 독한 개그의 일인자 정찬우! 그의 반전 매력?
    올해로 데뷔 23년 차 개그맨 정찬우! 특유의 센 개그와 돌직구 화법으로 팬들의 인기 를 끌고 있지만 반면 많은 오해를 받기도 한다. 사실 방송에 비치는 모습과 달리 실 제 그는 전혀 다른 반전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알고 보면 가슴 뜨거운 남자, 정찬 우! 마음 넓고 사람 좋아하던 아버지를 꼭 닮은 정찬우는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혼자 계신 어머니를 챙기고 안부 전화 역시 365일 빼 놓지 않는다. 그뿐이랴, 든든한 개그맨 선배로서 많은 후배들을 돕는다. 점점 설 무 대가 사라지는 개그맨 후배들을 위해 일거리를 함께 알아보는 것은 물론 어려운 지 인들이나 선후배를 보면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준다. 때로는 버거울 때 도 있지만 오지랖이 자신의 천성이라고 말하는 정찬우.
    “ 방송보다 실제 정찬우가 훨씬 멋있어요. 정말 멋지게 살고 남을 위해서 희생하려고 하고 남의 짐을 다 짊어지려고 하고 그래서 피곤할 때도 있어요. 그냥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자기랑 관련되어 있어서 그 사람이 뭔가 문제가 있으면 그 짐을 자기가 짊어지고 막 해결해주려고 그래요. ” - 이훈 int
    “ 저에게 정찬우란.. 우리 아버지 바로 밑에? 모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고 앞으로도 혹시 그런 일이 생기게 되면 언제 어디서든지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형. 조건이 없어요. 동생을 위해 서면 뭐든지 다 해주는 그런 사람이에요. ” - 위양호 int
    █ 개그 공연의 신화, 컬투 정찬우의 思父曲
    1994년 MBC 25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정찬우! 그는 컬투 콘서트로 매년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TV, 라디오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휩쓸고 있다. 지금은 대한민국 개그 공연의 신화가 된 그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던 아버지.. 가까스로 6세 수준의 지능으로 깨어나셨지만, 찬우 씨가 군 입대한 뒤 어느 봄날 아버지는 차디찬 길거리에서 쓸쓸히 아사하시고 만다.. 그 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생활고로 인해 된장 공장, 막노동, 이삿짐, 길거리 옷 장 사, 방송국 엑스트라, 레크리에이션 강사 등 많은 일을 거친 뒤 개그맨으로 데뷔했 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배역을 찾지 못해 단역을 전전했다고. 팀을 이뤄 개그를 한 다는 것이 당시로서도 생소했기 때문. 그러나 정찬우 사전에 좌절은 없다! 발 빠르 게 대학로 소극장에서 개그 공연을 시도했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행보에 대다수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으나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 그때 우리가 개그콘서트라는 이름을 처음 썼어요, 대한민국에서. 확 하더니, 그다음부터 매진된 거예요. 계속 2주일 내내. 사람들이 개그와 콘서트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기대감이 있었나 봐요. 왜냐면 그 당시 대학로에는 다 연극만 하고 그러니까 이건 뭐지? 그런 것 같아. 그런데 보니까 잘 하거든. 재밌거든, 천재들이거든요. “ - 정찬우 int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꿋꿋이 이겨 내온 그였지만 개그맨으로 성공한 모 습을 못 보여드려 가슴 아프다는데... 그래서 전부터 계획해온 일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어버이 날 아버지를 위한 헌 정곡을 발표한 것! 아버지처럼 살고 싶은 마음 을 담아 부르는 그의 애절한 思父曲이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 아버지는 진짜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친구 같지만 무서웠던 아버지였어요. 주위 사람 다 잘 챙기는 사람이었고 정직하자 책임지자 참자를 늘 강조하셨던 분이고, 거짓말하면 되게 혼났어요. 그런데 솔직하게 얘기하면 용서해주셨어요, 내가 잘못을 했더라도 ... (그래서) 저는 정직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지켜가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자. “ - 정찬우 int
    █ 정찬우가 기부 전달자가 된 사연은?
    정찬우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만난 일반인 출연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움을 준다. 선뜻 전화번호를 건네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함 께 고민한다고. 또한 기부스, 기부 337 프로그램을 통해 기부를 전파하고 있다. 최근 에는 평창 올림픽 응원단장을 맡아서 도움을 보태고 있다. 나라에 큰 행사에 사람들 에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평창 올림픽 홍보라는 뜻 깊은 재능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고.
    “ 말을 툭툭 내뱉는 것처럼 보이고 귀차니즘이 많은 사람 같아 보이지만 정반대예요, 정찬우 씨는 일을 막 찾아다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주위에 힘들고 어렵고 다시 일어서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가만 놔주지 않아요, 다 도와주려고. 바로 행동으로 옮겨요. ” - 박지선 int
    “ 통 큰 기부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진짜 작은 것들을 몸소 하고 움직이는 분들이 어떻게 보면 더 통 큰 기부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움직이고 대중이 움직이는 마음이 생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좋은 재단을 하나 만들고 인생을 마무리하는 게 꿈이에요. “ - 정찬우 int
    지금 현재로서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부를 행하고 있지 만 그의 목표는 죽기 전 기부 재단을 하나 설립하는 것! 아버지가 지어주신 정찬우 이름 석 자를 부끄럽지 않게 남기고 싶다고. 작은 실천부터 행할 줄 아는 가슴 따뜻 한 남자, 정찬우의 일상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만나보자.

    224회 2017-05-28

    이파니, 가족愛 빠지다 ■ 인생은 칠전팔기, 좌절은 없다! 방송인 이파니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파니 씨. 열여섯 어린 나이에 그녀는 세상에 홀로 서는 법을 먼저 배웠다. 학교 등록금을 내지 못해 선생님 께 모진 말을 듣기 일쑤였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까지 당했지만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 전단지를 돌리고, 식당 서빙을 하며 남은 음식으로 배 를 채운 파니 씨. 그러던 중, 그녀에게 찾아온 기회! 상금 1천만 원이 걸린 모델 선발 대회였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참가 신청을 한 그녀. 모델 선발대회에 서 당당히 1위로 입상하며 ‘이파니’ 그녀의 이름 세 글자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파니 씨는 유명세를 얻음과 동시에 잊고 지내던 ‘딸’ 이라는 이름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는데... 바로 연락이 끊긴 어머니와 15년 만에 연락이 닿게 된 것! 떨어져 지 낸 시간만큼 원망은 깊었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시작한 파니 씨. 애틋 한 재회를 한 모녀는 최근 서로를 위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어릴 때부터 그냥 사는 게 다 싫고, 잘 곳 하나 없어서 떠돌아다니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돈 없고, 가난하고, 잘 데가 없던 것을 다 떠나서 너무 외로웠던 거... 그 외로움이 제일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 이파니 인터뷰 中
    제가 늘 파니 뒤에 있을 거니까 힘들고, 속상한 일 있으면 언제든 엄마한테 의지할 수 있게 그 동안 못 해줬던 것까지 다해서 힘이 되어 줄 거예요. 잘 자라줘서 대견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 내 새끼. - 이파니 어머니 주미애 인터뷰 中
    ■ 이파니 부부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
    결혼 6년차, 이파니 부부에게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시부모 님과의 관계다. 이혼의 아픔과 6살 아이까지 있는 파니 씨와의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 했던 성민 씨의 부모님. 하지만 둘이 함께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을 거 라며 그들은 결혼을 선택했다. 결혼 후 둘째 딸 이브를 낳고, 시부모님께 예쁜 손주 를 안겨줄 생각에 설렜던 이파니 부부. 하지만 돌아선 부모님의 마음을 돌리 기에 긴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벌어진 거리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성숙하게 행동하지 못해서 부모님 마음에 상처를 남긴 철없던 제 자신이 후회가 많이 돼요. 저도 두 아이의 부모로서 이제라도 부모님 마음도 헤아리고, 천천히 노력하면서 풀어가는 게 제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예요. - 이파니 남편 서성민 인터뷰 中
    명절에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남편을 볼 때면 모든 게 본인 때문인 것 같다는 파니 씨. 아직까지도 죄송스러운 마음에 문자로 틈틈이 시부모님에게 진심을 전하지 만, 아직까지 시부모님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없다. 하지만 언젠가 진심이 통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파니 씨의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함께 한다.
    예전에 시부모님 얘기를 방송에서 꺼냈을 때 시부모님은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을 텐데... 제가 너무 급했던 거죠. 지금은 저도 마음을 많이 내려놓고 애들 열심히 키우고, 남편 내조하면서 시간을 두고 시부모님 마음이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해요. - 이파니 인터뷰 中
    ■ 그녀가 세상을 버틸 수 있는 힘! 그 이름, ‘가족’
    힘든 상황이 찾아와도 그녀를 일으켜 주는 힘! 바로 그녀의 첫째 아들 형빈이와 둘 째 딸 이브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형빈이에게 본인과 같은 이혼 자녀 의 아픔을 겪게 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파니 씨. 하지만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 며 파니 씨에게 먼저 용기를 심어줬다는 속 깊은 아들 형빈이! 파니 씨와 성민 씨의 결혼을 누구보다 응원하며, 오작교 역할을 해준 든든한 지원군이다. 어느덧 의젓하 게 자라 6살이 된 동생 이브를 돌보는 11살 형빈이의 모습을 볼 때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는 파니 씨. 가족을 위해 방송은 물론 모델, 의류 사업 그리고 최근에는 웹 툰 작가로도 숨 가쁘게 활동하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뛰어다니고 있다. 하 지만 가족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짊어지는 무게는 하나도 버겁지 않다는 그녀는 오 늘도 씩씩하게 집을 나선다. 영원한 내 편이 되어 줄 가족들이 있기에 거친 풍파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엄마 이파니의 모습을 <사람이 좋다>에서 따라가본 다.
    너무 힘들어서 삶의 끈을 놓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제가 중심을 잡고 견뎌낼 수 있게 했던 힘은 아이들, 그리고 남편이에요. 겁 많고 나약했던 제가 버티고, 기댈 수 있는 건 내 가족, 내 식구들 그 뿐이에요. - 이파니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