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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순

    회차 방송일 내용
    748회 2017-09-28

    커피에 미치다 ■ 기획의도
    우리들의 생활에 어느새 커피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 6위. 대한민국 한 사람은 일 년에 50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고 있으며 커피 시장 규모는 무려 8조 원 가량!! 커 피 전문점 수는 그 흔한 치킨 집보다도 무려 3배가 많다. 더욱이 커피를 만난 후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바뀐 일명 커피에 미친 이들도 많으니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커피의 힘은 무엇일까? 커피에 푹 빠진 이들을 만나 우리가 몰랐던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와 커피 한 잔에 담긴 무한 매력을 들어본다.
    ■ 주요내용
    < 대한민국에서도 커피나무가 자란다 >
    커피나무가 주로 자라는 곳은 열대 지역의 아프리카나 남미이다. 그런데, 최근엔 대한민국 곳곳에서도 커피나무를 만날 수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가 장 먼저 커피나무를 키우기 시작한 곳은 경기도 미사리의 한 농원.
    무려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밤낮없는 노력을 통해 커피나무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 를 맺는데 성공했다. 최근엔 커피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농장을 찾아 직접 커피 체리 를 수확해보고 건조 과정과 로스팅을 거쳐 한잔의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는데... 과 연 국내산 커피의 맛은 어떨까? 커피 나무는 겨울 영하의 날씨로 내려가면 바로 죽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온실에서 1500 만원이라는 막대한 난방비를 써 가며 나무를 키워 낸 커피에 미친 한 농장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 한국 사람들은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을까? >
    한국의 열렬한 커피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많은 이들이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마셨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훨씬 더 이전부터이다. 1884 년에 쓰인 한 책을 보면 미국인이 조선에서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글귀가 있는 것. 커 피는 서양 문물을 통해 상인이나 일반인들도 즐겨 마시는 음료였다. 저잣거리에서 커피는 양탕국으로 불렸는데 탕국처럼 까만 물인데 서양에서 들어와 양탕국이라고 불린 것. 그 후 커피는 다방문화 통해 널리 퍼졌으며 당시 신문에는 커피를 맛있게 타기위한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기도 했 다.
    < 커피에 味친 사람들 >
    우리 주변엔 커피에 미쳐 인생의 전부를 커피에 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이 잘 안 풀리던 때 커피를 만나 후 5년 동안 커피 트럭을 몰고 다니며 전국을 여 행하는 커피 여행자 이 담 씨. 절에서는 차를 마신다는 편견을 깨고 커피로 포교하 는 안동 광흥사의 범종 스님. 10년 동안 커피에 빠져 최근에는 직접 개발한 뻥튀기 기계로 로스팅까지 하고 있다. 1세대 바리스타이자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커피 문화를 알린 박이추 씨. 35년간 커피만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원두커피의 세계를 알린 허형만 씨. 커피는 도구의 세계라고 외치며 20년 동안 다양한 커피 도구를 수집한 문화 평론가 김갑수 씨. 커피에 빠진 후 1년에 150일을 해외 커피 산지를 다니며 직 접 커피 농장에서 생두를 구입하고 있는 커피헌터, 서필훈 씨. 이들은 왜 자신의 모든 것을 걸로 커피에 味치게 된 걸까?
    < 섬세한 커피의 세계 – 커피 토크 >
    커피에 미친 다양한 커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섬세하고 재미있는 커피 토크를 해 보기로 했다. 세계 3대 커피라고 칭하는 최고의 커피는 과연 어떨게 탄생된 것일까?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스페셜티 커피의 매력은 무엇일까? 강배전, 중배전, 약배전~ 로스팅에 따라 커피의 맛은 어떻게 달라 질까? 커피 맛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는 추출 작업. 추출 방법은 에스프레소, 핸드 드립, 사이폰, 에어로 프레스, 프렌치 프레스 등 다양 하니 똑같은 원두라도 추출 기구에 따라 과연 커피 맛이 달라질까?
    <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힘, 커피 >
    우리가 커피에 빠지게 되는 건 아마도 커피가 가진 ‘소통의 힘’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 다. 커피 한 잔을 마주하면 마법처럼 자신을 만나게 되고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게 되니 말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 다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커피를 갈고 물을 끓여 정성을 다해 방울방울.. 커 피를 내려 보는 건 어떨까?

    747회 2017-09-14

    마지막 선택, 아름다운 마무리 ■ 기획의도
    한국은 2010년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에서 발표한 국가별 ‘죽음의 질’ 조사에서 40개 조사 대상 국가 중 32위를 차지한 나라. 그만큼 죽음에 대한 인식도, 삶에서 죽 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얘기하길 꺼린다. 게다가 2015년 한해만 사망 자의 75% 가량이 병원에서 숨졌다. 그리고 병원 사망자의 80% 가량이 회복가능성 이 없는데도 연명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이로 인해 한국인은 전 생애동안 가장 많 은 의료비를 사망 직전 6개월간 사용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연명의료에 의존하다 사 망하는 경우 남은 가족들은 이별의 슬픔 보다 연명의료가 남긴 의료비 폭탄으로 더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 죽음. 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라 죽음마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러다보니 지금 이 순간, 어느 누군가는 중환자실에서 갖가지 연명의료에 의지해서 고통스럽게 삶의 끈을 붙잡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중환자실에 홀로 누워 연명의료 장치에 의존하는 삶 대신 세상과 조금 이른 이별을 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에게 마음속에 담아둔 사랑 을 남김없이 쏟아 부을 수 있는 죽음의 방법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2017년 8월 ‘연명의료결정법’의 1차 시행이 이뤄지고, 2018년 2월 본격 시행을 앞두 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함께 생 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 주요내용
    <병원 사망자의 80%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 사망, 가족에겐 의료비 폭탄>
    2015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75%가 병원에서 숨졌 다. 그리고 그 중 80%이상이 중환자실에서 연명의료를 하다가 의식없이 사망했다. 연명의료는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4가지 의료 행위로 사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에게는 고통만 가중하는 의 미 없는 행위가 된다고 지적해 왔다. 결국 한국인 중 많은 수가 고통스러운 경험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애기다. 그런데 연명의료의 고통은 환자(혹은 사망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환자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콧줄로 영양을 공급하는 등의 연명의료를 시작하면 가족은 엄청난 의 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가 그 대상이라 밑 빠진 독 의 물 붓기 식이다.
    그런데 여러 조사결과에서 한국인의 대다수는 연명의료에 관해 ‘나는 절대 안하지 만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절대 포기 못 해!’라는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 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뭘까?
    충남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이영기씨의 가족도 입원비 중간정산을 하 면서 1,465만원의 영수증을 받았다. 겨우 두 달 입원비로 말이다. 원무과 직원은 이 것도 중환자실에 입원한 다른 환자들에 비해 액수가 아주 적게 나온 것이라며 위로 했다. 이영기씨가 만성폐쇄성폐질환자로 폐렴으로 입원해서 심폐소생술이나 혈액투 석 등의 치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같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1주 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인 김씨 할머니의 아들은 더 늦기 전에 어머니 를 요양병원으로 옮겨갈 생각이라고 밝힌다. 10년째 투병 중인 파킨슨병이 악화되면 서 중환자실에 입원한 어머니뿐만 아니라 치매로 시내의 모 한방병원에서 투병중인 아버지까지, 앞으로 부모님 두 분의 의료비를 어떻게 부담해야할 지 막막하기만 해 서다.
    그러나 이영기씨의 5남매도, 김씨 할머니의 아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부모님 의 연명의료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자식 된 도리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건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호스피스=죽음’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의 마지막 길, 죽음. 그러나 그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충남의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간세포함 말기 환자 윤OO씨의 경우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자신의 상태를 모른다. 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말기 상태였 지만 가족들이 그 사실을 윤OO씨에겐 숨긴 채 서울과 충남의 병원을 오가면서 1년 반 넘게 회복가능성이 없는 항암치료에만 매달리는 사이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돼버 렸기 때문이다. 부인 역시 3개월 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터라 ‘중환자실에서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너무 무서웠다’고 눈물짓는 남편 앞에서 당황스럽기만 하다.
    반면 울산에 사는 담도암 말기 환자 이성만씨는 병원대신 집에서 생활한다. 항암치 료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아니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의 사로부터 이미 그 어떤 치료도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은 상태라는 걸 들었기 때문 이다.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울산의 한 대학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 팀에 가정 호스 피스 서비스를 신청한 일. 전담 간호사는 1달에 8번, 의사는 1번, 그밖에 사회복지사 와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도움까지 받으면서도 환자부담액이 한 달에 10만원이 채 안 되기 때문에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 고 1년째, 병원 문을 나설 땐 여명이 3개월 남짓 될거라는 소릴 들었던 이성만씨는 간병을 해주는 아내에게 시도 때도 없이 애정공세를 퍼붓는 로맨틱가이로 매일 웃으 면서 삶을 마무리 하고 있다. 호스피스 팀으로부터 말기 암환자를 엄청난 고통 속에 빠뜨리는 통증 완화치료를 적절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팔십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김종원씨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병동의 입원 환자다. 말 기 암환자인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그럼에도 환자는 물론 가족들도 처음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권유받았을 때는 ‘호스 피스=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생각에 울며 주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간병하 는 가족의 힘만으론 하기 힘든 목욕, 머리 감기기, 족욕에 마사지는 물론 환자와 가 족이 서로 마음을 나눌 수도 있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원예요법, 노래 교실, 가족 소풍 등까지 여러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김종원씨는 물론 가족들도 변했다. 무뚝뚝 한 경상도 사나이로 팔십 평생을 살아온 김종원씨가 52년간 자신의 곁을 지켜온 아 내에게 생전 처음으로 꽃도 선물하고, 고맙고, 미안하다 그래서 조금만 더 시간이 있 었으면 좋겠다라고 눈물지을 정도로 말이다.
    한국에서는 2015년 7월 국민건강보험이 처음 적용되면서 대중화를 꾀하고 있는 호스 피스 돌봄의료. 2017년 8월 연명의료결정법 1차 시행으로 그 대상이 말기 암환자에 서 에이즈와 만성간경화,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등 비(非)암성말기 환자들까지 대상 자가 확대된 이유는 뭘까? 호스피스 돌봄의료란 무엇인지 현재 서비스를 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경험을 통해 확인한다.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 法 제정만으로 바꿀 수 있을까? 아시아 죽음의 질 1위 대만에서 찾은 해법>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 시행되면 모든 임종기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호 스피스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서 회복가능성이 없는데도 치료비 부담만 큰 연명의료를 환자와 그 가족이 거부 할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법’이 제정됐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뿌리 깊은 인식까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을까?
    대만은 한때는 한국만큼이나 죽음을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 됐던 나라. 그러 나 지금 대만은 ‘죽음의 질’이 아시아에선 1위, 세계에서 4위로 손꼽히는 나라다. 한 국의 <연명의료결정법>에 해당하는 <자연사법>도 2000년 아시아 최초로 제정됐 다. 호스피스 돌봄의료와 관련해서도 대만은 1996년 처음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한 이 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호스피스 병상을 갖고 있는 나라다. 1990년부터 대만 정부와 호스피스기금회라는 민간단체가 손잡고 ‘죽음에 대한 대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와 교육 및 호스피스 인프라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온 결과다.
    대만에는 현재 51개 의료기관에 724개의 호스피스 병상이 있고, 80개 의료기관에서 가정 호스피스 돌봄의료 팀을 운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의료기관에는 병동, 가정 호스피스와 함께 ‘자문형 호스피스(Share Care)’가 정착돼 있다. 죽음을 금기시하 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초,중,고,대학에서 정규교육과정의 하나로 ‘생명교육’을 가 르치고 있다. 또 대만의 연예인과 유명인들이 회복가능성 없는 연명의료 대신 호스 피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자는 대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에 모델로 적극 나 서고 있다. 그 결과 20살 이상의 정신 건강한 성인이면 누구나 ‘연명의료결정의원서’ 를 미리미리 쓸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었고, 현재는 1년에 86,000명의 국민이 ‘연명의료결정의원서’에 사인을 한다. 지금까지 이 의원서에 사인한 대만 국민은 총 46만 명에 이른다.
    <호스피스는 빠를수록 좋다>
    울산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난소암으로 생을 마감한 김복선씨의 아들 부부는 49제 를 지내고 어머니 집을 찾았다. 자식들을 위해 매실액, 고추장, 젓갈을 장독대 가득 담가놓은 어머니는 생전에 며느리에게 자신이 입전 옷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 인지까 지 알려준 꼼꼼한 분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자식들에게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이 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차근차근 삶을 정리하며 편안한 마지막 을 맞이할 수 있었다. 유족들은 어머니의 사후, 돌아가신 분은 물론 유족들에게 존엄 한 죽음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호스피스 병동의 의료진에게 조의금의 일부를 기부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자신에게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모른 채 죽음에 대한 강함 공포로 힘들어 하던 말기 암환자 윤OO씨도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에 입원을 했다. 하지만 그는 호 스피스 병동 입원 후 1주일 만에 임종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이용기간은 평 균 3주에 불과하다. 3개월 이상인 대만 등 호스피스 돌봄의료 선진국과 비교하면 삶 을 정리할 시간이 턱없이 짧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본격 시행에 앞서 ‘호스피스=≠죽 음’이 아니라는 인식전환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다.
    “호스피스 돌봄의료는 환자가 침상에 누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가족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을 가능하게 해드리는 겁니다. 이 기간을 통해서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다, 소중한 존재다 라는 마음을 서로 충분히 주고받았다는 기억은 유족에게도 사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 울산대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 교수진 교수

    746회 2017-08-31

    건강할 권리를 찾아서 ■ 기획의도
    환자의 건강도 가계도 돌보지 않는 병원의 과잉검진, 과잉진료 스캔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고독사 뉴스. 백세시대, 건강하고 즐겁게 살다 죽기를 바라는 우리들 을 불편하게 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병원은 아플 때만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니, 병원 문턱은 낮아지고 건강은 올라가서 삶의 행복지수가 높아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5만원의 참여로 스스로 병원의 주인이 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바로 그들.
    진료실에만 머물지 않고 마을 속으로 들어가 환자의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치료와 보건, 복지가 통합된 의료서비스로 병원의 패러다임을 바꾼 한국과 일본 의료사협 병원의 건강실험. 이들은 왜 백세시대 건강 해법은 ‘온 마을이 병원이다’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는 걸까?
    ■ 주요내용
    <과잉진료와 병원과 의사에 대한 높은 불신이 한국인의 병을 키운다>
    31살의 이**씨는 디스크 환자다. 가벼운 허리 통증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권한 고주파열 치료술을 시술한 후 증상이 호전되기는커녕 허리통증은 더 심해지고 멀쩡하던 다리 저림까지 시작되면서 생활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병이 낫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에 우울증이 찾아왔고, 가족들과의 불화도 커져서 집에 있 기가 불편해서 주말에도 아픈 허리를 부여잡은 채 집밖을 전전한다. 좋다는 치료법 을 찾아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이른바 병원쇼핑족 신세이기도 하다. 한때 잘 나가는 웨이트 트레이너로 꽤 큰 규모의 헬스장을 3개나 운영했던박**씨도 집 근처 병원에서 받은 척추시술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집안 에서조차 허리를 곧게 펴고 걸을 수 없는 상태로 증상이 악화된 것이다. 어떻게든 병 을 고쳐야겠다는 마음에 5년 여간 만난 의사만 300여 명이 넘는다. 지독한 우울증에 자살 충동의 위험을 느낀 것도 여러 번. 심지어 굿까지 했다. 그동안 치료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 운영하던 헬스장도 모두 문을 닫았다. 하지만 여전히 차도는 없 고 불안한 마음에 박씨는 날마다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 병원을 전전한다. 과잉진료 가 지핀 불씨가 병원과 의사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면서 그의 삶을 의료쇼핑족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환자가 주인인 병원, 5만원의 건강실험>
    안산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 정민주씨는 한때 지독한 병원쇼핑족이었다. 세 아이가 지독한 알레르기성 비염이어서 온 가족이 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에 찾아가다 보니 집을 반경으로 20㎞ 내외의 동네 병원은 죄다 섭렵했을 정도였다. 아직 3살이 채 안 된 막내에게 항생제를 포함해 한번에 7알이나 되는 약을 처방해주기도 하는 병원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컸고, 병원에서 처방을 받을 때마다 1만원을 지급하는 통원비 보 험에 이끌린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의 건강을 볼모로 장사를 하고 있는 병원과 보험회사에 엄마인 자신 역시 이끌려 다녔다는 사실을 깨닫고 병원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그런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 합의 병원. 100% 시민들의 자본과 힘으로 세운 병원으로,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가 자는 취지에 공감한 시민이라면 5만 원 이상만 출자하면 누구나 이 병원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즉시 가입했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에겐 주사나 약 처방 대신 예방법과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건강 상식을 먼저 알려주고,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다양한 건강증진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보급하며, 뜻을 같이 하는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건강모임이 잘 유 지될 수 있도록 비용도 지원하고, 활동 공간으로 병원을 개방하기도 하는 가장 병원 다우면서도 또 병원답지 않은 병원이 의료사협의 병원이었다. 현재 한국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18개. 이곳에서는 저마다 지역의 특징을 살 린 건강실험이 진행 중이다. 고령인구가 유독 많은 대전시 법동에 위치한 의료사협 병원에서는 의료와 보건, 복지가 통합된 시스템을 구축한 주민건강증진자치센터로 의 변신을 꾀하고 있고, 저소득자와 1인 가구가 많이 밀집한 안산의 의료사협 병원에 서는 이들의 건강과 생활을 함께 돌보는 노인돌봄센터를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다리가 불편한 부인과 단둘이 빌리 지하방에서 살고 있어서 병원을 찾아가기가 힘들었던 연종문 할아버지는 집에서 가까운 의료사협 병 원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자칫 온 몸 마비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급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일본 노인 복지의 모델 야마토마치, 마을 병원이 일군 기적>
    병원이 온 마을의 주치의 역할을 하면 달라지는 점은 무얼까?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산골마을 야마토마치는 일본에서 개호보험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일본 최고의 복지마을로 알려진 곳이었다. 1960년대만 해도 고혈압 환자와 뇌졸중 환자가 너무 많아 이들을 위한 의료비와 돌봄 문제가 지역사회의 가장 큰 골 칫거리였던 마을이지만 일본에서 고령화가 막 가속화 되면서 노인의료비가 하늘 높 은 줄 모르고 치솟던 1980년에는 전국 수준의 1/3로 줄어든 것이 확인되면서 일본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밝혀진 이유는 동경의대 출신의 젊은 의사 3명이 마을에 세운 작은 진료소의 치료와 예방, 돌봄이 통합된 획기적인 의료시스템. 또 환자를 기다리지 않고 병원이 직접 환자를 찾아가는 가정 방문 진료 시스템 덕분이었다.
    누구도 고령화 사회의 도래를 예고하지 못했던 1970년대에 이미 저렴한 비용으로 최 고의 노인 건강 돌봄 시스템을 만들어냈던 야마토마치 마을병원의 성과는 이후 일 본 노인복지정책의 모델로 적극 반영됐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 건강은 협동이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병원이 크고 좋은 시설과 의료기기들보다 더 자랑하는 것 은 현재 혹은 미래의 환자인 조합원과 그들이 만든 다양한 소모임들이다. 의료생협 활동이 활발한 일본에서도 나고야시의 미나미의료생협은 다양한 조합원 소모임으로 주목 받는 곳이다. 노인 조합원들이 직접 작곡한 노래에 맞춰 직접 개발 한 수건체조를 매일 함께 하면서 건강을 지키는 모임을 비롯해서 915개나 되는 소모 임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작은 건강 모임을 기반으로 탄탄하게 성장한 미나미의료 생협은 현재 조합원 수는 6만 명에 이르고,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병원 2개, 마을의원 7개, 치과 2개의 대규모 시민병원을 운영하 는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보니 나고야시에 사는 시민들은 말기암 치료가 필요할 때도 도쿄와 같은 큰 도시의 유명병원을 찾기보다 자신이 사는 마을의 의료생협 병원을 먼저 찾는다. 췌 장암 말기로 11개월의 여명을 선고 받은 마치노씨도 그중 한 명. 가까운 친구 한 명 없는 외지의 병원에서 외롭게 치료받는 것보다 자신이 평생 살아온 고향 마을 병원 에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료 받고, 즐겁게 어울리는 것이 자신에게는 최고 의 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바로 이것이 100% 시민들의 자본과 힘으로 만들어진 병원의 힘이자 환자들의 생활 속으로 찾아가는 마을병원이 중요한 이유라고 그는 말했다. “마을 속에 있을 때 나는 제일 편안해요!”

    745회 2017-08-17

    쇼 돌고래의 슬픈 진실 “다시는 돌고래를 사육하지 않겠습니다” -33년 만에 막을 내린 대한민국 돌고래 쇼
    지난 5월 22일. 서울대공원 최장기 쇼 돌고래 금등이와 대포가 제주 바다로 이송됐 다. 2013년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가 2015년 태산이, 복순이가 바다로 돌아가고 난 후 세 번째 진행되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야생 방사 프로젝트! 금등이와 대포를 마 지막으로 서울대공원은 더 이상의 돌고래 사육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세계적으 로 해양 포유류 전시 및 공연을 금지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도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년 만의 귀환 -금등이와 대포는 왜 20년 동안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걸까
    20년, 제주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가 수족관에서 산 세월이다. 어린 시절 가족 과 친구와 함께 살던 바다에서 붙잡혀 온 건 대포 나이 대여섯 살쯤인 1997년, 같은 또래의 금등이는 이듬해 8월 수족관으로 왔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좁은 수 조에 갇혀 20여 년을 쇼 돌고래로 살아야 했던 금등이와 대포.
    “우리가 손뼉 치는 그 순간에 저들은 죽은 생선 한 토막을 먹기 위해 처절하게 묘기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2013년 수족관 돌고래의 첫 방류가 진행됐지만 금등이와 대포는 선택받지 못했다. 그렇게 기약 없이 공연하던 어느 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적이 찾아온 것이 다. 하지만 야생의 바다를 떠난 지 오래, 고향으로 돌아가도 야생 무리에 합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많은데, 설사 가상 방류를 앞두고 자연적응 훈련 도중 대포 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이송 시 눈에 상처로 인해 식욕이 떨어지고 건강상태도 나빠 지기 시작한 것. 과연 금등이와 대포는 20년 만의 고향 바다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 을까! 전 세계가 주목한 대한민국의 세 번째 남방큰돌고래 야생 방류 프로젝트는 과 연 성공할 수 있을까!
    죽음의 수족관 -우리가 몰랐던 쇼 돌고래의 슬픈 진실
    “쇼를 하던 중에 어미 돌고래가 점프했어요 그런데 착지 지점을 잘못 잡은 겁니다. 새끼가 있어서 피하려다가 공연장 콘크리트 바닥으로 쿵 하면서 떨어졌고 결국 그 어미 돌고래는 죽었죠“ - 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지난 2월 전국에서 돌고래 폐사율이 가장 높아 ‘죽음의 수족관’이라 불리던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또 한 마리의 돌고래 폐사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 여름 일본 타이지에서 반입된 어린 돌고래 한 마리가 수족관에 도착한 지 5일 만에 폐사한 것이다. 수족관 돌고래의 평균 수명은 4년, 야생 수명이 40~50년인 돌고래들 이 자신의 나이 10분의 1밖에 살지 못한 채 죽어가는 곳. 대체 돌고래에게 수족관은 어떤 곳일까! 본래 그대로 야생의 습성대로 살 권리를 빼앗긴 돌고래들이 겪는 고 통, 돌고래의 미소 뒤에 가려졌던 수족관의 잔혹한 진실이 공개된다.
    “돌고래 쇼는 지배라는 행위가 당연하다고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돌고래들이 있어야 할 곳은 수족관이며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쇼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죠“ - 릭 오베리 (세계적인 돌고래 보호 활동가)
    ‘태지’의 트라우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수족관 돌고래의 운명
    금등이와 대포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육사들은 말한다. 감정과 자유의지, 판단능력 을 지닌 돌고래는 인간과 아주 비슷하다고. 돌고래들도 사람처럼 외로움을 고통으 로 느끼기도 한다. 금등이와 대포가 고향 바다로 돌아간 후 텅 빈 수족관엔 태지(큰 돌고래. 수컷. 17살 추정) 혼자 남겨졌다. 서울대공원 삼총사 돌고래였던 금등 대포 태지! 셋은 9년을 함께 공연하던 동료였다. 두 친구가 떠나고 갑자기 혼자가 된 태지 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콘크리트 바닥 위에 올 라오기를 반복하고 피부가 찢어질 듯이 거칠게 벽에 몸을 부비며 불안해했다. 일본 타이지에서 잡혀 올 당시 끔찍끔찍한 돌고래 학살 현장에서 잡혀 온 태지 그리고 먼 타지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냈던 동료들이 사라져버린 충격까지 받으며 태지에겐 두 번의 트라우마가 남았다.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없고 방류도 할 수 없는 태지의 운명 은 과연 어떻게 될까! 기약 없는 수족관의 삶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걸까!

    744회 2017-08-10

    퇴근 후에 뭐하세요? - 사생활의 달인들 2017년, 직장인과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핫한 키워드로 떠오른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일컫는 워라밸은 ‘저녁 있는 삶’, ‘일과 사생활 의 양립’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밀레니얼세대가 직장을 선택하는 새로운 기 준이 되고 있다. ‘퇴근 후에 뭐하세요?-사생활의 달인들’에서는 퇴근 후에 자신의 행복을 위해 본업과 무관한 딴 짓을 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 는 이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 ■ 퇴근 후에 ‘뭐’하는 사람들
    - 통학거리 1,000km, 10:1의 경쟁률을 뚫고 해녀학교에 간 유팀장
    “가족들에게 상의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었죠... ‘너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 정도는 해도 돼.’ 라는 결론을 내렸고 네 달치 제주행 항공권 300만원어치를 한 번에 결제했습니다.” - 해녀학교에 다니는 직장생활 28년차 유주형씨 인터뷰 中 -
    직장생활 28년차의 대학병원 원무팀장 유주형(50)씨의 무료하던 일상이 해녀학교 합 격 소식을 알리는 한 통의 문자로 완전히 바뀌었다. 평일에는 언제나처럼 평범한 직 장생활을 하는 유팀장이지만 그가 가족들 몰래 네 달치 항공권을 미리 구입해놓고 매주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저마다의 이유로 제주 해녀학교를 찾아온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본다.
    - 내 삶을 이끄는 주체는 바로 나, 발레리나 손과장
    “직장에서도 물론 업무를 즐겁게 하지만 제가 중심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발레를 하고부터는 삶의 중심이 제 안으로 확고하게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직장생활 8년차 발레리나 손인하씨 인터뷰 中 -
    항공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 중인 손인하(31)씨는 처음 구직을 할 때부터 ‘워라밸’ 이 보장되는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취직 후 저녁 있는 삶이 주어졌 음에도 퇴근 후에는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고 그녀의 삶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그러 던 그녀가 발레에 빠진 것은 바로 3년 전. 칼퇴근 후에도 귀가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 기기 다반사에 주말도 없이 연습하는 요즘이지만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 삶의 주인 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의 퇴근 후를 따라가 본다.
    - 낮에는 백의의 천사, 퇴근 후에는 격투기 파이터
    “직장생활과 선수생활, 어떻게든 두 가지를 다 하려고 하고 있어요. 피곤할 때도 있고 주변에서는 욕심이라고 하지만 욕심쟁이라 불려도 좋으니 저는 다 하겠습니다. 제 마음이에요.” - 16년차 간호사, 프로격투기 선수 김효선씨 인터뷰 中 -
    자신을 ‘간호사 파이터’로 불러달라는 김효선(38)씨는 그 힘들다는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 경력 16년 중 6년을 격투기와 병행했다. 단순 다이어트 목적으로 시작했던 격 투기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고, 매일 퇴근 후 체육관에 달려가던 그녀는 아마추어 리그를 거쳐 프로 입식 격투기 대회에서 당당히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격투기의 매력에 푹 빠져 황금주말을 경기 관람에 바치고, 매년 휴가 때마다 태국으 로 전지훈련을 떠난다는 그녀는 관 뚜껑이 닫힐 때까지 재밌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 불확실한 미래, ‘현재’에 집중하다.
    “직장인 대부분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진 않아요. 행복하다 아니다를 느낄 겨를도 없이 생계 등의 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리죠... 제 퇴근 후를 보고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 직장생활 24년차 DJ 어해원씨 인터뷰 中 -
    대한민국은 OECD가입국 중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고, 직장인 10명 중 8명이 퇴근 후 번 아웃(Burn out)을 경험하는 명불허전의 일 중독 사회다. 하지만 오랜 취업난 과 조기퇴직 등의 불안정한 노동환경 속에서 성실한 일개미의 성공신화는 옛날이야 기가 되었고,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동안 기성세대들이 하고 싶은 일은 억누르고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왔다면 각자도생시대의 새로운 처세법 은 직장 내에서의 성공에만 매달리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것. 퇴근 후를 내일을 위한 휴식이 아닌 오늘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는 이들의 특별한 사생활은 존재의 의 미를 되찾아가는 시간이다.
    ■ 워라밸을 넘어서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대 청년의 87.9%가 ‘취미나 적성분야 로 직업을 찾는 것이 행복을 좌우한다.‘고 답했다. 많이 이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하지만 팍팍한 취업난과 저임금환경 등의 현실적 문제로 ’일‘일뿐인 일 을 택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워라밸은 일과 일상의 저울이 지나치게 한 쪽으로 기운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보상 욕구의 발현일지도 모 른다. 하루 평균 9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고 만성적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자 아실현과 행복은 회사 밖에서 찾아야 하는 우리의 일상은 안녕할 수 있을까?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 그게 참 어려운 거잖아요. 저는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 해녀학교에 다니는 취업 준비생 이주혜씨 인터뷰 中 -
    “하나의 직업이나 역할에 갇히지 않고 나의 여러 조각들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 취미박스 배송업체 구윤혜 대표 인터뷰 中 -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회사로 자신이 규정되는 것이 싫어 퇴사한 후 좋 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든 청년들과, 연이은 취업실패 후 무작정 제주로 내려가 난 생처음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며 버킷리스트를 지워가는 삶을 살고 있는 20대의 이 야기를 통해 우리시대 ‘직업’ 가치관의 변화와 의미까지 되짚어본다.
    방송 : 8월 10일 목요일 밤 11시 10분