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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765회 2018-02-08

    G-1, 2018 평창의 꿈 2018 평창동계올림픽 G-1, 이 평창동계올림픽 특집을 마련한다. 분단의 경계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지금. 11년 만 의 남북 공동 입장에 이어 27년 만에 결성된 남북 단일팀까지, 평창의 꿈이 시작되 고 있다.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 중 가장 작은 도시 평창, 그러나 올림픽 역대 최다 92개국 참 가, 15종목 102개 세부종목으로 역대 최다 종목, 동계올림픽 최초 100개 이상의 금메 달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큰 축제가 될 평창 동계올림픽. 인구 4만 명의 작은 마을에 서 일어난 가장 큰 기적, 20년의 유치 도전기를 들어본다.
    ■ 션, 매일 20.18km를 뛴다?
    지난 9월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로 임명된 션은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와 그리스로 날 아가 성화를 인수해오는 등 올림픽 선수만큼 뜨거운 열기로 평창 올림픽을 홍보하 고 있다는데.... 그가 매일 20.18km를 달리는 사연과 평창 주민들과의 특별한 만남 이 공개된다.
    ■ 포기는 없다. 20년의 도전
    삼수 만에 이뤄낸 쾌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두 번의 실패를 딛고 끝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평창 주민들이었다.
    “40대에 시작해서 60대에 완성된 게 올림픽이야. 내 젊음을 올림픽에 다 바쳤죠.“ - 평창 주민 홍영기 INT 중
    세 번의 도전까지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한 주민들을 만나 그동안 밝혀지지 않 았던 눈물겨운 20년의 올림픽 유치 도전기를 들어본다.
    2011년 IOC 현지 실사단을 울린 하모니, 강원도민 대합창. 현지 실사단은 그때의 합 창을 기억하고 있을까? IOC 사무총장 구닐라 린드버그 인터뷰 대공개. 어린 아이부터, 영어를 모르는 어르신들까지 2018명의 강원도민이 모여 한마음으로 불렀던 ABBA의 노래 ‘I have a dream’. 당시 합창을 이끌었던 정남규 원주시립합 창단 상임 지휘자와 합창에 참여했던 어르신들이 7년 만에 악보를 꺼내 들었다. I have a dream, 그 감동의 순간을 다시 한 번 재연한다.
    ■ 꿈을 완성해가는 평창은 지금
    보기만 해도 전율이 넘치는 경기장 조성 현장 최초 공개! 평균 기온 영하 25도, 누구 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경기장을 만드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다. 서 있기도 힘든 해 발 1400m 최상급 슬로프에서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아찔한 현장. 알파인 스키 경 기장과 모굴 경기장 조성 현장부터 대한민국 효자 종목 빙상 경기장 조성현장까지! 총 450여 가지의 다양한 메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한식은 물론 아시안 음식, 양식에 이어 무슬림을 위한 할랄 푸드까지. 올림픽 사상 최초 빵을 굽는 선수촌이 나 타났다! 과연 선수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까? 재료 준비부터 시식 평까지 모두가 궁금해 하는 선수촌 식당 전격 취재! 평화의 축제 를 준비하는 평창의 모든 것이 MBC 스페셜 ‘G-1, 2018 평창의 꿈’에서 공개될 예정 이다.

    764회 2018-02-01

    당신의 1987 ■ 기획의도
    2017년 말 개봉해 입소문을 타고 관객수 700만을 돌파(2018년 1월 말 기준)하며 흥 행 궤도에 오른 영화 <1987>! 영화를 본 한 시민은 사비를 털어 영화관을 대관해 무 료 상영회를 열었고, 6월 항쟁 당시 대학생이었던 86, 87학번 선배들은 후배들을 위 한 단체 관람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가족 단위의 관객들부터 여야 정치권, 경찰들까 지 각계각층의 단체관람도 이어졌다. 영화를 보며 386세대는 1987년 6월 항쟁의 기 억을, 젊은 세대는 2016년의 촛불집회를 떠올렸다. 영화 <1987>은 모두가 주인공 이었던 각자의 그 해를 되새기게 해준다.
    1987년의 그들이 목숨까지 걸면서 쟁취하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영화 <1987>을 통해 직업적 양심과 소명을 지킨 이들부터 민주화를 열망하며 거리 로 나섰던 시민들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1987년의 진짜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 주요내용
    ◇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 출연!
    2015년 박근혜 정권 당시 장준환 감독은 처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고 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는 문화계 ‘블 랙리스트’가 존재하는 시절이었고 그 역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런 데도 그가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7년 당시 그는 고등학교 3학 년이었고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세상을 바꿔보고자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에 꼭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국내 투자사들로부터 투자를 외면당한 뒤 외국계 투자사에서도 투자가 성사 되지 않자, 소규모 자본의 독립영화로 제작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6년 10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 자 투자가 유치되고 배우 캐스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장준환 감독은 드디어 기적처 럼 이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촛불 시민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 었을지 모른다는 영화 <1987>의 제작 이야기를 들어본다.
    ◇ 영화 <1987> 촬영장의 뒷이야기들
    2017년 2월 22일은 촬영팀이 위성사진까지 찾아보면서 정한 첫 촬영 날이었다. 고 박종철 열사 유골을 임진강에 뿌리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얼음이 녹지 않은 강에서의 촬영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촬영 당일 예상과 달 리 임진강에 느닷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촬영을 접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러나 결 과적으로 그 눈 덕분에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아픔이 더 돋보일 수 있었다. 장준환 감독이 약 1년 만에 다시 찾은 임진강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직접 상세하게 들려준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하늘에서 누군가 보살펴주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여 러 번 했었어요” - 장준환 감독 인터뷰 중
    영화 <1987> 촬영팀은 고 박종철 열사 고문 장면이나 고 이한열 열사 피격 장면 등 우리 역사의 아픈 장면들을 찍을 때마다 그분들의 희생을 기리며 묵념을 올렸다. 그 들의 진심이 하늘에 닿아서일까? 전국에 장마가 한창일 때도 촬영지만큼은 전국에 서 유일하게 비가 안 오기도 했다고 한다. 원하는 날씨와 컨디션이 딱딱 주어졌던 ‘하늘이 도운’ 영화 <1987>! 영화 제작이 불투명하던 시기에 가장 먼저 “어떤 역이 라 도 하겠다”며 합류해준 배우 강동원의 사연부터 여러 배우가 ‘셀프 캐스팅’을 청했으 나 배역이 모자라 거절해야 했던 이야기 등 다양한 뒷이야기가 공개된다.
    ◇ 박종철 아버지 역의 신스틸러 배우 김종수를 만나다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영화 속 분량은 많지 않았으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가슴 절절 한 부성애를 보여준 박종철 아버지 역의 배우 김종수 씨를 만났다. 1987년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영화를 준비하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고 그분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연기했다. 영화 속 임진강 장면은 1987년 겨울 박종철 열사 부친이 살얼음 이 낀 임진강을 걸어 들어가던 그 날과 똑같이 연출됐다. 그는 촬영을 마친 후 후시 녹음 작업 때 본인이 연기한 장면을 보는데 감정을 컨트롤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희생되신 분들의) 덕 보고 산 것 같은 느낌이죠.. 저는 (그분들처럼 목숨 걸고 민주화 운동을 할) 자신이 없거든요 사실은. 얼마나 무 섭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 김종수 배우 인터뷰 중
    ◇ 영화 속 실제 주인공들에게 듣는 1987년도 진짜 이야기!
    영화 <1987> 속 실제 인물인 최환 검사, 오연상 의사, 신성호 기자, 황열헌 기자, 한 재동 교도관을 만났다! 1987년 그들이 직접 겪었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그 시 절 이야기를 들어본다.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 누나 박은숙 씨와 박 열사의 절 친들은 영화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한겨울에 길거리에 앉아 있는 걸인에게 자신의 오리털 파카를 내어준 박종철 열사의 인간적인 면모가 담기지 않아 아쉬웠다 는 그들. 그뿐만 아니라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 씨와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 심 여사를 직접 만나보았다. 이한열 열사의 피격 후 180도 달라진 배은심 여사의 ‘한 울삶’에서의 일상과 당시 쓰러진 이한열을 부축했던 연세대 86학번 박남식의 이야기 까지! 배우들의 인터뷰와 촬영 현장, 열사들의 묘소를 찾은 배우들의 모습이 담긴 미 공개 영상도 에서 공개된다.
    한편 영화 <1987>에서 취재 열정이 가득한 동아일보 기자 역을 훌륭히 소화해낸 배 우 이희준이 내레이션을 맡아 치열하고 가슴 벅찬 1987년도의 이야기를 전해줄 예 정 이다.

    763회 2018-01-25

    하얀거탑 리마스터드 방영기념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 재편집본 MBC 스페셜에서는 <하얀거탑 리마스터드> 방영을 기념해 2009년에 방송되었던 셀 러브리티 다큐멘터리 <김명민은 거기에 없었다> 재편집본을 방송한다. 본 방송에 는 드라마 이외의 프로그램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배우 김명민의 소탈한 일상과 연 기에 대한 무서운 열정이 단독으로 고스란히 담겨있다. 9년 전, 30대 후반이었던 풋 풋한 김명민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외로 쏠쏠한 재미. 여기에 김명민과 진행 한 최근 인터뷰를 추가해, <하얀거탑>에 대한 후일담과 연기에 대한 변함없는 갈증 도 들어본다.
    - 김명민 “또다시 장준혁을 연기할 자신 없어”
    9년 만에 다시 만난 ‘연기장인’ 배우 김명민. 명품 의학드라마 <하얀거탑> 속 주인 공 장준혁 역할은 김명민 스스로도 자신의 연기력을 최고의 반열에 올려준 캐릭터 로 손꼽는다. 하지만 야망으로 가득 찬 천재의사 장준혁은 김명민에게조차 가장 소 화하기 힘든 배역이었다고. 올해로 연기 인생만 23년의 베테랑이 되었지만, 그는 여 전히 “또다시 장준혁을 연기할 자신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주인공이지만 악역 이고,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장준혁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었 다”는 것. 하지만 그는 “9년 전 연기가 UHD 리마스터로 2018년에 다시 시청자들에 게 선보이는 것 자체가 무한한 영광이다. 나도 당시의 내 연기가 다시 보면 어떨지 궁금하다”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돌아온 김명민이 꼽은,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하얀거탑을 꼭 시청해야 하는 이유!
    - 배우 김명민,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에 쓴 소리 “기계 같은 느낌에 회의감 들 어”
    김명민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배우다. 어느덧 20년차 이상의 중견배우가 된 그는 최근 드라마 제작과 관련한 인명 사고 및 방송사고 등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책임감 을 보였다. 10년 전, <하얀거탑>을 촬영할 당시와 비교하며, 여전히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에 일침을 가한 것. 그는 “대본을 좀 더 숙지하고 연기하고 싶은데 시간이 모자라고,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없다”며 “영화는 그래도 많이 나아졌는데 스태프 의 처우 등에서 드라마는 아직 여전한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씁쓸해했 다. 촬영장에서 모든 스태프의 이름을 외우고 그들을 살뜰히 챙기던 배우 김명민. 배 우 이전에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김명민의 인간적인 면모는 ‘MBC 스페셜 <김명민 은 거기에 없었다> 재편집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월 25일 목요일밤 11시 15분 방 송)

    762회 2018-01-18

    36,700년의 눈물 ❍ “뜨거운 감자” 양심적 병역 거부
    무술년 새해, “뜨거운 감자”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 을 지피기 시작했다. 지난해 1심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 무죄 판결은 44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한 대법원장, 헌재소장 등 사법계 인사들이 등용될 때마다 논 란이 되어온 사안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이미 두 차례 합헌 선고를 내 린 바 있지만, 2015년 공개 변론 이후 세 번째 헌법 소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법계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논의는 진행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공략중 하나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체 복무제 도입이었으며, 박주민 의원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체 복무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2018년 1월 15일,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로 고통받는 당사자들과 가 족들은 약 47,000여 명의 이름으로 대체 복무제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 했다.
    ❍ 양심적 병역 거부자, 누적 수감년도 36,700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부분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이들은 살인과 전쟁 에 반대하는 성서의 가르침을 근거로 군대를 거부한다. 1950년 이후 군대를 거부한 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수감된 한국인은 19,270여 명, 그들의 형량을 모두 합하면 36,700년이 넘는 시간이다.
    2015년에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에서 한국 병역 거부자들 100명의 개인 진정에 대한 사건을 판단하면서 “병역 거부자들에게 형사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이다.” 규약위반이라는 판단을 합니다. 이에 더해 병역 거부자들이 감옥에 있는 현실을 ‘자의적 구금’이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자의적 구금은 가장 극심한 인권침해인데 감옥에 있는 병역 거부자들이 ‘자의적 구금’ 상태라 판단하면서, 실제로 즉각 석방하라고 이야기합니다. - 임재성 변호사 INT 중-
    2013년 국제연합 (UN) 인권위원회는 종교와 신념 등의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해 수 감 중인 사람은 전 세계 723명, 그중 669명, 92.5%가량이 한국인이라고 발표했다. 국 제연합(UN)은 한국 정부에 수차례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 및 대체복무제 도입 을 권고하고 있다.
    ❍ 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특별한 감옥, 그리고 5명의 군 의문사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처벌은 군사 정권이 들어서며 강력해졌 다. 1975년 3월 9일, 부산 일대 여호와의 증인 예배당에 병무청 직원들이 들이닥쳤 다. 여호와의 증인 구인과 징집은 시대적 분위기와 군사 정권의 강력한 명분 아래 전 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논산 훈련소 헌병대 영창에는 여호와의 증인들만을 위 한 특별한 감옥, ‘독거특창(獨居貣倉)’이 만들어졌다. ‘독거특창’은 가로 60cm, 세로 120cm의 독방이다. 헌병이 체인벨을 누르면 수감자는 독거특창 천장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빛이 들어오게 해야 했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을 재우지 않기 위 해 특별히 고안된 장치였다. 당시의 ‘독거특창’을 MBC 스페셜에서 전격 공개한다.
    제가 그때 논산에서 여호와의 증인 한 명이 집총을 거부해서 죽었다는 얘기를 사실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갔는데, 중대장이 얘길 하더라고요. ‘여호와의 증인들은 살려둘 수가 없다’ 권총을 꺼내서 우리 귀에 대고 (군 복무) 할 건지 안 할 건지 얘기를 하라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할 수 없다고, 우리가 최대한 법을 준수하지만, 집총이나 이건 할 수가 없다고. - 강영호 / 독거특창에 수감되었던 당사자 INT 중-
    2006년부터 3년 동안 진행된 ‘군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에서 의문사로 인정된 여호 와의 증인은 5명이다. 군사 정권 하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빨갱이보다 못한 존 재로서 고문과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제작진은 군의문사로 인정된 故 이춘길 씨의 가족과 목격자를 만나 당시의 끔찍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등대사(燈臺社) 사건 : 38명의 신도들이 투옥되어 해방이 되어서야 풀 려났다.
    1939년 일본 경찰은 한국 여호와의 증인 신도 38명을 체포한다. 정부 기관이 편찬 한 ‘한민족 독립운동사’에서는 이를 일제 말기의 주요한 저항 중 하나로 등대사(燈臺 社) 사건이라 기록하고 있다. 반전사상 유포와 신사참배, 천왕숭배를 거부하던 여호 와의 증인의 행동은 일본의 눈에는 반체제 활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들은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처럼 일본의 가혹한 고문과 탄압을 받았다. 제작진이 만난 옥규빈 씨 는 당시 체포되었던 옥지준 할아버지와 김봉녀 할머니의 손자다. 현재 1심 재판 계 류 상태로, 수감될 처지에 놓여있다. 옥씨 가문은 양심적 병역 거부로 3대 째 감옥살 이를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 2000년 대만의 대체 복무제
    제작진은 2000년도부터 대체 복무제를 실시한 대만의 사례를 현지 취재했다. 중국 과 대치 중인 대만은 1949년 독립 이후 징병제를 시행해왔다. 국방과 안보의 문제에 있어 우리나라만큼 양보 없는 정책을 펼쳐왔지만, 현대의 국방력은 인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직시한 후, 국방 제도를 개편한 대표적인 국가다. 대만 역시 대체복무 제 시행 초창기에는 반대의 여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제도 시행 후 대체근무가 현역 보다 힘들다는 것이 상식이 되면서, 시행 초 1.5배 길었던 근무기간이 현역과 동일해 지기까지 했다. 노인 요양시설, 소방 등 사회복지 시설에 대체 복무 인력을 투입하면 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도록 돕고 있었다.

    761회 2018-01-11

    신년특집 MBC스페셜 <맛의 방주> 2부 ■ 기획 의도
    새롭게 시작된 2018년. 맛의 역사를 다시 쓰는 신년특집 <맛의 방주> 2부작!
    1년에 27,000개 이상의 식재료가 사라지고 있는 인류의 식탁.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조금 더 빠르게.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생산된 식재료가 세계인의 입맛을 획일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탈리아에서는 1997년 ‘맛의 방주 선언문’을 발표하여, 소멸 위기에 처한 전 세계 식재료를 지켜내자는 ‘맛의 방주 운동’을 시작하였다. 현재 전 세계 4,635개 품목이 ‘맛의 방주’에 올랐으며, 우리나라 역시 92가지 품목을 등재했다.
    신년특집 MBC스페셜은 <맛의 방주> 2부작을 통해 자칫 사라질 뻔했던 소중한 ‘맛’의 기억을 되찾아 본다.
    ■ 주요 내용
    2부: 다양성을 위하여
    <끓여 만든 소금. 태안 자염>
    예로부터 부자만 먹던 귀한 소금 ‘자염’. 햇볕에 말린 갯벌 흙을 가마솥에 끓여서 추 출하는 특별한 소금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천일염에 밀려 사라질 뻔했지만, 충청 남도 태안에선 지금도 전통방식 그대로 자염을 만들고 있다. 열두 시간 동안 뜨거운 가마 옆에서 씨름을 해야 하는 고된 과정.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자염은 천일염보 다 염도가 낮고 칼슘이 14배나 높아 최고의 소금으로 대접받는다고 한다.
    <진짜 우리 닭은 이런 모습이다! 파주 현인 닭 >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취를 감추었던 재래 닭. 털이 검은 흑계부터 은 색 빛이 감도는 은계까지, 기록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재래 닭의 종류는 무려 20종에 이른다. 1983년부터 대한민국의 재래 닭 복원에 힘써온 홍승갑 대표. 처음 연구를 시 작했을 당시엔 재래종이 단 한 종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한평생을 바친 연구 끝에 복원에 성공했다. 재래종은 외래종에 비해 살이 차지고 병충해에 강하며 최고급 품 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비싼 가격은 물론 키우기 힘든 조건 때문에 쉽사리 자리 잡 기 어렵다는데. 어렵게 복원 시켰지만 지켜 나가기가 힘든 맛의 방주. 해결 방안은 없는 것일까?
    <맛의 방주 활성화를 위하여 - 이탈리아 미식과학대학 ->
    맛의 방주가 자리 잡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안정적인 소비망을 구축 하는 것. 이에 이탈리아에선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미식과학대학을 설립했 다. 학부 3년의 과정 동안 유럽 내 5~6개국, 유럽 밖 1개 국가로 푸드 스터디 트립을 떠나는 학생들. 이는 단순히 지역의 먹을거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넘어, 지역과 사 람, 먹을거리 간의 연결 관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행복한 밥상. 그 해답을 찾아본다.
    <대한민국 맛의 방주의 보고. 제주를 찾다>
    -다시 살려낸 검은 소. 제주 흑우-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맛의 방주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섬 제주도. 2018년 현재 17개의 식재료가 맛의 방주에 등재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태고의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제주도 곶자왈. 이곳 엔 우리에겐 낯선 검은 소 흑우가 있다. 과거 왕실 제사에 쓰이는 신성한 공물이었 던 흑우. 일제의 수탈에 멸종 위기해 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 유전자 연구 를 통해 황우와 흑우 교배에 성공했고, 그 덕분에 안정적으로 흑우 개체 수를 확보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제주도엔 흑우 전문 음식점까지 생겨났으니, 황우보다 비 싼 값에 흑우를 매입해 농가의 고충을 덜어주고 있다.
    - 모두가 상생하는 행복한 밥상을 위해. 제주 토종 밥상 -
    각자만의 사연과 사명감을 가지고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사람들. 제주도의 한식 레스 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김지순 식품 명인 모자(母子) 역시 그 중 하나다. 푸른 콩장 소 스를 곁들인 샐러드부터 흑돼지까지. 맛의 방주에 등록 된 식재료가 중심이 되는 고 급스런 코스 요리. 값 비싼 식재료, 고집스런 농부들이 재배하는 값 비싼 식재료로 제주 음식 본연의 맛을 살려 내겠다는 것이 명인의 철학이다. 그래야만 손님이 제대 로 된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농부들도 수익을 낼 수 있으며 이는 곧 ‘맛의 방주’ 프로 그램의 성공과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