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내

다시보기를 보며 방송상품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자세히보기

단축키 안내 자막안내

홈페이지로 이동
바로보기 다운로드 무료보기
    바로보기 다운로드 무료보기

    다른 회차 보기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236회 2017-08-20

    내 인생, 미워도 다시 한 번, 이상아 ■ 꿈꾸는 아줌마! 아직 끝나지 않은 이상아의 인생후반전
    책받침 여신, 원조 국민 첫사랑 이상아! 서구적인 이목구비와 깜찍한 매력으로 드라 마, 영화. 500여 편의 CF에 출연했던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다. 영원할 것만 같았 던 이상아의 전성기는 26살 어린 나이에 선택한 결혼으로 멈춰버리고 말았는데... 사 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세 번 이혼한 여자라는 수식어까지 붙으며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던 그녀. 숱한 방황과 아픔 끝에 길었던 공백을 깨고 원조 하이틴 스타에서 아줌 마 연기자로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배우 이상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벽 홈쇼핑 생 방송 현장으로 출근하는가 하면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빈 다. 그녀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더욱 굳세게, 때로는 억척스러울 정도로 달리는 이유 는 바로 가족 때문이라는데... 40대 싱글맘인 그녀는 딸과 노모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아간다. 숱한 부침 속에서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이상아. 소문과 편견, 좌절을 딛고 씩씩하게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이상아의 오늘을 <사람 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 내가 실패를 했잖아요,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실패를 거듭해도 나는 아직 성공을 못했으니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모습으로 나도 한 번 살고싶다는 욕심은 아직 있죠. 앞으로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게 인생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하는거죠. 이제는 내가 만들어 나가야하는 미래가 있으니까... ” - 이상아 int -
    ■ 홀로서기 이상아, 이제는 가족으로 선다! 모녀 삼대의 독특한 동거
    연이은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마지막이길 바라며 버틴 세 번째 결혼마저 끝난 후 좋 지 않은 시선들과 소문에 견딜 수 없어 마음을 닫고 혼자가 됐던 시기, 그녀 곁에는 친정엄마와 어린 딸이 남았다. 이상아를 곁에서 지켜봐온 친정엄마와 딸 또한 그녀 와 마찬가지로 힘든 시간들을 함께 보내야 했는데...
    “ 가족이 있다 보니까 주변 사람이 상처 받는 게 의식되더라고요. 나 때문에, 나 하나 아팠으면 되는데 우리 식구들이 너무 많이 다쳤으니까 모든 일에 있어서 나 혼자 생각할게 아니라 우리 가족 생각해서 행동을 해야 되겠다 싶은 거죠. (딸이) 이제는 커서 다 아니까 엄마 때문에 안고가야 할 한이 있을 거고 나도 분명 한이 생겼고 맨날 울어도 그건 안 풀릴 것 같아요. “ - 이상아 int -
    거듭된 이혼 후 딸 서진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인 엄마 이상아.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딸 서진은 사춘기까지 겪고 있어 이미 벌어진 사이를 좁히기가 쉽지 않은데... 같 은 듯 다른 모녀 삼대의 동거는 매일 티격태격, 늘 일촉즉발의 연속이다. 어린 시절 아역배우 이상아의 매니저 역할을 했던 억척 엄마 박명숙씨(71)와, 엄마의 끼를 닮 아 예고에 진학했지만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 윤서진(18), 그리고 쉰을 바라보는 나 이에도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사춘기 딸과 매일 전쟁을 치르는 철없는 엄마 이상 아(46)까지. 하루에도 여러 번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는 세 모녀의 동거! 때로는 서로 에게 친구이자 남편, 아버지로 의지하며 지내는 모녀 삼대의 바람 잘날 없는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가족이라는 마음 하나는 똑같은 그들. 아직은 서툴지만 천천히 다가가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세 모녀의 진짜 이야기를 만나 본다.
    “ 초인종만 없을 뿐이에요. 한 공간에 각자의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도) 저는 그런 의리는 있어요. ‘우리 가족이 최고다’, 가족끼리 따뜻하고 정감 있게 알콩달콩, 여자들끼리의 어떤 애틋함 이런 건 없는데 저는 우리 식구들이 다치는 건 못봐요. (가족이) 어디서 상처 받고 오면 제가 가만 못 있어요. 제가 우리 가족에 대한 그 끈끈함이 있는 거 같아요. ” - 이상아 int -
    ■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 내 인생, 미워도 다시 한 번
    눈물로 얼룩졌던 과거만큼 여전히 힘든 날들의 연속이지만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게 이상아의 방식. 이제부터 인생은 하고 싶은 도전도 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살고 싶 다는 그녀다. 최근 새로운 드라마의 캐스팅 물망에 오른 이상아. 주연이 아닌 조연으 로, 예전 화려했던 이상아와는 정반대의 역할이지만 지금은 주어지는 역할 하나하나 가 다 소중하다. 새로운 캐릭터에 맞춰 헤어스타일도 바꿔보고 밤낮으로 대본연습에 도 몰두한다. 드라마에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인연으로 선배 이정길과 배우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연기 못하는 배우라는 편견을 깰 수 있을까? 드 라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그녀. 최근 새롭게 배우기 시작 한 수상스키와 패들보드. 보통 여자가 하기 어려운 운동까지 섭렵했다. 여자라서, 아 줌마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여자니까, 아줌마니까 해내고 싶다는 씩씩한 아줌마 이 상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멋지게 살아가는 이상아의 진짜 모습을 <사람 이 좋다>가 공개한다.
    “ 자의든 타의든 너무 쉬었어요. 사실 그냥 34년이 흘렀어요, 대표작도 없고. 그래서 쉰 시간이 억울해서라도 (앞으로는) 쉬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어요. 사는 동안 이제는 안 쉬려고요. 남은 시간은 진짜 쉬지 않고 일하는 게 제 소원이에요. 그래서 우리 서진이가 엄마인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 - 이상아 int -

    235회 2017-08-13

    돌아서 만난 행복 – 허수경 편 혼자 낳아 기른 딸이 벌써 11살, 두 번의 이혼 뒤에 만난 큰 나무 같은 남편 최초 공개! 그리고 한복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자 슬픔과 역경 속에서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방송인 허수경의 행복 이야기
    █ 어두웠던 그녀의 삶을 비춰준 단 하나의 별, 사랑하는 딸 은서!
    1989년 MBC 1기 공채 MC로 데뷔한 방송인 허수경! 싹싹하고 순발력 넘치는 진행으 로 주목받으면서 당대 최고의 MC로 인기를 누렸다. MBC TV와 라디오에서 5개 프 로그램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은 물론 최초로 남성 MC와 비견되는 능력을 지닌 여 성 MC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도중, 그녀가 돌연 방송에서 모습을 감추었는데... 두 번의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은 후 그녀는 2008년 혼자 몸으로 딸 은서(태명 별이) 를 낳게 된다. 그녀에게 은서는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고.
    “ 그 때 저는 살아야 하는 의미나 가치를 많이 생각했던 때였어요. 내가 사는 이유는 엄마가 되기 위한 거였어요. 그 선택을 했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축복 같은 삶이죠 제 딸은 내가 바라보고 갈 길을 알려주는 나한테 별 같은 존재예요 그래서 별이라고 태명을 지었어요.” - 허수경 int
    이토록 잦은 풍파를 겪었던 그녀가 제주도에서의 삶을 택한 지 어느덧 12년. 제주 살 이는 오롯이 은서를 키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일주일 중 하루 수경은 방송 일로 인 해 서울 행 비행기에 오른다. 금요일 단 하루 제주도를 비울 때조차도 서로를 그리워 한다는 못 말리는 모녀. 뽀뽀 만 번은 기본,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닭살 모녀! 수경은 딸 은서의 아기 때 용품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차곡차곡 모 아 놓을 만큼 지극한 딸 사랑을 자랑한다. 그런 엄마에게 은서가 바라는 것이 단 한 가지 있다는데...! 수경을 놀라게 한 그 말은 과연 무엇일까?
    █ 두 번의 결혼 실패, 그리고 만난 큰 나무 같은 한 사람
    어느덧 제주 생활 12년 차, 남편 해영을 만나 함께 산 지 올해로 6년째다. 지금은 행 복한 결혼생활로 안정기를 맞이한 그녀! 남편 해영은 아내를 위해 감미로운 클라리 넷 연주를 하고 발 마사지는 기본인 로맨틱한 남편이자 딸 은서에게도 한없이 다정 한 아빠라고. 수경은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서울 행 비행기 에 몸을 싣는다. 서울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남편과는 주말 부부로 지낸 지 오래다. 덕분에 항상 신혼 같다고 쑥스러운 듯 웃는 수경이지만 남편에게 매끼니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라는데...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다시는 결혼은 없을 거라 생 각했던 수경. 해영과의 만남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그러나 사실 해영과 수 경 둘을 이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은서였다는데... 방송에서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던 수경의 러브스토리가 <사람이 좋다>에서 전격 공개 된다.
    “ 저 아저씨면 우리 엄마가 남자친구로 사귀어도 좋겠다 (라고) 사실 저희 딸이 먼저 제안을 했어요. 씩씩하게 우리 아이를 혼자 키울 거라고 생각했다가 아이가 ‘아빠’ 라고 불러볼 수 있는 대상이 생겼다는 것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 - 허수경 int
    █ 또 다시 아픔, 그러나 계속되는 그녀의 끊임없는 도전
    사랑하는 남편 해영과 딸 은서와 함께 행복한 늦깎이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는 수 경. 그러나 풍파가 잦았던 탓일까 최근 수경은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 과로에 공 황장애, 우울증 등 심리적 문제가 겹치며 건강이 많이 악화 된 것. 언제나 홀로 묵묵 히 버텨오던 그녀였지만 남편 해영과 딸 은서, 그리고 늘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두 남동생 내외에게 최근에서야 건강상 문제를 털어놓았다. 엄마로서 약해지지 말아야 지 하는 마음에 자진해서 병원을 찾았다는 그녀. 병원에 도움을 받아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제가 어렵고 힘든 순간이 생겼을 때 내 몸 속에 용수철 같은 게 탁 나타나면서 나를 일으켜 세워요 많은 용수철이 있지만 그중의 최고는 우리 딸. 우리 딸은 제가 그동안의 제가 장착했던 용수철 중에 가장 막강한 최고급이에요. “ - 허수경 int
    수경은 삶에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곤 했다. 그래 서 그녀가 이번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생활 한복 디자이너로서 제 2의 도전을 시 작한 것! 평소 한복을 좋아했던 그녀, 처음에는 단순히 딸 은서에게 입힐 한복을 만 들고 싶어서 생활 한복 디자인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손님들의 반응이 의외로 뜨거웠 다. 그래서 수경은 지금은 더 많은 이들에게 우리 한복의 편안함과 멋스러움을 알리 고 싶다고.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많았던 그녀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제주도 에서도 한복 디자인, 가게 인테리어 꾸미기, 마당 가꾸기 등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 다. 바쁘지 않냐는 말에 그녀는 답한다. 자신은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는 일이 곧 휴 식이라고. 일과 휴식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욕심 많은 그녀! 아름다운 자연과 어 우러진 제주 도민이 된 지 어느덧 12년. 서울과 제주도를 바쁘게 오고가는 그녀의 이 중생활을 휴먼 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함께 살펴보자.
    “ 느리게 간다는 건 걸음걸이를 느릿느릿 하는 게 아니라 돌아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돌아가다 보면 똑같은 걸음에 속도로 걷지만 나무도 보고 지나가는 사슴도 보고 가다가 예쁜 돌이 있어서 줍기도 하고 그렇게 가게끔 그 길이 나를 이끈다는 거죠 그래서 그냥 저는 똑같은 발걸음이지만 이 길로 간 거예요 “ - 허수경 int

    234회 2017-08-06

    가족, <존재의 이유> 가수 김종환 ▶ 천 만장 음반판매! 원조 ‘누나 부대’ 가수, 김종환
    98년 그해 최고 음반판매량을 기록하며 각종 시상식에서 대상을 섭렵한 가수가 있 다. 바로 천 만장 음반 판매의 주인공, 데뷔 34년 차 가수 김종환! 그의 대표곡인 <존 재의 이유>, <사랑을 위하여>는 제목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국민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존재의 이유>가 시청률 65%를 기록한 드라마 <첫사랑>에 삽입이 되면서 서른두 살의 김종환은 당시 최고 인기 아이돌 HOT, 젝스키스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ARS 투표가 큰 비중을 차지하던 시절, 집안에서 전화기를 뺏는 딸과 엄마의 모습은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했다는데...수상소감으로 누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그 는 대한민국 누님들의 아이돌로 등극하며 누나 부대의 원조가 되었다. 무대에서 좋 은 곡을 진실 되게 부르는 것이 누나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하는 김종환. 하 루도 빠짐없이 노래를 연습하며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원조! 가 수 김종환을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지금 하늘에 계시는 제 어머니께 이 상을 드리고요. 전국에 계신 누님 여러분. 저 를 사랑해주는 진실한 팬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골든디스크 대상수상 소감(1998년)-
    ▶ 김종환이 선택한 단 한 명의 누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하는 김종환.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는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깊은 공감을 받는다. 실제로 가수 김종환을 세상에 알린 <존재의 이유> 는 부부가 떨어져 살았던 가장 힘든 시기에 만든 곡이다. 음악다방에서 DJ와 손님으 로 만나 첫눈에 반한 둘은 추운 겨울 8시간 넘게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고, 돈이 없어 결혼식도 못 올린 채 이불 한 채와 냄비 하나로 살림을 시작했다. 어렵게 마련한 집 또한 빚보증으로 날아간 상황, 김종환은 가족과 6년간 떨어져 살아야만 했다. 그의 노래 속 가사인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처럼 가족이 함께 할 날을 그리며 노래에 전념한 김종환. 스타가 된 후 결혼을 밝히지 말라는 소속사 의 제안에도 불구, 떨어져 있던 가족과 함께 사는 게 우선인 그를 누구도 막을 수 없 었다는데...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고 함께 살아갈 날을 그리며 노래를 부 른 가수 김종환! 아내에게는 세상 부럽지 않은 로맨티시스트 남편이자 두 딸에겐 든 든한 버팀목인 아빠 김종환의 모습을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한다. 소속사에서 결혼을 안 한 거로 하자고 이야기를 했어요. 너 밝히면 인기 떨어진 다. 밝히지 말아라... 그 얘기를 듣고 시골에 있는 식구들 데리고 와서 함께 사는 게 노래를 부르는 이유인데 그걸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나 자신한테 용납이 안 됐어요 - 김종환 인터뷰 中-
    개인적으로 김종환 씨를 볼 때마다 콘서트나 공연에 아내랑 항상 같이 다녀요 김종환 씨는 가족적이고 가족의 사랑이 대단한. 타의 모범이 되는 그런 가장이에요 - 노사연 인터뷰 中-

    ▶ 김종환 X 리아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사연은?
    평소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지 않는 그가 직접 곡을 주고 키운 미모의 후배 여가수. 같은 무대에서 노래하고 방송 출연을 할 때마다 둘을 바라보는 오해의 시선도 많았 다는데... 예쁜 얼굴에 뛰어난 노래 실력까지 갖춘 그녀는 바로 김종환의 딸 리아킴 이다. 아버지의 이름보다 자신의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2년간 부녀관계를 숨기고 선후배로 활동했던 그녀.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아래, 초등학생이었던 리아킴은 재 래시장과 버스 한복판에서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며 담력을 키워왔다. 노래와 춤 실 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면서 유명 기획사에서 걸그룹 메인보컬 제의도 여러 번 들어왔다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수의 길을 꿈꿔온 10년의 시간. 아버지가 작 사 작곡한 <위대한 약속>으로 데뷔한 리아킴, 어느덧 데뷔 6년 차 가수가 된 지금, 34년 차 선배인 아버지의 무대를 바라보며 그 당시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한다는 그녀. 선후배를 넘어 서로를 응원하는 김종환, 리아킴 부녀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 나본다. 제가 가수로 데뷔를 하고 아버지랑 같이 무대에 서는 날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무대 밑에서 아버지가 일하시는 걸 빠짐없이 보는 편이예요. 선배님으로서 배울 점 이 있으니까.., 아직도 땀 뻘뻘 흘리시면서 열창을 하시고 지금 위치에 올라가도 끊임없는 노력을 하시는 걸 보면서... 저희를 위해 노력해주신 걸 이제는 알겠는 거예요 - 리아킴 인터뷰 中-

    233회 2017-07-30

    김흥국의 ‘아싸 마이웨이’ ▶ ‘호랑나비야 날아봐~’ 10년 무명을 딛고 날아오른 가수 김흥국
    1989년, 대한민국 가요계를 흔들어놓은 호랑나비 김흥국! 덥수룩한 콧수염에 흰 양 복을 입은 김흥국의 호랑나비 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5주 연속 1위에, 10대 가수 상까지 거머쥐게 된 김흥국. 대한민국에 서 호랑나비 춤 한 번 안 춰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김흥국 씨가 나오기 전에는 저와 같이 경쟁할만한 솔로 댄스 가수가 없었어요. 춤의 난이도를 떠나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게 그 자체로 최고의 춤이죠. 제가 보고 충격 받았을 정도니까요.” - 가수 박남정 인터뷰 中
    “김흥국 씨의 인기는 그야말로 수직상승이었죠. 정말 독보적이었어요. 온갖 프로그램에서 김흥국을 섭외하려고 난리가 날 정도였으니까요. ‘호랑나비’는 누가 불러도 그렇게 못 부를 거예요. 김흥국이라서 할 수 있었던 노래죠.” - 전 ‘주부가요열창’ 진행자 이상벽 인터뷰 中
    지금은 ‘예능의 신’, ‘흥궈신’으로 불리는 김흥국이지만, 그에게도 10년의 무명 시절 이 있었다. 서른 살이 다 되도록 차비가 없어 걸어서 공연을 다니고,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 빚을 내서 발표했던 음반들도 줄줄이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끝이 보이지 않던 10년 무명을 버틸 수 있던 건 오로지 어머니 덕분이었다. 홀로 6남매를 키우던 힘든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언젠가는 성공할 거야. 너는 크게 될 거야’라고 아들을 믿어주었다. 어머니의 한결 같은 믿음과 사랑 덕분에 그는 기나 긴 무명을 털고 10년 만에 빛을 볼 수 있었다. 호랑나비가 날아오르듯 28년째 힘차 게 날고 있는 가수 김흥국. 오랜 기다림 끝에 훨훨 날아오르는 ‘호랑나비’의 가사와 도 똑 닮은 그의 인생 스토리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했던 시대면, 아마 전 세계인이 호랑나비 춤을 췄을 거예요. 싸이의 강남스타일보다 더 했겠죠. 그때는 정말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고, 잠을 안 자도 졸리지도 않고, 하루하루가 행복했어요. 호랑나비는 저에게 그냥 신나는 곡이 아니라 힘들었던 날들을 위로해주고, 그동안 응원해 준 어머니의 믿음을 갚을 수 있던 의미 있는 곡이죠.” - 김흥국 인터뷰 中
    ▶ 13년차 프로 기러기 아빠, 김흥국의 혼자 라이프
    지난 2003년, 김흥국은 기러기 아빠가 됐다.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갔 던 가족들은 지난해, 1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들 학교 문제로 또다시 김 포-서울 간의 ‘반 기러기 생활’이 시작됐다. 지난 13년은 아내의 잔소리까지 그리워 질 정도로 외롭고 적막한 시간이었다.
    “집에 오면 항상 제일 먼저 TV를 틀어요. TV를 켜놓고 그냥 자는 거예요. ‘내가 혼자가 아니고 여러 사람이랑 같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이 되니까. 혼자 사는 사람들, 기러기 아빠들은 거의 다 그럴 걸요.” - 김흥국 인터뷰 中
    13년 동안의 기러기 생활은 그의 삶을 확 바꿨다. 어느새 그는 프로 살림꾼이 됐다. 도움의 손길 없이 혼자 힘으로 청소, 빨래, 음식까지 해낸다. 비록 혼자이지만 삭막 하지 않기 위해 화초도 키우고, 집안엔 먼지 한 톨 없으며, 설거지를 쌓아두는 법도 없다.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조기축구를 하고, 동네 이웃들과 친목을 다진다. 동 네 60대 축구단에서는 나름 막내 에이스를 맡고 있다는데! 어느새 59세, 날로 줄어드는 머리숱을 걱정해 가발을 착용해 보기도 하고, 스스로 ‘셀프 수염 염색’까지 하며 자기관리에 소홀함 없는 멋쟁이 신사, 베테랑 기러기 아 빠 김흥국의 ‘나 혼자도 잘 사는’ 신나는 일상이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 예능의 신 김흥국의 흥나는 인생, 앗싸 들이대!
    ‘흥궈신’ ‘예능치트키’ 로 불리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김 흥국. 그는 요즘 나이를 잊고, 젊었을 때 보다 더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음악공연과 라 디오 DJ, 예능 게스트, 대한가수협회 회장까지! 부르는 곳이 너무 많아 하루 24시간 이 부족할 정도라는 김흥국은 여전히 청춘이다. 최근에는 사이버 대학 실용음악학과 에 합격해 17학번 새내기(?)가 되었다는데.
    “요새 김흥국 씨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열광하시는데, 그 분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요. 이제야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지, 김흥국 씨가 라디오 진행 중에 말실수도 많이 했는데,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어하는 거예요. 사람이 완벽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냥 일상과 똑같이 방송하는 그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해주시는 거죠.” - 개그우먼 박미선 인터뷰 中
    ‘흥부자’ 김흥국은 혼자가 아닌 모두 함께 즐거운 세상을 꿈꾼다. 가수협회 회장으로 서 원로가수들을 위해 앞장서 어려운 생활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이름을 건 장학재단은 올해로 18년째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돕고 있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무료 공연을 연지도 어느덧 두 달이 됐다. 작고 초라한 무대도 마다하지 않고, 웃음과 노래를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 다는 가수 김흥국! 그의 엉뚱하지만 사람냄새 나는 편안한 매력을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본다.
    “인생은 즐겨야 돼요. 그러려면 열심히 일해야죠.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 특히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고 같이 즐기는 것이 즐거운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 김흥국 인터뷰 中

    232회 2017-07-23

    즐거운 나의 집, 모델 송경아 ■ 솔직당당 톱모델 송경아! 그녀의 런웨이는 언제나 현재진행형
    신장 179.5! 훤칠한 키와 매력적인 마스크로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의 런웨이를 압 도했던 대한민국 톱모델 송경아. 20년째 각종 패션 잡지의 화보 촬영장에서 프로페 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모델은 시크하고 까다로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솔직 털털한 반전매력으로 각종 방송과 라디오에서도 섭외 1순위로 활약 중이다. 평 소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걷는 걸 좋아하는 뚜벅이 송경아. 큰 키 때문에 어딜 가나 주목받지만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편하게 동네를 누빈다. 그러나 모델 활동만큼은 완벽주의자인 송경아. 작년가을 출산한 초보엄마지만 출산 2개월 만에 무대 복귀, 변함없는 카리스마로 촬영장을 압도하고 있다. 패션계에서 계절을 앞서가는 모델의 일상. 폭염 속에서 미리 가을, 겨울을 살고 있는 톱모델 송경아의 뜨거운 여름을 <사람이 좋다>가 함께한다.
    “ 인간적인 송경아의 매력과 모델로서의 송경아가 잘 어우러져서 어떤 작업을 해 도 그 작업에 알맞게 표현되죠. ” - 디자이너 박승건int -
    “ 타고난 천생모델인 것 같아요. 흰 종이처럼 어떤 색을 그리더라도 다 소화할 수 있 는 모델이니까 송경아를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은 없어요. ” - 디자이너 황재근int -
    “ 19살에 데뷔해서 나오자마자 표지도 찍고 사실 오프닝 피날레도 하고 패션계 안에 서는 이미 유명한 모델이 되었어요... 키가 너무 커서 어렸을 때는 싫었거든요. 근데 그게 장점으로 된 케이스인데요. 제가 데뷔했을 때는 예쁜 모델들의 세상이었어요. 저는 다른 걸로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다 보니 노력하게 돼서 그 부분이 (사람들에 게) 보이게 된 거예요. ” - 송경아 int -

    ■ 소문난 집순이로 사는 톱모델, 당당한 웃음 뒤 감춰왔던 그녀의 눈물
    9개월 차 초보엄마 송경아. 10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 결혼 4년 만에 얻은 딸은 송 경아의 일상에 큰 기쁨이 됐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족을 향한 애정만큼 지금 살 고 있는 신혼집에는 그녀의 손길과 정성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인테리어는 물론, 가구, 소품, 그릇들까지도 모두 직접 만들어 쓰고 있는 송경아. 평소 다재다능한 손 재주로 ‘모델계의 금손’이라 불리는 그녀에겐 집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는데...
    “ 지금의 저를 보면 많은 분들이 인생의 굴곡도 없을 것 같고 ‘너는 그냥 평탄하 게 살아왔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근데 의외로 굴곡도 많았 고... 일을 못할 정도로 정말 (아팠는데) 제가 내색을 안 해서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어요. ” - 송경아 int -
    데뷔 3년 만에 톱모델 대열에 올라선 후 뉴욕행을 결심한 송경아. 단돈 20만원을 챙 겨 과감하게 떠났던 그녀의 파격적인 행보는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당시 해외무대 에 동양모델이 오르는 것이 흔하지 않던 때 아시안 최초 유명 청바지 브랜드 모델을 시작으로 전 세계 패션잡지를 장악, 첫 시즌 만에 쇼 37개를 서며 활발하게 활동했 다. 전 세계의 런웨이를 누비며 화려한 전성기를 맞았던 그녀는 돌연 모든 활동을 접 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뉴욕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던 중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 진단. 20대 경아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긴 시간을 혼자 견뎌야만 했다. 증상 이 나타날 때마다 그녀를 붙들어준 건 바로 자기 자신과의 대화, 혼자만의 시간이었 다. 그림을 틈틈이 그리고 인테리어, 도예, 가방공예 등 닥치는 대로 배우며 자신만 의 돌파구를 찾은 그녀. 언제 다시 재발할지는 모르지만 일하는 시간 외에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안정을 되찾게 됐고 가장 편한 공간인 집이 그녀의 힐링 공 간이 됐다는데... 그리고 그녀의 또 다른 힐링은 가족. 송경아에게 남편은 든든한 울 타리가 되어줬고 아기는 모든 피로를 잊게 하는 그녀의 비타민이 되어줬다. 이제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기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아내이자 엄마 송경아. 그녀가 말하는 집과 가족의 의미는 더욱 간절하고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 던 그녀의 속마음과 가족들의 시간을 <사람이 좋다>에서 최초 공개한다.
    “집은 제가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는 공간이죠.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곳이니까 제 라이프 하고 똑같은 거죠. 집이라는 의미가 저한테는 되게 중요해요. 제가 쉴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저만의 놀이터, 여러 가지 복합공간이에요... (집은) 제 전부라고 해야 될까요?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같이 살아가야 될 공간이니까 아기 낳 고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제가 더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 송경아 int -
    ■ 오늘도 열정충만! 열혈모델 송경아의 멈추지 않는 도전!
    남모를 시간 끝에 완성된 지금의 송경아.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이 어가고 있는 그녀는 콤플렉스, 나이, 편견. 수많은 한계를 뛰어넘고 정상에 올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말하며 자기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 프로 다. 출산 후에도 황금비율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송경아. 출산 2개월 만에 모델로 복귀함과 동시에 10년 넘게 해온 자기관리 비법인 필라테스도 다시 시작했다. 패션 과 관련된 작업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불어에도 도전하는데... 재미삼아 그리던 가방 그림을 모아 직접 제작에 도전, 작지만 개인브랜드 론칭까지 성공한 사업가인 송경아. 이미 자신의 그림과 이야기를 담은 책(창작 일러스트 작품집 '패션모델 송경 아, 뉴욕을 훔치다‘, '키스 미 트래블' 등)을 출판한 그녀는 틈틈이 글과 그림을 정리 해 다음 책을 준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올여름은 아기방을 만들기 위해 감행 한 이사 때문에 다시 한 번 셀프인테리어에 도전한다고 하는데... 공사현장에 매일 찾아가 진두지휘를 하고 직접 현장에서 벽돌 시멘트작업을 하기도 한다. 팔을 걷어 붙이고 열정을 불태우는 송경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끝없는 도전을 이어가는 톱모 델 송경아의 끝없는 인생 런웨이를 <사람이 좋다>가 함께 한다.
    “ 살면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는 받게 될텐데 (그렇다면) 제 마음을 바꾸는 수밖 에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낙천적으로 제 마음을 바꾸는 마인드컨트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괜찮을 거야, 괜찮아, 별 문제 없고 지하지만 답답하지 않을거야, 답답하지 않아. 답답하지 않아’... 나중에는 정말 (생각처럼) 그렇게 됐어요. ” - 송경아 i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